영화 리뷰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감독 양해훈|출연 임지규·표상우·윤소시

독립영화의 미덕은 정직성이다. 독립영화는 세상을 일부러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해피엔딩을 조작하지도 않는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상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영화 리뷰]‘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제휘는 은둔형 외톨이다.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가둔 그는 어머니가 문 앞에 가져다준 밥을 먹고,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누리꾼과만 얘기를 나눈다. 제휘는 순간이동 마술 비디오를 보며 스스로 사라질 날을 꿈꾼다. 그는 스스럼없는 성격의 장희를 만나 조금씩 세상을 향한 문을 연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던 표가 나타나고, 제휘는 다시 옛 악몽과 마주친다. 인터넷에서 제휘의 사연을 들은 누군가가 표를 납치하기로 계획하면서 사건은 커진다.

집단 따돌림, 은둔형 외톨이, 성폭행, 청부폭력 등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상업영화가 직시하지 않는 현실을 두 눈 부릅뜨고 전한다는 점에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미덕이 있다.

그러나 관건은 이 정직한 시선으로 건져올린 소재를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있다. 날것으로 전시된 소재를 극장에서 볼 바에야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게 낫다.

그런 점에서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초반부는 아쉽다. 한국의 독립영화에서 자주 다뤄왔던 ‘낙오자(Loser)’의 정서를 보여주지만, 기존 독립영화의 성취를 넘어서지 못한다. ‘88만원 세대(20대 비정규직이 받는 평균 임금으로 상징되는 현재 한국 젊은이들)’의 궁핍한 초상을 다루는 것이야말로 한국 독립영화의 클리세가 아닐지 의심이 든다.

중반 이후 주변을 겉돌던 의외의 인물이 줄거리 중심으로 끼어들면서 영화는 활력을 얻는다. 얇은 비닐막을 사이에 두고 저쪽 편에 자리해 있던 또 다른 세계의 음험한 힘이 이쪽 세계로 손을 뻗치는 느낌이다. 조곤조곤했던 감독의 어투는 흥분한 듯 갑자기 빨라지고, 그때까지 꽉 막혀있었던 감정이 폭발한다. 등장 인물들이 납치된 채 묶여있는 창고는 요즘 많이 제작되고 있는 ‘고문실 호러’를 연상시킬 정도다.

양해훈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에서 예상 못한 각도로 뻗어나오는 스트레이트 펀치 맛을 보여줬다. 한 라운드가 아니라 전체 경기를 이끌어갈 체력과 실력을 가다듬는 게 차기작을 위해 중요해 보인다. 제목의 ‘치타’는 주인공의 별명이고, ‘저수지’는 학창시절 그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장소다. 18세 관람가, 25일 개봉.

〈백승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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