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성철 스님 시봉 이야기

30여 년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공직의 울타리를 벗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나만의 자유와 열정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연수가 없는 주말을 활용해 전국의 가보지 못한 절집을 탐방하기로 했다.

[책읽는 경향]제주에서-성철 스님 시봉 이야기

누구의 은혜를 입었을까. 부처님 오신날 단 하루만 산문을 연다는 문경 봉암사를 가게 되었다. 우리 불교를 새롭게 일으켰다는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이 수행하셨던 그 봉암사, 20세기 후반 부처님 법대로 불교계를 이끌자며 불교의 새로운 중흥을 세웠던 그 유명한 봉암사 결사지에서 꼼짝못함을 느낀다.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 시봉 이야기’에서 희양산맥으로 둘러싸인 백운대 마애불상을 가로지르는 계곡 물빛을 성철 큰스님께서는 정신차리게 하는 차가운 회초리로 표현하셨다고 전한다. 그 물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회초리를 맞고 봉암사 산문을 빠져 나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바람소리가 그림 속의 사람은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깨우쳐 준다.

하룻밤 그 도량에서 유숙하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따스한 방바닥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절집을 찾은 것이 김용사이다. 성철 스님은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간 동구불출을 마치고 이곳에서 하안거를 지내셨다. 그해 동안거 기간에 대중을 향해 처음 사자후를 토하셨다. 이름하여 ‘운달산 법회’다. 이 절집 상선전 마루에 걸터앉는 순간 나는 꼼짝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상선전 지붕과 기와돌담 사이, 멀리 보이는 운달산 산맥들, 나지막한 가람들 위로 비어있는 여백의 공간은 겸손과 미덕 자체였다. 요즘처럼 혼란을 겪을 때, 나는 2001년을 마감하며 밤새 읽었던 이 책이 지혜를 가르쳐줌을 알게 된다.

〈현을생/제주시 자치행정국장 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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