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삶의 조건을 담는 ‘불온한 카메라’

한윤정기자

4 UCC 원조·영화 ‘은하해방전선’ 감독 윤성호

장편독립영화 <은하해방전선>(2007년)으로 유명한 윤성호 감독(33)은 UCC (User Created Contents) 문화의 원조격이다. 그는 <은하해방전선> 이전에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 <산만한 제국> <우익청년 윤성호> 등의 중·단편을 선보이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도 시작은 여느 블로거처럼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UCC 1세대인 윤성호 감독에게 디지털 캠코더와 노트북은 그의 세상을 만들도록 해준 친구였다.    김창길기자

UCC 1세대인 윤성호 감독에게 디지털 캠코더와 노트북은 그의 세상을 만들도록 해준 친구였다. 김창길기자

“2001년 대학(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반 때 처음 캠코더를 만지게 됐어요. 친구들과 뭔가 기념으로 남기자는 생각에 찍은 짧은 영화가 <삼천포 가는 길>이었지요.”

‘우리는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같은 일상을 인터뷰해 편집한 이 작품은 당시 여러 군데 비디오 페스티벌이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윤씨는 “요즘 같으면 개인 블로그에 올릴 정도의 작품이지만 그때는 UCC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시상제도가 있었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가 신춘문예 당선의 효과를 본 것”이라고 비유했다.

졸업 후 취직할 생각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관객의 반응이 영화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고. 그후 독립영화계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어울리면서 만든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2003년)과 <산만한 제국>(2003년), <우익청년 윤성호>(2004년) 등의 작품에는 사회비판의식이 담겨있다.

“대학시절 데모를 하지도 않았고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는데 카메라를 드니까 삶의 조건 같은 데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중산층…>은 그런 변화를 겪었던 1년간의 제 생활을 담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을 각본으로 한 <산만한 제국>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화가 끝난 것처럼 떠드는 분위기에 대한 반발로 만들었습니다.”

그때까지 그의 작품은 상황과 발언에 치중했을 뿐, 서사와 대중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직업적인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UCC를 만드는 ‘유저’의 입장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은하해방전선>은 전기가 된 작품이다. 자전적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감독의 일상과 고민을 담아낸 이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독특한 표현과 유머로 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요즘은 ‘성탄특선’ 영화를 살짝 비틀기한 두번째 장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비유하자면 <러브 액츄얼리>가 아니라 <액트 러블리> 정도 된다고 할까요. <은하해방전선> 이후 비로소 ‘영화감독’이란 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였습니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구분이 뚜렷한 건 아니지만 투자자나 배우 등 그동안 저에게 생긴 자원을 활용해 대중에 다가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해 촛불시위 때 많은 시민들이 UCC로 시위상황을 전달하는 ‘시민미디어’ 시대가 왔음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고, 자신도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그러나 이전처럼 물대포에 최대한 바짝 다가가거나, 찍은 영상을 바로 블로그에 올리지는 않았다. 좀더 숙성시켜 극영화에 담아내는 게 자신의 현재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윤씨는 여러 군데서 작은영화 만들기 강의를 해왔다. 요즘은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랩톱시네마(노트북으로 만드는 작은 용량의 영화라는 뜻) 강의를 하고 있다. 그곳에서 8년 전의 자신처럼 스스로의 일상과 생각을 영화로 만들려는 사람들과 만난다.

그러나 그의 강의는 영화 만드는 기술보다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와 서사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라디오에서 ‘종로2가 뉴 타자학원~’이라는 광고가 나왔어요. 그때는 타자가 생계를 해결하는 기술이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도 자판을 쉽게 치잖아요. 마찬가지로 영화는 누구든 찍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내용을 담아낼 것인가입니다.”

이는 UCC라는 매체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누구나 매체를 다루게 되면 디지털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누구나 수단을 가짐으로써 비판정신이 묽어질 수도, 거대자본에 휘둘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집중이 오히려 심해진 것과 마찬가지다.

“ ‘원더걸스’ 흉내나 파스타 사진을 올리기보다는 자기 주변에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개성이니, 상상력이니 하는 건 정신이 쇠퇴할 때 하는 말’이라는 오규원 시인의 말을 인용해 “불온함과 정신적 모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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