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주변인 돌아보는 게 작가 역할”

김종목 기자

재개발 현장 담는 임민욱 영상설치 작가  

내달 15일까지 ‘꼬리와 뿔’ 개인전…잊혀질 시공간에 저항·상실 감정표현

“꿈까지 자본화시키는 현실 속에서 미술은 어떤 형태로든 비판 기능해야”

영상설치 작가 임민욱(42)이 주로 미술행위의 영감을 얻고 작업하는 곳은 재개발 현장같이 소외된 장소다. 개발주의가 지배하는 추방의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떠밀려 가는 이들이 바로 응시의 대상이다. 대표 영상 작품 ‘뉴타운 고스트’(2005)의 무대는 영등포구 재개발 지구였다.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화동 갤러리플랜트에서 열리는 개인전 ‘꼬리와 뿔’에서도 서울 연신내 부근 재개발 현장을 무대로 한 영상과 설치 작품 ‘포터블 키퍼(portable keeper)’를 선보였다.

‘포터블 키퍼(portable keeper)’

‘포터블 키퍼(portable keeper)’

왜 재개발 현장인가. 지난 5일 서울 정독도서관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난 임민욱에게 이 질문부터 던졌다. “떠밀려 갈 수밖에 없는 가장자리에 있는 존재들, 갈 곳 없고 조직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시선을 던지는 게 바로 작가의 역할이죠.” 그는 “어떤 이들은 유목민의 삶을 말하지만 그 시선에는 공동체 감각이 없다”고 했다. “계속 떠도는데 어떻게 삶을 돌보고 이웃을 만나 경험을 쌓겠느냐”는 게 그의 반문이다.

임민욱은 작품에 심오한 뜻이 담긴 것처럼 은근히 내세우거나 짐작하게 만들지 않는다. 미술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여느 작가와도 달라 보였다. “미술은 주관적 헛소리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돼요. 미술과 개인의 삶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죠.”

작품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까. ‘휴대용 지킴이’라고 번역되는 작품에서 ‘삐삐밴드’ 출신 권병준씨가 필기도구 묶음, 새 깃털, 인조 모피, 선풍기 팬으로 만든 2m 크기의 막대를 들고 모래내시장 근처 폐허지역과 재래시장을 걸어간다. 임민욱은 곧 헐릴 낡은 공간에서 맞섬과 저항, 파괴와 상실, 포기의 심정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포터블 키퍼는 잊혀진 또는 잊혀질 시공간을 복원하는 ‘풍경의 무기’인 셈이다.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꼬리와 뿔’은 라텍스를 오브제로 활용한 작품이다. 고고학의 방식으로 라텍스 조각을 떠 연신내 작업실 옥상에서 반년가량 햇볕에 노출시키고 비바람을 맞혔다. 인공위성 사진 같기도 하고, 지도처럼 보이기도 하는 라텍스 바닥은 재개발 문제 너머의 복잡다단한 인간사와 생로병사의 질곡을 반영한 듯 보인다. 임민욱은 “내가 보여주는 현실의 폐허는 또한 사람이 태어나 죽고, 사람과의 관계를 은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임민욱은 작가들의 작업 공간도 떠밀려감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지금 작업실은 연신내 부근 예전 콜라텍이 들어 있던 건물인데, 예전엔 홍익대 부근에 작업실이 있었다. “서울 홍대앞도 예술가들이 싸서 몰려들어 재미난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자본이 들어와 제2의 이태원이 됐어요. 땅값이 오르면 또 밀려나야 하고요.”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작가의 심정도 녹아 있다. “구체적인 비극에 참 힘들었는데, 어디를 아파해야 하고 무엇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할지 몰랐고, 무기력했다. 그 상황도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여느 현대미술 작가라면 꺼릴 정치에 관한 발언도 거침없다. “우리가 관계 맺는 장소와 맥락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정치·경제가 연결되어 있다”며 “추방될 수밖에 없거나 자기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헤아리지 않고는 정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민욱은 그간 이주노동자, 비전향장기수 등 한국에서 소외된 이들과의 만남도 작품으로 풀어냈다. “누구나 밝은 곳에 존재하진 않아요. 그런 분들에 대한 연대를 표한 거죠. 미술을 택한 것은 보편의 언어로 여러 사람들이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보인가’라고 이분법적 질문을 던졌다. “흔히 말하는 보수냐 진보냐의 정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정의와 평등에 대한 갈구”라면서 “어떤 미술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든 그 속엔 비판적 기능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첨예한 ‘정치미술’도 청담동 화랑에 곧잘 내걸리곤 하는 현실인데, 그래도 자본을 언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민욱은 자본 권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반응한다. “모두가 ‘김연아가 되라’고 하고 있어요. 스케이트 신고 포즈를 따라한다고 꿈이 실현되나요. 바로 옥탑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요. 자본이 꿈을 자본화시키고 있어요. 환경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정유회사가 환경을 이야기하고, 꿈을 말살하는 기업이 ‘드림’을 말하는 현실이잖아요.”

시장이 미술을 잠식해 들어가는 상황도 편치 않다. 임민욱은 “2006년부터 학생들 그림이 바뀌기 시작했다”며 “졸업전을 하면 아트페어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임민욱은 수상 경력이 화려하고,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올해 리버풀 비엔날레에 초대받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시도 예정돼 있다. 그래도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그는 “(자본·권력 등에 꼬리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할 수 있을까로 고민하고 갈등할 때도 많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 여기의 지향,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한 미술’일 수 있는 작업에 대한 의지를 꺾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지금은 영혼을 팔기 좋은 계절’이죠. 하지만 급진적으론 못 가도 영혼을 팔지 않고 계속 작업할 수 있다는 걸 특히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