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률의 영화속에 숨은 경제

(2) 경영권 암투와 ‘대부의 리더십’

경제부 박병률 기자

신한금융지주의 경영권을 둘러싼 ‘암투’가 1막을 내렸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영권 분쟁은 숫제 무협지를 보는 듯했다. 은행이 전직 은행장이자 현직 금융지주 사장을 고소했다. 현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주도했단다. 여기에는 권력 1인자가 3인자를 후계자로 책봉하기 위해 2인자를 내치려는 ‘음모’가 숨어있었다.

형제의 의를 맺은 1인자와 3인자는 윤허를 얻기위 해 ‘사부’인 일본 주주에게 날아갔다. 같은날 같은 비행기에 2인자도 억울함을 호소하려 따라갔다. 사부들은 긴급 모임을 갖고 2인자에게 당분간 무도를 닦지 말 것을 지시하며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아직도 반전의 기회가 남아있다. 내부싸움을 하면서 관아를 끌어들인게 문제였다. 포청천의 조사결과에 따라 3인방의 운명은 또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이 신한 정파의 가치는 하룻밤새 1조5000억냥이 감소했고, 거상중개인인 ‘피치’사는 신용평가 전망을 하향조정했다. 손쉽게 금융무림을 제패할 것으로 보였던 신한정파가 3인방의 난에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국내 기업은 유독 후계자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심하다. 주인없는 신한금융지주가 이럴 진데 ‘오너’가 있는 기업치고 후계자를 두고 말썽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 그랬고,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이 그랬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의 편법 상속 논란은 삼성그룹의 발목을 잡아왔다.

누가 CEO가 되느냐. CEO 1인으로 인해 기업은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CEO로 인해 발생한 기업의 위험을 경제학에서는 이를 ‘CEO리스크’라고 부른다.

CEO리스크를 얘기하다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다.

<대부>인 비토 꼬레오네 역을 맡은 말론 브란도의 낮은 목소리와 세째아들 마이클역을 맡은 알 파치노의 서늘한 눈빛만큼 리더의 카리스마를 표현한 영화는 드물다.

마피아? 패밀리? <대부>의 조직논리

▲ 영화 <대부>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 영화 <대부>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부>는 미국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출신의 이민자들이 조직한 마피아간 싸움을 그린 영화다. 마피아 영화지만 마피아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패밀리다. 진짜 마피아들이 영화 제작을 용인하는 대가로 ‘패밀리’라는 단어를 쓰게 했다나.

유력 패밀리인 꼬레오네는 라이벌인 타타글리아 패밀리로부터 마약사업을 같이할 것을 제안받지만 거절한다. 꼬레오네는 거절의 대가로 저격을 당하고 중상을 입는다. 꼬레오네 패밀리는 장남 소니(제임스 칸)가 뒤를 잇지만 여동생 코니를 학대하는 매제를 혼내주기 위해 가다 암살당한다. 매제 카를로가 바르지니 패밀리에게 매수당한 탓이다.

막내아들인 마이클이 꼬레오네 패밀리를 맡아 조직재건에 나선다. 조카의 세례식날, 마이클은 바르지니, 타타글리아 등 경쟁 패밀리 수장을 차례로 제거하고 패밀리내 배반자들을 처리한다.

<대부>는 CEO 1인에 의해 조직이 어떻게 부침을 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꼬레오네와 그 삼형제의 캐릭터를 통해 CEO로서의 역량을 분석해보자.

대부인 꼬레오네는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신중하다. 아랫사람에게 너그러우면서 엄하다. 쉽게 약속하지 않지만 일단 약속하면 무조건 이행한다. 신용을 사업의 근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담력이 크고 결단력과 추진력이 강하다. 세기의 명대사로 불리는 “그가 절대 거절할 수 업는 제안을 하지”(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는 그래서 나왔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란 곧 살해를 의미한다. 꼬레오네는 마약사업 제안에 대해 “마약은 도박과 다르다”며 거절한다. 교회가 반대하고 경찰과 정치인이 도박은 봐주지만 마약은 싫어한다는 이유를 댄다. 꼬레오레는 고수익사업에 따라붙는 고위험도를 신중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 영화 <대부>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 영화 <대부>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이클의 귀국에 앞서 다른 조직들과 담판을 짓는 장면에서도 CEO로서의 면모는 아낌없이 드러난다. 마약사업에 대한 조직간 이견을 받아들여 중재안을 만들고 아들 마이클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 복수는 하지않겠다는 대타협안을 제시해 관철한다.

꼬레오네가 중상을 입자 후계자로 패밀리를 맡는 인물이 소니다. 소니는 용맹하고 가족애가 강하지만 감정적이다. 사려깊지 못하고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는 직관력도 떨어진다.

바르지니가 제안한 마약사업에 대해 솔깃한다. ‘고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꼬레오네가 반대하자 사업권을 따내고 싶다는 속내를 경쟁 패밀리에 쉽게 내보인다. 여동생이 매를 맞는다는 얘기에 격분, 조직을 이탈하다 적의 올가미에 걸려든다. 어떤 상황에도 냉정해야 한다는 것은 CEO의 필수조건이다. 이런 소니가 맡는 동안 패밀리는 경쟁 패밀리의 공세에 밀리고 조직 와해 분위기까지 치닫는다.

둘째 프레도는 리더감으로 아예 거론조차되지 않는다. 소심하고 머뭇대는 성격을 지녀서다.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CEO 결격사유 중 결격사유다.

소니가 죽은 뒤 뒤를 잇는게 막내 마이클이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패밀리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귀공자인 마이클은 거친 밤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듯 보이는 인물이다.

꼬레오네는 막내아들이 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닌 권력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명석한 두뇌에 냉철한 판단력, 치밀한 성격을 지닌 마이클은 패밀리 리더로서 적격이었다. 꼬레오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조직을 이어받은 마이클은 패밀리의 정적을 하루 나절에 제거하고 패밀리는 비로소 세력을 회복한다.

<대부>의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라스트신.

남편 카를로가 마이클의 지시로 살해당한 것을 안 누나 코니가 그를 찾아와 “매형을 죽인 살인마”라며 울부짖는다.
아내 케이가 묻는다.
“그것이 사실인가요?”(Is it true?)
마이클의 눈빛이 차갑다.
“아니”(No)

거짓말. 그러나 조직과 가족을 위해서는 필요한 거짓말. 더큰 대의를 위해 외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남에겐 못 맡겨’ 한국 기업들의 혈족의식

▲ 애플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  /경향신문 자료사진

▲ 애플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 /경향신문 자료사진

리더 한 명에 기업의 존폐가 결정되는 사례는 많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으로 PC사업 실패로 폐업위기에 내몰렸던 애플을 되살렸다. GE의 잭 웰치는 2000년대 중반 최고의 CEO로 각광받았다. 경영의 달인, 세기의 경영인 등의 별칭이 붙은 그는 퇴임직전 GE의 회사가치를 세계 1위로 끌어올렸다.

누가 CEO가 되느냐는 시장의 주요관심사항이다. 당연히 주가도 즉각 반응을 한다. 이른바 CEO주가다. 실력있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CEO로 영입이 되는 순간부터 주가는 뛰기 시작한다. 반면 실망스러운 인물이 자리에 앉게되면 주가는 떨어진다. 미래실적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해외에서는 그룹가문은 뒤로 물러서고 능력있는 CEO가 내·외부에서 영입돼 회사를 이끌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룹 총수 가족들이 직접 회사를 챙기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가족 회사를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혈족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주인이 있어야 회사를 잘 챙긴다’는 검증되지 않은 믿음도 강하다. 심지어 같은 가족이라도 딸이나 며느리가 갖는 것도 용인하지 못한다. 때문에 외국에 비해 아들없거나 사망한 경우 후계구도가 매우 복잡해지고, CEO리스크가 커진다. 아들이 많아도 골치다. 어느 아들에게 어느 계열을 떼줄 것인지 고민하려면 미분에 적분까지 동원해야 한다.

한진해운 최은영 회장은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이 사망한 직후 기업을 승계받았지만 한동안 시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회장과의 갈등설에 휘말렸다. 조씨가문에서 최씨가문이 한진해운을 갖는데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 /경향신문 자료사진

▲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 /경향신문 자료사진

삼성그룹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겸 에버랜드 전무의 후계다툼을 놓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부사장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녀인 이부진 전무에 대한 회사안팎의 신뢰가 강해 후계승계를 둘러싼 ‘CEO리스크’가 어느 재벌보다 큰 편이다. 삼성 역시 딸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데는 결혼을 하게 되면 시댁으로 그룹이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도 끊임없이 경영권 위협에 시달렸다. 정몽헌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그룹을 이어받았지만 정씨가로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당했다.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전 명예회장이 이끄는 KCC와 6남인 정몽준 회장이 이끄는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인 현대엘리베이트와 현대상선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경영권을 직접 위협했다.

매물로 나온 현대건설을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서로 사겠다고 경쟁을 벌이는 것을 설명하려면 10년전 ‘왕자의 난’까지 거슬러로 올라가야 한다. 왕자의 난은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2남인 정몽구, 5남인 정몽헌 형제가 벌인 다툼을 말한다.

2000년 3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에 대한 일방적인 인사에서 비롯된 그룹 경영권 싸움은 와병 중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나서 그룹은 5남에게, 자동차계열은 2남에게 주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정몽헌 전 회장의 자살로 그룹 경영권이 현정은 회장에게 넘어가면서 현대그룹의 적통을 둘러싼 다툼은 더 심해졌다.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은 그룹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매물. 그래서 ‘정씨 가문’의 현대자동차그룹이 앞장서고 현대중공업과 KCC가 측면지원하고 있다.

반면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은 지난 추석연휴기간 현대그룹이 TV 광고를 통해 정주영-정몽헌 부자가 건설현장을 함께 순시하는 화면을 내보내며 정통성을 강조했다.

박용오 전 명예회장의 자살을 불러온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도 빼놓기 어렵다. 2남인 박용오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두산산업개발의 계열분리를 요구하자 가족들은 회의를 열어 2005년 동생인 박용성 회장에게 회장직을 줘버린다. 박용호 회장은 이에 불복, 박용성 회장에 대한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지만 결국 두산가에서 축출된다. 박용오 회장은 성지건설을 만들어 재기를 꿈꾸지만 실패, 지난해 생을 마감했다.

‘오너십 환상’을 버려라

▲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금호아시나그룹은 다른 그룹들과 달리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경영상 의견으로 형제의 난을 겪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장남 박성용-2남 박정구-3남 박삼구 회장으로 이어지면 25년간 형제경영 전통을 이어왔다. 하지만 2000년 중반 박삼구 회장 주도로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유동성위기를 겪자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회장이 반발하면서 우애가 깨지기 시작했다.

결국 박삼구 회장은 경영상 이견을 이유로 박찬구 회장을 해임했고, 자신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국내 주요대기업들이 이같은 분쟁에 휘말릴때마다 CEO리스크가 커지면서 기업주가는 출렁거렸고, 조직원들은 술렁댔다. 쓰지 않아도 될 사과문을 써 언론에 게재했다. 때론 고소전에 휘말리면서 명예가 실추됐다.

그럼에도 오너십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완고해 보인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 고위관계자는 “모든 조직은 주인이 있어야 잘 돌아간다”며 삼성의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으로는 대우그룹이나 국제그룹, 해태그룹 등의 패망사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주인없는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기업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 역시 설명이 안된다.

국내 재벌들의 지배구조는 해외 주요 언론들로부터 ‘후진적’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일침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LG전자가 새 CEO로 창업주 일가인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을 택한데 대해 북한의 권력승계에 비유했다. 스마트폰 시장 패배를 이유로 등판시킨 구원투수가 노키아는 역동성있는 외부인사인 반면 LG전자는 창업주의 손자였다며 “창업주의 손자를 CEO에 앉히는 것이 LG전자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며 비꼬았다.

기업을 운영하는데 책임감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이 리더의 능력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조셉 엘 보워 교수는 리더가 갖춰야 할 능력을 4가지로 정의한다.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 인재발굴과 신뢰있는 사업파트너를 발굴하는 능력, 기업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기업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4가지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경영과 소유가 분리되야 더 잘할 수 있는 요건들이 많다.

사심이 들어간 후계자 책봉이 최상의 리더를 뽑는데는 장애물이 될 것은 자명하다. 꼬레오레도 마이클을 상원의원 시키고자 하는 욕심에 막내아들의 CEO의 자질을 간파하지 못했다. <대부>를 통해 CEO의 조건과 기업경영에 대한 생각을 다시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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