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업재해 인정, 전향적 정책 필요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환자에 대한 법원의 산업재해 인정은 결과 그 자체뿐 아니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산재 처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백혈병 사망자인 황유미씨 유족 등은 그동안 두 번씩이나 산재 인정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과 삼성 측을 상대로 3~4년 이상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번 승소가 19개 노동·정당·시민단체로 구성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환자 유족들이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겪은 현실의 벽은 너무나 두껍고 높았다. 삼성반도체는 산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요청한 유해물질 관리 자료 일부를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또 노사 양측을 상대로 정확한 조사를 통해 산재 판정을 해야 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충분한 자료도 없이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더구나 공단 측은 백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암 발병이 업무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직업성 암은 과로사, 근골격계 질환과 함께 산재 판정시 노사 간 이견이 가장 많은 분야다. 특히 암 환자의 경우 재해와의 연관성 입증이 전문적이고 복잡해서 노동자 개인이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재판부가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노동자 측에 입증토록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덜어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지난 2009년 한 해 산업재해 피해자는 9만7821명이며, 산재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는 21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노동자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18명으로, 미국의 3.7명, 일본 2.7명에 비해 훨씬 높다. 이 외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산재도 많다. 학습지 교사들처럼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지 않은 비정규직들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산재 기준과 관련 절차 개선에 나선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택배기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들도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산재보상은 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호막이다. 이 순간에도 까다로운 산재 인정 절차와 회사 측의 비협조 등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산재 신청 노동자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인식 전환과 절차 개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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