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죽음 그리고 사랑… ‘레스트리스’

백승찬 기자|

죽는 순간을 상상해본 적 있습니까.

27일 개봉하는 <레스트리스>(원제 Restless)에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그러나 몹시도 낭만적인 사랑 고백이 나옵니다. “네 장례식을 거들게. 난 장례식을 잘 알거든.”

검은옷을 즐겨입는 소년과 짧은 머리의 소녀가 주인공입니다. 에녹 가족은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아들 에녹(헨리 호퍼)은 의식을 잃습니다. 에녹은 3개월 뒤 깨어났지만 홀로 살아남았다는 자책과 외로움은 10대 후반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컸습니다. 에녹은 습관적으로 자살 기도를 하고,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을 기웃거립니다.

[영화는 묻는다]삶·죽음 그리고 사랑… ‘레스트리스’

짧은 머리의 소녀 애너벨이 장례식장에 온 에녹을 봅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애너벨은 같은 병동에 머물다가 먼저 떠난 미성년 환자들의 장례식에 자주 참석합니다. 에녹과 애너벨은 풋풋한, 그러나 시한부의 사랑을 시작합니다.

소년은 멀리 있는 죽음에 다가서려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향하는 소년의 손짓은 어딘지 어색하고 미숙합니다. 소년은 죽음을 맞이하기보다는, 죽음의 근처를 서성거림으로써 이승에서의 상실감을 달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소녀는 가까이 있는 죽음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나쁜 진단을 받은 뒤 언니는 대성통곡하지만 정작 애너벨은 무덤덤합니다. 소녀는 세상 이치를 깨달은 것처럼 편안한 표정입니다.

인간에 관한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인간은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죽습니다. 1%의 부자든, 99%의 빈자든 죽음 앞에선 평등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스티브 잡스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죽음을 가장 잘 사용한 사람에 속합니다. 그는 그 유명한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죽음에 직면해서는 타인의 기대, 자부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직 가장 중요한 것만 남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벌거벗었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십시오.”

영악한 잡스는 죽음마저 이용했습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잡스가 아니기에, 죽음을 통해 삶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할 만큼 대담하고 영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잡스만큼은 아니더라도,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상상할 권리는 있습니다. <레스트리스>의 소년, 소녀는 우회로를 거친 끝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그려봅니다.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낯설어하지 않도록, 남은 사람도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죽음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서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비루했든, 고됐든, 슬펐든, 죽는 순간만큼이라도 평안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게 떠난 애너벨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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