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배구단’ 75℃

백은하 기자

호기심 가득한 ‘몽정기’ 소년들의 유쾌한 스파이크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는 소년들. 일제히 한 팔을 곧게 하늘로 뻗더니 바람을 향해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린다. “60㎞로 달리면 A컵, 80㎞는 B컵, 100㎞는 C컵…, 80㎞ 이상의 속도를 내지 못하면 ‘슴가’의 감촉을 느낄 수 없어!” 중학교 소년들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공부도 미래도 아니다. 오직 여자 그리고 그녀들의 가슴이다.

26일 개봉하는 <가슴 배구단>은 성(性)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몽정기’ 소년들이 날리는 유쾌한 스파이크다. 배경은 1970년대 말 일본. 지방의 한 중학교로 전근 온 국어교사 미카코(아야세 하루카)에게 배구부를 지도하라는 미션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배구부로 말할 것 같으면 입단 이후로 한 번도 배구를 해본 적 없는 ‘바보부’로 불리는 집단이다. 여자 탈의실을 훔쳐보거나 성인 잡지 돌려보기를 주업으로 삼던 이 한심한 녀석들은 급기야 미카코에게 “우리가 배구대회에서 1승을 하면 선생님은 가슴을 보여주세요”라는 반역적 제안을 한다. 엉겁결에 승낙을 얻은 소년들은 “하나 둘, 하나 둘” 구령 대신 “슴가, 슴가”를 외치며 맹연습에 돌입한다.

[영화의 온도]‘가슴 배구단’ 75℃

“내 가슴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이건… 모두의 꿈이야!” 아이들의 장난에 변변히 화도 못내지만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교사 미카코를 연기한 아야세 하루카는 일본의 성인화보, 그라비아 출신 아이돌이다. 하지만 배우로 데뷔한 이후 성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결과 그녀의 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연기로 옮겨간 지 오래다. 순한 눈매의 이면을 보여주었던 드라마 <백야행>을 거쳐,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사랑받은 <호타루의 빛>에서는 ‘건어물녀’(멀쩡한 외모, 멋진 직장을 가지고도 혼자 쉬는 게 좋고 연애를 귀찮아 하는 여자)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가슴 배구단>으로 2010년 제33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우수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지루하고 획일화된 기성세대로 진입하기 직전 ‘청춘’이라는 절기에 유독 짙은 애정을 바치는 일본영화에서 청춘영화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청춘들은 <키즈리턴>에서 <식스티나인>처럼 절망 바닥에서 살아남아 질주하거나, <하나와 앨리스> <허니와 클로버>처럼 순정만화의 세계에서 따뜻한 꿈을 꾼다. 그중 <워터보이즈>의 수영반, <스윙걸즈>의 합주부, <가슴 배구단>의 배구부에 이르기까지 교내 동아리 활동을 배경으로 하는 소년소녀들의 성장코미디는 일본 청춘영화 계보에서 꽤 튼튼한 족보를 자랑한다. 도발적 소재, 엉뚱한 유머를 훈훈한 음악과 순진한 얼굴 속에 비벼넣은 <가슴 배구단>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반칙 없는 게임을 펼친다. 과연, 소년들은 선생님의 가슴을 보게 될 수 있을까. 그 마지막 궁금즘만으로도 이 영화의 온도계는 뜨겁게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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