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우린 부부다, 서로 사랑하니까”

곽희양 기자

공무원과 법대생 커플… 양가 부모 동의로 동거 시작

“법적 결혼 인정 받고 싶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지선언으로 미국에선 동성결혼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법제화돼 있으나 한국에선 동성결혼이 공론화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게 현실이다.

분홍색 스카프를 두른 이지영씨(가명·33·공무원)와 단발머리를 한 김지연씨(가명·25·대학생)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웃음이 터질 때마다 서로를 바라봤다. 1년반 가까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부부다. 이들은 부부의 정의에 대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은 최근 성소수자 등을 위한 특별사진전(정상가족 관람불가전)에 자신들의 사진을 내놨다. 출품 이유를 묻자 “성소수자도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답했다.

동성애자 커플인 이지영·김지연씨가 작품 사진 촬영을 위해 춤을 추고 있다. | 언니네트워크 제공

동성애자 커플인 이지영·김지연씨가 작품 사진 촬영을 위해 춤을 추고 있다. | 언니네트워크 제공

4년 전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알게 된 이들은 2010년 말 우연히 함께 추게 된 탱고를 통해 사랑에 빠졌다. 이씨는 “나 당신 되게 좋아해. 몰랐어?”라며 수줍게 고백했다. 부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랑은 이들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도록 하는 힘이 됐다. 김씨는 “지영씨를 만나기 전까진 ‘세상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니, 나도 세상을 받아주지 않겠어’라는 생각에 빠져 지냈다”면서 “그러나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양가 부모를 설득해 동의를 받았다. 이씨의 어머니도 ‘당당하게 살라’며 격려해줬다.

이들은 어느 부부보다 평등하게 지낸다. 김씨는 집안이 정리정돈돼 있지 않은 모습을 못 참는 반면, 이씨는 바닥에 쌓인 먼지를 끔찍이 싫어한다. 이 때문에 김씨는 바닥청소에, 이씨는 정리정돈에 신경을 쓴다. 김씨는 “집안일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진 않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채식주의자인 지연이 때문에 내 입맛도 바뀌었다”면서 “서로를 배려하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의 부부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파트 분양을 신청하려다 포기한 이씨는 “우리도 신혼부부인데 왜 안되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2년 전 갑상샘 수술을 한 뒤 통원치료를 받는 이씨는 “내가 다시 입원하게 되면 내 보호자는 지연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직장일로 바쁜 지영씨 대신 부동산 계약을 하려고 할 때도 ‘제가 부인(혹은 남편)이니까 대신 할게요’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아이 양육과 상속 등의 문제도 큰 걸림돌이다. 이씨는 “독신이어도 입양이 가능하긴 하지만, 한 명은 법적으로 아이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된다”면서 “세상은 엄마가 두 명인 집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동성결혼의 합법화에 머물지 않는다. 변호사를 꿈꾸는 법대생인 김씨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해 헌법소원 등 애를 써볼 계획”이라면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소수자의 가족 구성권을 인정하는 사회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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