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

주영재 기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김준수 지음 | 알마 | 216쪽 | 1만5000원

"어널 어널 어널이 넘자 어널/ 밀고 당기고 올라가네 북망산천으로 올라가네…"

상엿소리는 죽음의 끝자락을 함께하고 다음 세상을 보살펴주는 노래다. 그 유래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조카를 중국 제나라 왕으로 옹립하고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전횡이 한나라의 유방에게 밀려 섬으로 도망갔다가 결국 포로가 되어 낙양으로 향하던 중 "유방을 섬길 수 없다"며 자결한다. 사람들이 그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부른 '해로가'와 '호리가'가 상엿소리의 시작이라고 한다. 상엿소리는 장례 절차가 간소화되고 납골당이 생긴 요즘 주변에서 듣기가 쉽지 않다.

[책과 삶]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

<이제 가면 언제 오나>는 사라지는 직업의 하나가 되어버린 상엿소리꾼의 삶을 기록했다. 전라도 강진의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이 주인공이다. 게이 인권운동가, 에이즈에 감염된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를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담담하게 기록했던 사진가 김준수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했다.

193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뒤 아버지의 고향인 강진으로 돌아온 오충웅 옹은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수가 되고 싶어 약장수, 악극단을 쫓아다닌다.

"서울로 갔으믄 출세혔을지 모를 거인디, 어쩌다 남쪽으로 간 거요. … 악극단을 따라 댕기는디 밤무대여, 밤무대란 말씨. … 난 매번 재창을 받아갖고 해부렸제, 내가 최고로 인기 좋았음께."

가수를 꿈꾸며 관중 앞에 섰던 '쪼깐하고 이쁘게 생긴' 그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노래는 상엿소리로 이어졌다.

남의 논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날품팔이를 하며 살기도 하던 그는 어느날 초상집에서 흘러나오는 상엿소리에 꽂혔다.

"가락이 참 좋드랑께. 거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막막허니, 나도 모르게 미친놈마냥 흥얼흥얼 따라한단 말여, 그래서 그 놈을 내가 배와서 한번 해바야 쓰것다 생각허는디,…" 그는 "초상이 났다 카면 쫓아가고 또 쫓아가불고"하며 소리를 배웠고 무당에게서 배우기도 했다.

그는 장례 간소화와 납골당 이용으로 상엿소리를 안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녹음기가 그의 소리를 대신하는 건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아직 나가 짱짱한디, 거 몇 푼 아낄라고, 그캐? 참말로." 천직으로 알고 해왔는데 다른 소리꾼도 아니고 기계 소리에 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그는 소리를 그만 해야겠다고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또 찾아오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부탁허는디 어찌 거절할 수 있겄는가?" "내일 다시" 초상이 난 옆 마을로 소리를 하러 가는 그는 또 다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소리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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