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거목’ 배우 장민호 별세

문학수 선임기자

60여년간 정통 연극의 맥을 지켜온 한국 연극계의 거목 장민호 배우가 2일 새벽 1시45분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927년 황해도 신천군 기사면에서 기독교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1946년 봄 단신으로 월남했다. “고향 마을에 들어온 악극단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생전에 회고했던 고인은 남한에 도착한 이후, 신극(新劇)의 선구자인 현철이 운영하던 조선배우학교에 입학해 연극수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생애 첫번째 공식무대는 기독교 계통의 작은 극단에서 올렸던 <모세>(1947)였다. 직후 KBS 성우로 입사해 생계의 기반을 마련한 고인은 1950년에 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에 입단해 장구한 배우 생활의 막을 올렸다. 생전에 출연한 연극은 모두 200여편. 그 중에서도 괴테의 <파우스트>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연극계의 거목’ 배우 장민호 별세

고인은 40세의 젊은 나이였던 1967년에 국립극단 단장으로 취임해 1971년까지 재임했으며, 1980년에 다시 단장직을 맡아 이후 10년간 재임하면서 국립극단장직을 15년이나 맡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퇴임 후에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배우로서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생애 마지막 작품은 지난해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개관 공연이었던 <3월의 눈>. 연극계의 오랜 벗이었던 원로배우 백성희(87)와 호흡을 맞춘 것이 배우인생의 마지막 방점이 됐다. 이후 폐기흉으로 입원해 1년 넘게 투병을 이어갔으나 결국 병상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에게 쏟아지는 연극계의 찬사는 눈부시다. 연극사학자 유민영 단국대 석좌교수(75)는 자신의 저서 <한국인물연극사>에서 “해방 이후 데뷔한 배우로는 장민호를 능가할 인물이 아직 없다”며 “근대 리얼리즘 연극의 거대한 산맥에서 언제나 봉우리에 서 있던 정석 연기의 화신”이라고 썼다. 구히서 연극평론가(73)는 “뛰고 달리고 몸부림치기보다는 걷고 서성거리고 자제하는 분위기, 일그러진 얼굴에 광기 어린 외침보다는 차갑게 돌아서서 무겁게 내뱉는 분노가 어울리는 얼굴이고 목소리”라며 “그가 서면 그곳이 곧 무대의 중심이고 작품의 원줄기”라고 평했다. 2일 아침 고인의 별세 소식을 알려온 국립극단 손진책 예술감독(65)은 “연기의 정점을 보여주면서 후학들에게 하나의 상징으로 남은 존재”라며 “국립극단의 백성희장민호극장은 고인에 대한 후학들의 오마주인 동시에 모든 배우들의 예술적 좌표로 자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인은 호적상 생년이 1924년이지만 7년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으로 내려와 호적 정리를 하는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며 “실제 태어난 해는 1927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영결식은 5일 오전 10시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연극인장으로 거행되며, 경기 성남 메모리얼파크에 안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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