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하마의 땀이 약재가 되듯, 생체모방은 환경과 경제를 풍요롭게 할 것

문학수 선임기자

▲ 새로운 황금시대…제이 하먼 지음·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464쪽 | 2만원

스위스의 발명가인 조르주 드 메스트랄(1907~1990)은 1941년 알프스 하이킹을 하다가 자신의 옷과 강아지의 털에 산우엉가시가 잔뜩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명 ‘도꼬마리’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옷과 털에서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행운의 발견이었다. 그 강력한 접착성에 힌트를 얻어 벨크로(일명 찍찍이)가 탄생했다. 유명한 생체모방의 사례다.

저자인 제이 하먼의 설명에 따르면 생체모방이란 “자연으로부터 배운 것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하마의 땀을 이용한 자외선 차단제 같은 게 그렇다. 인간은 모공을 통해 소금물(땀)을 흘려보냄으로써 피부의 열기를 식힌다. 한데 하마는 혼합된 화학물질을 분비해 피부의 냉각 문제를 비롯한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한다. 하마의 땀은 “무독성의 뛰어난 자외선 차단제일 뿐 아니라 소독제, 살충제, 항진균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마의 점액은 최근 약학 분야에서 흥미로운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책과 삶]하마의 땀이 약재가 되듯, 생체모방은 환경과 경제를 풍요롭게 할 것

저자는 또 나뭇잎을 모방한 태양광 전지, 도마뱀의 생명 활동을 기초로 한 의약품, 상어의 피부를 모방한 항균 페인트, 삼나무 숲을 기반으로 삼아 조직 구조를 발전시켜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 등을 소개한다. 이 모든 것들이 생체모방의 사례다.

저자는 생체모방이야말로 “21세기의 비즈니스,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 우리 모두를 위한 황금시대”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책의 핵심이다. 물론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생체모방이 자본의 이윤추구와 결합하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파괴가 더 심각하게 자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는 오해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반론한다. “환경문제나 경제문제의 대부분은 구태의연한 비즈니스 방식에서 비롯한다. 업계는 아직도 산업혁명으로부터 구동된 ‘열을 가하고, 두드리고, 다듬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전혀 지속가능성이 없다. 자연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존속하고 번창하면서도 그 근거가 되는 자원을 다 써버리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다. 자연은 압도적인 낙관론으로 새롭게 적응하고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재창조한다.”

말하자면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혁명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하는 시대”로 가자는 이야기다. 값싸고 풍부했던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땅이 벌거벗겨지고 새로운 공중보건의 문제와 지구 온난화의 문제가 등장했다고 지적하면서 최소한의 자원과 에너지를 이용하는 자연의 철칙을 따를 것을 권한다. 그것이 곧 토대가 되는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재생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생체모방 기술을 응용하는 미래의 산업 지형도를 그린다. 저자는 그것이 벌써 우리 앞에 바싹 다가와 있다고 말한다. 10~20년 내에 의약과 항공우주, 제조, 운송 등 시장 어디에서나 생체모방 제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미 가시화된 성과들도 적지 않다. 고래의 지느러미를 모방한 풍력 기술은 돌풍이 불어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을 가능하게 했으며, 뱀과 지렁이의 생체는 윤활이 필요 없는 새로운 소재를 만들거나 특별한 질병을 위한 약물 개발에 일조했다. 물총새를 모방한 일본 신칸센의 사례처럼 새의 날개 연구는 항공과 운송 분야에 영감을 주었다. 이처럼 숲속의 동식물과 바다의 각종 생명체들은 무궁무진한 산업적 영감의 원천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인 제이 하먼은 호주 태생으로 머독대학에서 경제학, 심리학, 비교종교학을 공부했고 호주 해양야생국에서 12년간 동식물 연구가로 일했다. 1982년 에너지 연구그룹 ERG를 설립해 생체모방에 관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이후 팍스 사이언티픽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자연을 모방해 산업에 응용하는 수많은 특허와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냉장고 터빈 보트 등 다양한 제품을 직접 디자인해 만들면서 생체모방을 실현해왔다.

그는 IT 이후 세상을 바꿀 가장 중요한 혁명으로 생체모방이 도래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면서, 혁신적인 과학자와 사업가들이 생체모방을 적극적으로 포용해 새로운 비즈니스의 길을 열어갈 것을 권한다. 그것이야말로 “전 인류의 삶을 지원하고 향상시키는 한편, 우리의 아름다운 지구를 보전하는 새롭고 지속가능한 산업혁명”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곤경에 처한 세계는 생체모방을 통해 재창조될 수 있다. 수천억, 수조개에 달하는 자연의 해법은 새로운 세계 건설의 원대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 우리의 병든 환경과 대기를 구하고, 강력하고 새로운 지속가능한 경제를 낳을 것이다.” 이 문장에서도 드러나듯이, 책의 곳곳에서는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저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생체모방에 기반한 저자의 낙관론이 자본주의라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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