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이 가톨릭의 새 터전… 보수파 추기경들도 인정

김근수 | 평신도 신학자·<교황과 나> 저자

(2) 가톨릭 교회는 왜 변화를 택했나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랜 조직이 로마가톨릭교회다. 그 대표자인 교황이 스스로 사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작년 2월 베네딕토 16세가 자진 사임을 발표했다. 그 충격과 의미는 아직도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대체 가톨릭교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3년 2월11일 월요일 아침 추기경회의가 끝날 무렵 베네딕토 16세가 자진 사임을 발표했다. 가톨릭교회는 충격에 빠졌다.

“하느님 앞에서 여러 번 양심 성찰을 했습니다. 또 나이가 많아 제 몸이 더 이상 베드로 사도직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베드로의 직무는 그 영성적 본질에서 행위와 말뿐 아니라 고통과 기도를 통해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체력뿐 아니라 정신력도 중요합니다. 제게 맡겨진 직무를 더 잘 수행하기에는 제 무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자유에서 로마 주교직과 베드로의 후계직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교회사에서 엄청난 변화다. 교황직을 내려놓는 일은 엄청난 용기와 겸손이 없으면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주교, 추기경 자리를 노리는 출세주의가 널리 퍼져 있는 현실에서 그는 모범을 보였다. 그의 사임은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등장부터 2013년 그의 퇴임까지 36년간 지속된 이른바 ‘보수교황의 시대’가 퇴장함을 의미한다. 보수적 교황으로는 가톨릭교회가 더 이상 현대사회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3월13일(현지시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바티칸시티 성베드로 대성당 교황 발코니에서 새 교황 탄생을 기다리던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3월13일(현지시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바티칸시티 성베드로 대성당 교황 발코니에서 새 교황 탄생을 기다리던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 경제 빈곤·사회 불평등 적극 대처 시대적 흐름
최초의 비유럽권 출신‘개혁 교황’ 탄생은 필연

지금 유럽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교회의 퇴조는 유럽 출신 교황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준다. 출산율이 높고 새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는 가톨릭의 새 터전으로 인식된다. 그곳은 대부분 개발도상국들로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한 지역이다. 가톨릭 지도부는 이런 흐름을 인정한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임명한 추기경들이 개혁파로 분류되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한 점에서 그렇다. 50%를 훨씬 넘는 보수파 추기경들이 소수파의 개혁적 인물을 교황으로 뽑았다. 정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작년 3월 교황선거가 열렸던 시스티나 성당을 지난 6월 말 방문했다. 115명의 추기경들이 앉아 있었을 그 자리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추기경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가톨릭교회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들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막막한 교회의 앞날을 생각하며 깊은 회한에 빠졌을 것이다. 마치 패망 직전의 군인들처럼 비장한 얼굴로 말이다. 그때가 겨우 1년 전이다.

지난해 3월12일 오후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들은 성서에 손을 얹은 채 교황 선거 규칙을 따르고 교회의 자유를 존중하며 선거 전후에 비밀을 유지하겠다고 서약했다. 오후 5시43분 선거가 시작됐다. 투표장 천장에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추기경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녁 7시41분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다음날 교황 선거 다섯번째 투표에서 당선에 필요한 77표를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얻었다. 오후 7시6분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 탄생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적으로 교황이 입는 보라색 제의를 걸치지 않고 하얀 수단 차림으로 나타났다. 황금 십자가가 아닌 은으로 된 소박한 십자가를 목에 걸었다. 교황이 신는 빨간 구두 대신 검정 구두를 신었다. 조금 뚱뚱한 몸집에 낡은 안경을 큰 귀에 걸친 그는 양팔을 드는 전통적인 교황식 인사 대신 오른손을 들어 군중에게 소박하게 인사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딱 1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교황청이 확 달라졌다는 느낌이 밀려온다. 베드로 대성당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 병사의 얼굴에도, 안내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도 화사함이 가득하다. 교황청 영내에서 만난 수위, 식당 직원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교황청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서 모두 자신감이 묻어난다. 무엇인가 활력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교황청에 봄이 다시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교회에서 세계적 인물로 떠오른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001년 9·11 당시 로마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 사무총장이던 뉴욕 교구장 이건 추기경은 희생자를 위한 미사를 위해 본국으로 급히 돌아가야 했다. 그 직책을 대신 맡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빼어난 진행 능력을 발휘해 지명도가 올라갔다. 2005년 교황 선거에서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된 다음날에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교황 선거에서 아주 특별한 역할을 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두번째 투표에서 40표(35%)를 얻어 라칭어 추기경과 경쟁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많은 표를 얻은 사실에 놀란 그는 곧 동료들에게 라칭어 추기경에게 투표하라고 부탁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신학적 견해를 공유한 라칭어 추기경이 교회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1992년 56세의 나이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주교로 임명될 때까지 그는 출세하려 애쓰지 않았고, 아르헨티나 천주교회에서 변두리에 머물던 평범한 사제였다. 그는 내전 직전 상황에 놓인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나 유신시대의 김수환 추기경이 처했던 것보다 더 험한 일들을 겪어야 했다. 군사정권이 수만명의 시민을 학살하고 납치하는 참상,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포클랜드 전쟁, 독재와 전쟁으로 불거진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의 내부 갈등을 그는 목격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후 당사자들이 사법부의 처벌을 받는 과정도 지켜봤다.

2005년 선거를 경험하고 나서 교회를 보는 그의 눈과 책임감이 크게 달라졌다. 8년 뒤인 2013년 선거에서 그는 자신의 선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로마로 갔는지도 모른다. 2005년에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양보로 베네딕토 16세가 탄생했다면, 2013년에는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생한 것이다. 비유럽 출신의 교황,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개혁교황의 출현은 역사적 필연인지 모르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준비된 교황이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로 서품된 사람 가운데 최초로 선출된 교황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은 물론 남아메리카, 미주, 남반구, 신대륙 출신의 첫 교황이다.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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