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런닝맨 누가 1등’까지 베팅… 걸 수 있는 건 뭐든지 건다

심진용·박용하 기자

불법 스포츠 도박의 세계

▲ 사이트 찾아 회원 가입 단 1분
성인 인증 없어 청소년 접근 무방비
첫 교체선수·첫 코너킥 누구 등
다양한 유형에 ‘쪼개기’ 베팅 가능

▲ 일명 ‘놀이터’ 개발부터 홍보까지
대행업자들, 판촉전도 치열
초고배당 터지면 아예 IP 끊고 ‘먹튀’
“돈 따려야 딸 수 없는 구조”

구글에 검색어 몇 개만 입력하면 금방 결과가 나온다. 불법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채 30초가 되지 않는다. 회원 가입도 금방이다. ID와 비밀번호를 정하고 통장 계좌번호와 예금주 이름만 넣으면 된다. 성인 인증 절차는 ‘당연히’ 없다. 청소년도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다. 사이트 회원 가입 절차를 마무리하자 “저희 놀이터는 해외 서버업체로 고객님의 신변 보호 및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놀이터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사설 토토 사이트를 가리켜 흔히 ‘놀이터’라고 한다.

■ 깊고도 넓은 불법 스포츠 도박의 세계

사설 토토의 베팅은 종목별·유형별로 대상이 무궁무진하다. 야구·축구 등 인기 프로 스포츠는 물론이고 이종격투기나 바둑, e스포츠에도 돈을 걸 수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3년째 불법 스포츠 도박 근절 업무를 맡고 있다는 김인배 대리는 “수요만 있으면 당구나 크리켓도 훌륭한 베팅 상품이 된다. 심지어는 TV 예능 <런닝맨>에서 누가 1등을 차지할지를 두고 돈을 건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창의적’인 각종 유형의 베팅 상품도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첫 공이 볼일지 스트라이크일지, 축구 경기의 첫 교체 선수가 누구일지, 공 점유율은 어디가 높을지, 코너킥은 어디가 먼저 찰 것인지, 농구에서 두 팀 점수 합은 홀수일지 짝수일지 등을 두고 돈을 걸 수 있다. 이닝별로, 전·후반별로, 쿼터별 혹은 세트별로 누가 이길 것인지 ‘쪼개기’ 베팅도 가능하다. 합법 스포츠토토처럼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최근에는 아예 스포츠와 관계없는 ‘사다리’, ‘홀짝’ 등 미니게임도 등장했다. 경기를 보면서 사이트 한편에 게임 창을 띄워놓고 돈을 걸 수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 사이버수사팀 백승환 수사관은 “도박 특성이 빨리 해서 결과가 눈에 나올수록 중독성이 강해진다”면서 “일반 오락실도 합법은 게임을 한번 하고 나면 일정 시간 재게임을 못하게 하는데 불법은 변조해서 사이클을 빠르게 한다”고 했다.

베팅 상품이 다양하기 때문에 승부 전체를 조작할 필요가 없는 만큼 현장에서 활동하는 감독이나 선수도 불법 스포츠 도박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강동희 전 프로농구 감독은 지난 2013년 승부 조작 혐의로 징역 10월과 추징금 47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강 전 감독은 “한 경기 전체를 조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1쿼터만이라도 져달라”는 브로커의 제안을 수락하고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 전해 적발된 전 프로야구 선수 박현준은 첫 회 볼넷을 기록하는 수법으로 돈을 챙겼다.

■ 뜨거운 판촉전, 치열한 업체 경쟁

사설 토토 홍보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진다. 여러 경로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문자메시지나 e메일을 보내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원들에게 쪽지를 보내 끌어들이기도 한다. 트위터·페이스북에서도 홍보가 이어진다. 단속의 눈길이 닿기 힘든 심야시간, 해외 축구 경기가 열리기 직전이 홍보 피크 타임이다.

자금도 있고 사설 토토 사이트 운영에 관심도 있지만 관련 지식이 없는 이들을 위한 대행업자들도 있다. 이들은 보증금과 월 사용료를 받으며 사이트 개발부터 관리, 홍보까지를 책임진다. 프랜차이즈 업체가 가맹점주를 끌어들이는 것과 유사한 형태다.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달 적발된 국내 최대 규모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경우 해커 등에게 의뢰해 경쟁 사이트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까지 감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인배 대리는 “당시 디도스를 의뢰하는데 10억원 이상 들어간 것으로 안다”면서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10억원이야 아무것도 아니니 충분히 이득을 본 셈”이라고 말했다.

■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체육진흥공단은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연간 1000여건의 관련 제보를 받고 있다. 믿을 만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수사기관에 공식 수사를 의뢰한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지난해 총 26건의 불법 스포츠 도박을 적발했고 운영자 49명 등 115명을 검거했다. 이처럼 꾸준히 단속이 이어지고 있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은 여전히 성황이다. 중국·필리핀 등 해외에 주로 서버를 두고 있어 단속이 어렵다. 해외 경찰과의 공조도 쉽지 않다.

단속을 하고 사이트를 폐쇄해도 금방 다시 생긴다. 수시로 도메인을 바꿔 꼬리잡기가 어렵다. 백 수사관은 “사이트를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이 중요한데 이들의 실체를 확인하는 게 난제”라면서 “운영자를 잡아도 프로그래머 소재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 일확천금은 가능할까

불법 스포츠 도박은 돈 되는 사업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자료를 보면 사설 토토 시장 규모는 연간 7조6100억원에 이른다. 홍보에 그렇게 열을 올리고 돈을 주고 디도스 공격까지 감행하는 것도 그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백승환 수사관은 “돈 되는 사업이면 어디나 끼는 조직폭력배들도 사설 토토 사업에 깊숙이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조폭들이 하던 기존 사업보다 사설 토토가 훨씬 돈이 많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사이트를 운영하는 쪽의 이야기다. 다른 도박과 마찬가지로 사설 토토 역시 베팅으로 돈을 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희박한 확률로 고배당 ‘대박’을 거뒀다 하더라도 ‘먹튀’ 위험이 상존한다. 김인배 대리는 “첫 공이 볼일지 스트라이크일지 누가 아느냐. 말 그대로 운에 달린 것이고 운이 몇 차례나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어 “저배당일 경우 사이트에서도 더 많은 베팅을 유도하기 위해 착실히 돈을 지급한다. 그러나 사이트 수익선을 넘어서는 고배당이 터지면 그냥 IP를 끊어버린다”면서 “돈을 따려야 딸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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