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지도자’ 잃은 상실감이 ‘국민장’ 승화

홍진수·이로사·황경상기자

자발적 조문인파 성철스님 입적 이후 처음
“현 지도층 도덕적 리더십 부재 실망감 표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는 추모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며 국민적 추모 신드롬을 낳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에만 조문객이 40만명에 육박하면서 김 추기경의 장례식은 사실상 ‘국민장’으로 승화되고 있다.

<b>‘마지막 동행’</b> 19일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명동거리까지 길게 늘어서 있다. |남호진기자

‘마지막 동행’ 19일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명동거리까지 길게 늘어서 있다. |남호진기자

17일 9만5000여명, 18일 14만5000여명의 조문객이 명동성당을 다녀갔지만 추모 행렬은 선종 4일째인 19일에도 끝없이 이어졌다. 전날보다 더 이른 새벽 4시부터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일반조문이 시작되는 오전 6시쯤 조문행렬은 지하철 명동역까지 2㎞ 이상 길게 늘어섰다.

서울대교구 장례위원회 관계자는 “김 추기경은 생전에 늘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기 때문에 국민들이 더욱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문객들은 추운 날씨 속에 2~3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못했다. 한경희씨(34)는 “오늘 입관식을 하면 다시 얼굴을 못 뵈니까 꼭 와야 할 것 같아서 오전 5시에 집에서 나왔다. 마음이 아프지만 하느님 곁에 가신 거라 기쁘기도 하다”며 울먹였다.

임정호씨(24)는 “어제 저녁에 들렀다가 줄이 너무 길어 다시 왔다”며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교 신도 정주호씨(28)는 “형태는 다르지만 종교는 다 똑같다고 배웠다”며 “추기경께서 아무 조건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늦게 온 탓에 얼굴을 뵙지는 못할 것 같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추기경이 남긴 ‘선행 바이러스’는 모든 이들에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3일 동안 근 40만명이 명동성당을 찾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는 두드러졌다. 조문객들은 경건한 표정으로 행렬을 지키고, 주변 상인들은 자원봉사에 나섰다.

삼일로 창고극장 정대경 대표(50)는 극장 앞에서 줄 서 있는 추모객들에게 3일 동안 커피와 보리차를 대접했다. 정씨는 “나도 가톨릭 신자라 뵙고 싶긴 한데, 이 일이 나름대로 더 좋은 조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과거 한국 사회의 고비마다 말과 행동으로 방향을 제시해줬던 분이 돌아가신 데 대한 상실감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선종 자체가 안타까운 것뿐 아니라, 말과 행동이 다른 현 지도자들에 대한 환멸과 함께 도덕적 리더십의 부재라는 실망이 애도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유례없는 추모 행렬과 신드롬은 그만큼 우리 시대를 이끌 정신적 지도자가 없었다는 불행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인간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선한 마음을 김 추기경이 돌아가시면서 보여줬고, 그게 사람들의 본질적인 부분을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