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앞두고 또 사망한 현대중공업 노동자…“구조 안 바뀌면 사고는 계속”

이혜리 기자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울산조선소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서 묵념과 헌화하고 있다. 울산조선소에선 지난 24일 50대 노동자 1명이 철판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연합뉴스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울산조선소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서 묵념과 헌화하고 있다. 울산조선소에선 지난 24일 50대 노동자 1명이 철판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울산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조는 위험한 작업을 2인1조가 아니라 노동자 혼자 하도록 두고, 기계 정비 작업은 하청화한 게 이번 사고 배경이라고 지목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혼란이 우려된다는 경영계와 달리 일선 현장에선 안전 관리에 큰 변화가 없거나, 형식적 대응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5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전날 사고는 사망한 노동자 A씨(50)가 3톤 가량의 철판을 리모콘을 통해 크레인으로 쌓는 작업을 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리모콘이 오작동해 철판이 움직이면서 노동자가 끼여 사망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는 2인1조로 작업하지 않고 A씨가 혼자 작업을 했던 게 사고의 주요 배경으로 보고 있다. 크레인 운전과 별도로 철판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역할의 노동자가 있어 위험 요인을 줄여야 했지만, 이번 사고 현장에서는 1명이 크레인 운전과 철판을 옮기기 위한 작업을 병행하다보니 리모콘 오작동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20년 4분기 노사가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때 노조가 리모콘 크레인 작업은 위험하기 때문에 반드시 2인1조로 작업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현대중공업 사측과 합의가 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측은 “리모콘 크레인 작업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무조건 2인1조 작업을 적용하기보다는 관리자가 작업장 상황에 따라 2인1조 작업을 할 지 판단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라며 “지금도 (그 판단에 따라) 2인1조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2인1조 작업 의무화를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반영되지는 않았다. 2019년 정부는 공공기관은 위험작업 때 2인1조 작업을 하도록 대책을 냈다.

노조는 또 크레인 오작동에 대해 수차례 수리를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크레인 정비는 현대중공업모스라는 계열 회사가 담당하며, 모스의 또 다른 하청업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안전관리까지도 ‘다단계 하청’으로 이뤄지는 구조 속에서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병조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값싼 노동력을 하청화 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현대중공업의 욕심이 부른 참사”라며 “월·분기·반기 등 정기적인 예방정비를 해야 하는데 하청업체는 인력이 모자라고 넉넉한 비용도 없기 때문에 예방정비가 잘 되지 않고, (기계는) 고장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의 ‘리모콘 크레인 작동’ 표준작업지도서를 보면, 리모콘 오작동이 유해위험요인으로 기재돼 있다. 안전대책으로는 리모콘 취급에 주의하고 작업 전 작동부위를 1~3회 작동시켜 이상한지 확인하며, 크레인과 리모콘의 오동작 때 비상 정지 스위치로 차단해야 한다는 등의 긴급조치 방법이 제시돼있다. 하지만 이같은 매뉴얼은 별다른 효용이 없었다. 김 실장은 “과거 현대중공업에서 일어난 사고는 떨어지는 등 원시적인 사례였지만, 최근 사고들은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관심만 있었다면 충분히 예방가능한 사례들”이라며 “기업이 안전조끼를 입혀놓은 안전관리자를 세우는 등 보여주기식 경영을 고집해 일어나는 사고”라고 했다.

크레인 오작동 수리를 요청했었다는 노조 주장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수리 요청이 들어온 크레인은 사고가 난 해당 크레인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사고 크레인의 마지막 점검도 최근(이달)에 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울산조선소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서 묵념과 헌화하고 있다. 울산조선소에선 지난 24일 50대 노동자 1명이 철판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연합뉴스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울산조선소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서 묵념과 헌화하고 있다. 울산조선소에선 지난 24일 50대 노동자 1명이 철판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연합뉴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혼란이 예상된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열심히 하더라도, 중대재해법이 명확하게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가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아 애꿎은 기업이 형사처벌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노조와 시민단체 쪽에선 산재 감축을 위해 기업들이 제대로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중대재해법이 제정되고 1년의 기간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거의 없다”며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현 사무국장은 “울산 지역은 지난해 1월 중대재해가 1건 발생했지만, 올해는 벌써 3건이나 발생했다”며 “기업들이 안전보건 조치를 통해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보다는 어떻게든 ‘처벌 1호’를 면하겠다는 방향으로 대처되고 있어서 노동자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용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사무차장도 “(안전 관련) 매뉴얼이 있지만 작동을 하지 않는 사례가 최근에도 나타나고 있다”며 “환기를 위한 팬을 설치해놓고 주말·야간 근무 때 돌리지 않는다거나, 안전에 대해 노동자 의견 청취를 하지만 형식적으로 서명을 하고 끝나는 식”이라고 했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이날 담화문을 내고 “올해를 중대재해 없는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특별 안전 점검에 들어가는 등 노력하던 중이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모든 안전조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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