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버티자” 정부의 지역서점 예산 삭감에 ‘조용한 저항’하는 이들

김세훈 기자    정효진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지역책방 마이어, 날다에서 열린 ‘심야책방’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지역책방 마이어, 날다에서 열린 ‘심야책방’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의 동네책방 ‘마이어, 날다’에 10여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심야책방’ 프로그램의 일환인 번역 강의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강연자는 자신의 번역 경험을 공유했고, 참가자들은 각자 번역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강연자의 농담에 중간중간 웃음소리도 새어 나왔다.

약사로 일하던 조수현씨(49)는 3년 전 이곳에 그림책 전문 책방을 열었다. 책방은 도서 판매보다는 문화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된다. 매달 마지막 주에는 강연자를 초청해 수업을 듣는 ‘심야책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번역부터 글쓰기까지 여러 주제를 아우른다. 직장인부터 고등학생까지 참여자들의 연령대와 직업도 다양하다. 조씨는“참여자 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한 번 오게 되면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하신다. 이후로도 ‘그림책 설명이 듣고 싶다’면서 자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내년부터 모임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월 내년도 도서지원사업 예산 60억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동네서점지원예산 11억도 전액 삭감됐다. 주로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동네 책방에 지원돼 온 예산이었다. 당장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던 동네 책방 운영자와 이용객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발표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방의 공공성을 무시되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지역책방 ‘마이어, 날다’에서 열린 심야책방 프로그램이 열렸다. 한 참가자의 노트에 글씨가 빼곡하다. 정효진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지역책방 ‘마이어, 날다’에서 열린 심야책방 프로그램이 열렸다. 한 참가자의 노트에 글씨가 빼곡하다. 정효진 기자

조씨도 몇 년 내에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공동 책방지기인 김성희씨(44)는 “지원사업이 끊기면 강사 섭외는 거의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동네 서점이 책만 구매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문화를 나눈 공간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연자로 나선 박재연씨(39)는 “정량적인 요소만 따질 게 아니라 동네책방 이용객들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커뮤니티 문화를 고려해야 한다”며 “지원사업 덕분에 다양한 기획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인기 강사 위주의 프로그램만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동네책방이 ‘동네 사랑방’ ‘문화 커뮤니티’라고 했다. 이명아씨(54)는 “책방마다 아동문학·한국고전문학 등 각기 다른 취향을 만날 수 있다. 행정기관이 대신할 수 없는 일종의 문화적 거점인 셈”이라며 “동네책방을 단순 자영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문화의 고리’라고 여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가자 장윤영씨(38)는 “코로나 이후로 누군가와 관계맺는 게 조심스러워졌는데 그것을 깨는 게 작은 책방이었다”며 “정부가 도서관·보육예산 삭감에 이어 지역 예산까지 삭감하니 ‘책을 읽지 말라’고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황보미씨(46)는 “소규모로 진행돼 작가나 강연자와 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게 일반 도서관 강연과 다른 장점”이라고 했다. 이들은 내년도 예산삭감을 두고 “‘버틴다’는 표현은 너무 비장하지만 우리가 다 같이 대응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지난 9월부터 예산 삭감에 반대하며 ‘#출판이 곧 문화다’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선 해당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게시글이 200개를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정부가 독서문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K-문학의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심야책방 사업으로 올해 상·하반기에 50개씩 서점에 예산을 지원했는데 150곳의 서점에서 지원 신청을 했다. 오히려 지원 서점 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예산이 삭감돼 안타깝다”며 “(예산은) 당장 수익을 낸다기보다는 서점이 문화공간임을 알리는 의미가 있었는데, 그런 게 어렵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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