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 영화‘중독’서 대진역 이병헌

데뷔한 지 12년째. ‘중독’은 8번째 영화다. 그럼에도 이병헌(32)은 “첫 시사회 때면 오르가슴을 느끼고 싶은데 바람과는 달리 시사회가 좋으면서 싫다”고 말했다. “애증이랄까, 몸과 마음을 다 던진 또 하나의 결과물을 선보인다는 게 행복하면서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잘 나왔어야 하는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평생을 할 일인데, 하나 하나에 그렇게 긴장하는지. 하다 보면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조차 싫은 거예요. 욕심이 많다는 증거지요”

실제로 이병헌은 욕심이 많다.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중독’까지 20개월.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등을 하면서 그는 시나리오를 고르고 골랐다. 공전의 히트를 친, 뜨거운 관심속에 제작중인, 개봉을 앞둔 영화 가운데 그가 고사한 작품은 여러편. ‘중독’은 섭외받은 영화 가운데 엄선한 작품이다.

“지독한, 아니 섬뜩하고 새로운 멜로예요. 형수를 사랑하는 남자, 분명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죠. 있을 수는 있겠지만 특이한, 집요한 남자예요. 그런 그의 사랑은 지독하다기보다 섬뜩해요. 반전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중독’은 이렇듯 인물(대진)보다 드라마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출연을 앞두고부터는 인물이 문제였다. 고심끝에 형(호진) 흉내를 똑같이 내지 않기로 했다. ‘컴퓨터로 현장편집을 하는 만큼 흉내를 똑같이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중 인물(대진)이 배우가 아닌 만큼 조금은 다른 게 더 리얼리티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단 형의 손놀림 등 버릇은 똑같게 했다.

이병헌은 또 퇴원 후의 수척한 모습에 어울리도록 체중을 6㎏ 정도 뺐다. 위험천만한 카레이싱 장면을 직접 하기 위해 한국모터챔피언십 우승자인 박준우 선수의 지도 아래 B-license 자격증도 땄다. 가구조각 연기를 앞두고 생활가구예술가 이종명씨에게 직접 사사받았다. 프롤로그의 짧은 장면을 위해 농구연습도 했다.

“어렵고 특이한 인물역을 많이 맡는다는데 의도한 게 아녜요. 하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제 성향이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죠. 그런데 사실 어려운 건 평범한 인물이에요. 특징이 없다보니 연기를 해도 한 것 같지 않잖아요. 어렵지 않은 연기가 없어요. 완벽하게 소화해 내야 관객들이 스크린 속으로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영화가 무너져버리니까요”

이병헌은 이어 “숱한 시나리오를 읽다보면 기획·극본 단계에 참여하고 싶고 지분투자를 의뢰받기도 하지만 그건 또다른 잘못의 시작일 것”이라며 “배우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해외진출에 대해서는 “욕심은 나지만 ‘공동경비구역JSA’처럼 한국영화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게 보다 의미있는 해외진출로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나이가 찼는데 장가를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박)신양이 형이 부러웠다, 하고 싶다”면서도 “좋은 시나리오 본 것 없느냐”고 연신 되물었다. 장가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1개월 보름 전) 경기 광주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갔고, 홈시어터를 꾸며 DVD로 영화보는 데 푹 빠져 있다”는 말에서도 그는 그저 영화만 생각하는 남자, 배우였다. 도박사의 승부를 그리는 새 드라마 ‘올인’(All in) 녹화로 다시 바빠질 거라는 그는 새영화는 내년 4월 이후에나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중독?…아름답지만 부도덕한 미친 사랑의 보고서

‘중독’은 한 여자에게 중독된 남자(대진)와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여자(은수)의 이야기를 그린 멜로영화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형수다. 카레이싱에서 사고를 당한 남자는 자신을 응원하러 오다 교통사고를 당한 형(호진)으로 깨어난다. 자신이 호진이라는 대진. 이를 부정하던 여자는 결국 대진을 호진으로 받아들인다.

한 영혼이 다른 육체로 옮겨간 현상 등을 말하는 빙의(憑依)만을 놓고 보면 일본영화 ‘비밀’과 닮았다. 그러나 ‘비밀’과는 다른 영화다. ‘비밀’의 비밀과는 또다른 비밀을 숨겨놓은, 미친 사랑의 보고서이다.

지독하고 섬뜩한, 그런 만큼 처연하고 처절하기도 한 이들의 사랑을 영화는 곳곳에 심어놓은 암시와 상징물을 교두보로 삼아 느린 호흡으로 전개된다. 극 초반 은수의 주문과 달리 대진이 하품을 하고 호진이 딸국질을 하는 것은 은수를 향한 대진의 마음을 보여주는 단초이다. 호진이 아내와 동생에게 차조심을 당부하는 것은 단초의 열림을 암시한다. 연애편지, 목걸이, 화단에 물주기, 음식 만들기 등은 영화 전·후반에 이어지면서 중독된, 중독되는 사랑의 갈피를 이룬다. 특히 목거리는 반전의 고리가 된다.

이병헌과 이미연의 실제 그 인물의 그것인 듯한 웃음과 떨림과 눈물은 둘의 위험한 사랑을 이해하게 하고, 중독되게도 한다. 이같은 사랑을 하거나 받고 싶다는 여운을 남긴다. 이얼, 박선영 등이 함께 했다. 아름답지만, 어쨌거나 부도덕한 베드신 등을 놓고 볼 때 ‘15세 관람가’ 등급을 내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잣대는 또 한차례 논란을 불러일으킬 듯하다. 동국대 연영과를 졸업한 박영훈 감독(38)의 늦깎이 데뷔작이다. 코미디에, 숨가쁘게 몰아치는 영화에 중독된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중독’은 오는 25일 우리영화의 다양화를 가늠하게 하는 시험대에 오른다.

/배장수기자/



Today`s HOT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