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광장] ‘말레이시아 징크스’떨치기

가령 이런 구분은 어떨까. 축구인이나 축구팬들 중에 말레이시아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은 구세대이고, 그까짓 아시아에서도 2류팀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이는 신세대라면?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축구는 이른바 말레이시아 징크스에 시달렸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티켓이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 발목을 잡힌 것만도 세차례나 된다.

71년 서울에서 열린 뮌헨 월드컵 예선전에서 0-1로 패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라이벌 일본만을 적수로 생각했던 한국은 풀리그 첫 경기에서 말레이시아가 일본을 3-0으로 대파하는 것을 보면서도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티켓 획득이 쉬워졌다면서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틀 뒤 수중전으로 벌어진 말레이시아전에서 한국 또한 0-1로 패하고 만다. 한국은 30개가 넘는 슈팅을 날릴 만큼 일방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단 한번의 찬스를 살린 말레이시아에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올림픽팀 김호곤 감독이 당시의 멤버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전은 적지인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졌다. 5개팀이 풀리그로 예선을 치른 뒤 1, 2위가 결승에서 티켓을 다투는 방식이었는데 역시 수중전으로 벌어진 말레이시아전에서 한국은 0-3으로 완패하고 만다. 2위로 진출한 결승에서도 다시 1-2로 패배하고 말았으니 말레이시아 징크스는 뿌리깊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올림픽팀을 지원하고 있는 조영증씨가 그때의 주전 수비수였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1차 예선전에서 한국은 말레이시아, 네팔과 한조에 편성되었다. 약체 네팔과의 어웨이 경기에서 2-0으로 겨우 이긴 한국은 1주일 뒤 벌어진 말레이시아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0-1로 지고 말았다. 한국의 예선 통과는 비관적이었다. 서울에서 벌어질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가 비기기 작전으로 나온다면? 하지만 이변은 다시 일어났다. 네팔이 홈경기에서 말레이시아와 0-0으로 비겨버린 것이다. 한국은 홈경기에서 네팔을 4-0으로 이긴 데 이어 정면승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말레이시아를 2-0으로 완파하고 1차예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2차예선에서는 승승장구, 결국 32년만의 월드컵 본선진출을 이뤄냈지만 말레이시아와의 악연에는 진저리를 쳐야만 했다. 현재 올림픽팀 박경훈 코치가 산 증인이다.

그 이후 말레이시아는 우리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신세대 선수들이나 팬들로서는 말레이시아를 경계하는 정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레이시아는 중국과 1-1로 비기면서 다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얼마전 이 지면에서도 말레이시아에 발목을 잡히는 팀은 티켓을 거의 포기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 팀도 주의해야만 한다. 2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지만 자칫 한번 실패하면 분위기 자체가 반전되고 만다. 말레이시아 징크스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코칭스태프의 신중함과, 그 징크스를 모르는 신세대 선수들의 자신감이 오늘밤 절묘하게 어우러지기를 기대한다.

〈고원정/소설가〉



Today`s HOT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격 맞은 라파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해리슨 튤립 축제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