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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증명, 통제와 감시의 역사

[책마을]신분 증명, 통제와 감시의 역사

▲ 너는 누구냐? 신분 증명의 역사

발렌틴 그뢰브너|청년사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당신의 지갑 속에 조용히 꽂혀 있는 이 ‘신분증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또 그 의미는 시대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어왔을까. 이 책은 신분증명이 탄생한 역사적·사회적 배경과 변천을 다룬다. 특히 저자는 중세시대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때문에 이 책은 신분증명에 초점을 맞춘 중세의 미시사(微視史)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결국 ‘현재’에 있는 듯하다. 저자는 중세에 이미 자리잡았던 통제와 감시의 수단이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다양한 실례를 들어 논증한다. 결국 오늘날의 신분증명이야말로 ‘살아있는 중세’임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가장 중요하고 원초적인 신분증명은 ‘몸’ 그 자체였다. 긴 여정을 마친 오디세우스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던 것은 다리의 흉터였다. 중세 노예들은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 신분의 제약을 받았다. 저자는 피부색, 흉터, 점, 문신 등 신체적 특징이 신분증명의 표식이 되었던 중세의 사례들을 살핀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유효함을 강조한다. 지문, 얼굴 골격 등 개인의 신체 특징들이 디지털 신호로 기록되고 있는 ‘현재’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이 ‘신체측정법’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신분증명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책에 따르면, 원래 ‘신분증’은 귀족 등의 상류층에게 권위와 특혜를 부여하는 증명이었다. 그러다가 중요 임무를 띤 사절이나 귀중품을 수송하던 상인들의 추천서 혹은 통행증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특별한 신분과 자격을 표시하던 신분증이 다른 의미로 보다 확대된 시기는 15~16세기. 특히 15세기 후반에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는 신분증의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이른바 ‘위생증’. 이것을 갖고 있어야 페스트를 옮길 위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관청의 도장이 찍힌 신분증이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결국 ‘관리 대상’이 되었다. 신분증이 특혜에서 의무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서 ‘감시’의 역사가 시작됐다. 결국 신분증은 모든 이들을 통제하는 도구, 절대 통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저자는 중세에 완성되었던 이 음모가 오늘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강조한다. 김희상 옮김. 1만8천원

<문학수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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