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공통음식 나누기’ 운동

-같이 먹으며 종파갈등 치유-

[세계의 창]레바논 ‘공통음식 나누기’ 운동

“전쟁 대신 음식을 만들자(Make Food Not War).”

매주 토요일 시장이 들어서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중산층 거주 지역 사이피 마을의 한 주차장은 주민들로 북적인다.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신선한 야채와 치즈, 꿀, 피클, 여러 레바논 전통 음식에 이르기까지 흥겨운 먹거리 난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수크 엘 타예브’라고 불리는 이 시장을 처음 시작한 이는 카물 무자와크(사진 맨 왼쪽). 작가이자 요리사로 레바논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무자와크가 2004년 5월 시장을 연 것은 공통의 음식 문화를 통해 분열된 레바논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과의 인터뷰에서 무자와크는 “레바논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여러 종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음식만큼은 예외”이라면서 “북부에 사는 모슬렘과 기독교인이 같은 음식을 먹고 남부의 모슬렘과 기독교인도 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말했다. 음식에서만큼은 종파 차이를 넘어서 음식을 앞에 두고 둘러앉아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는 것이다.

일례로 버터와 견과류로 만든 마물(mamoul)이라는 과자를 기독교는 부활절, 이슬람은 대축제(아이드 케비르) 기간에 의례 음식으로 먹고 있다. 팔라펠(falafel)이라는 중동식 야채 샌드위치는 이집트에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이지만, 이스라엘이 국가 대표 먹거리로 꼽는다.

1990년대 중반 레바논 여행책자를 쓰기 위해 전역을 돌아다니다 레바논 여러 종파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 무자와크는 각 지역의 특색요리를 소개할 목적으로 요리 강좌를 자신의 집에서 개설했다. 2006년 여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 전쟁으로 요리 강좌는 중단됐지만 수크 시장만은 쉬지 않고 사람들을 맞았다. 시장이 당장 레바논의 유혈분쟁을 멈출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일상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 자체가 저항의 한 방법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농부 알리 파스(맨 오른쪽)는 지난해 전쟁으로 고향인 남부 레바논의 집과 토지, 공장을 모두 잃었지만 매주 꼬박 수크 시장에 나오고 있다. 시아파 모슬렘인 그는 “이 친구는 드루즈파 모슬렘이고 저 이는 기독교인이지만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지 다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음식을 매개로 종파간 화해, 나아가 하나된 레바논 공동체를 꿈꾸는 시장의 정신은 레바논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무자와크와 함께 ‘전쟁 대신 음식을 만들자’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영화제작자 아아라 리는 “(모슬렘의 종파인) 수니파와 드루즈파가 함께 식사하면서 수백 쪽의 정치 분석이 해낼 수 없는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며 음식 문화가 가진 힘을 강조했다.

레바논 유기농 식품 운동의 창시자이자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 교수인 라미 주라이크는 “수크 시장은 일종의 정전 선언과도 같다”며 “종파, 종족간 분열과 갈등이 극심한 레바논에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치활동이 아니라 일상 행위를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김유진기자〉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