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 두번째 리그 성적은?…전직 야구선수들의 그 후

이용균기자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어니 뱅크스는 단 한 문장으로 야구의 매력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공놀이 하기에 좋은 날씨로군, 한 게임 더 어때!”(It‘s a beautiful day for a ballgame, Let’s play two!)

그들의 삶 두번째 리그 성적은?…전직 야구선수들의 그 후

물론 뱅크스가 말한 두번째 게임은 야구다. 그들이 청춘을 바친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를 끝내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한 이도 있지만 그저 그런 플레이를 했던 이들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새로운 타석에 들어선 것만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떤 공을 칠 것인가 하는 점. 안타 또는 홈런을 때린 이도 있지만 병살타에 그친 이도 있다. 최근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을 택한 선수는 병살타보다 더 나쁜 성적을 낸 셈이다. 야구를 떠난 그들, 두번째 게임에서 어떤 포지션을 선택했을까.

방송인으로 성공한 강병규

강병규(36)는 방송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두산 투수 시절 이승엽에게 홈런 6개를 내주며 이승엽의 신기록에 도우미 역할을 했지만 방송인으로 새로 시작한 인생에서는 스스로 홈런을 터뜨렸다.

그는 방송진출 후 프로그램 MC로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KBS 2TV의 건강프로그램 ‘비타민’의 메인 MC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가 하면 최근까지 SBS ‘도전 1000곡’의 MC 자리도 지켰다. 어느새 야구인 강병규보다는 방송인 강병규가 더 익숙한 수식어가 된 느낌이다. 야구팬들도 이제는 방송인으로 더 많이 기억한다.

하지만 방송인 강병규는 이제 사업가 강병규가 더 어울린다. 직접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해 대표로 뛰고 있다. 이 회사를 통해 친정팀 두산과 함께 일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스포츠용품회사 ‘화승’의 홍보이사, 건설회사인 한백CNT의 전무이사를 겸하고 있다. 그는 “야구를 할 때보다 훨씬 바쁘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강병규는 “새 분야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한 살로 다시 돌아가 시작하는 것과 같다”며 “그 두려움과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강병규가 야구를 떠난 것은 2000년 겨울이었다. 1999년 프로야구선수협회 대변인을 맡았던 강병규는 두산을 떠나 SK 유니폼을 입었고 그 해가 20년을 뛴 야구선수 마지막 해가 됐다. 강병규는 방출통보를 받았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강병규는 “그나마 나같은 경우는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쉽게 풀린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운동 그만두기 전에 만났던 분들 중 잘 되는 분들 많이 보고, 또 그 분들이 이끌어 준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자신감이 큰 힘이 됐다. 강병규는 “야구장에서 3만명으로부터 욕 먹으면 두려운 게 없게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도대체 얼마나 성공한 걸까. 연 수입을 슬쩍 물으니 강병규는 “프로야구 최고 연봉 선수보다 더 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야구선수로서도 분명 성공한 축에 끼지만 두번째 경기에서 진짜 에이스로 우뚝 섰다.

야구 대신 음식으로 손님의 마음을 뺏다

많은 선수들이 은퇴를 대비해 식당을 준비한다. 식당의 경우 자신의 얼굴이 곧 식당을 홍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물론 성공을 위해서는 음식 맛도 필수다. 한화 송진우는 대전에 ‘개마고원’이라는 고기집을 열었고 삼성 진갑용은 대구에 ‘간바지 김치찌개 불고기’라는 김치찌개 전문점을 운영한다.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도 서울 방이동에 ‘홈런 갈비’라는 고기집을 운영 중이다.

최근 음식점으로 성공한 이는 해태 포수 출신의 최해식이다. 최해식은 은퇴 뒤 직접 철가방을 들고 배달을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광주에 ‘최고루’라는 중국식당을 열었다. 중국집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어느새 광주 지역 최고의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4년 만에 체인점을 무려 15개로 늘렸고 이중 2개는 야구를 하던 후배들이 최해식의 뒤를 이어 연 가게다.

왕년의 홈런왕 출신 김상호(전 OB)는 음식점이 아니라 음식사업으로 성공했다. 1995년 홈런왕에 이어 MVP까지 거머쥐었던 김상호는 은퇴 뒤 돼지고기 가공업체 임원으로 일했다. 충북 증평에 본사를 둔 육돈가공업체 이사였다. 최근에는 사업 확장을 위해 중국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와 빙그레를 거친 조양근도 온양에서 커다란 갈비집을 운영해 성공했다.

그들의 삶 두번째 리그 성적은?…전직 야구선수들의 그 후

야구는 골프와 비슷하다

은퇴한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야구와 운동 메커니즘이 비슷한 골프 관련 업체에 진출했다. 골프장을 운영하거나 직접 골프를 가르치는 레슨 프로로 활약한다.

프로야구 초창기 홈런타자였던 김우열(전 OB)은 일산에서 골프 연습장을 운영한다. 야구와 골프가 비슷한 스윙을 갖다 보니 몇몇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게 됐고 이게 계기가 됐다. 지금은 골프 연습장뿐 아니라 양평 리틀야구단을 창단해 어린 선수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

해태의 명투수였던 이상윤은 중국에서 골프장을 운영한다. KIA 코치와 삼성 2군 코치를 거쳐 2005년 은퇴한 이상윤은 코치 시절에도 날카로운 골프 실력을 자랑했다. 중국 옌타이에 있는 애플시티 골프장 부사장으로 취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프로야구 첫번째 노히트노런의 주인공 방수원(전 해태)도 전남에서 골프 연습장을 운영한다. 레슨 프로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두산 투수였던 김유봉은 미국골프협회(USGA)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프로 자격증을 취득한 뒤 호주에서 레슨 프로의 길을 걷고 있다. LG 출신의 인현배도 골프 레슨 프로로 일하고 있다.

독특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

‘야생마’처럼 어느날 홀연히 그라운드를 떠난 이상훈(전 SK)은 잘 알려진 대로 록그룹 What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홍대앞 카페에서 음악을 하며 살고 있는 중. 프로야구 원년 멤버였던 OB 박종호는 대전시청 교향악단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마찬가지로 원년 OB 멤버였던 강철원도 화방을 운영하며 미술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프로야구 데뷔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때려 유명했던 송원국(전 두산)은 현재 외제차 딜러로 일하고 있다.

물론 어두운 곳에 머무는 이들도 있다. 한 야구관계자는 전 두산 소속의 I선수에 대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타짜가 됐다. 지리산에서 정말 고수를 만나 배워 진짜 고수가 됐다더라”고 소문을 전했다. 한 H선수는 미국으로 넘어가 나이트클럽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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