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에 당당히 맞선 생생한 기록
카세트테이프 형태의 ‘아, 대한민국…’ 출반은, 한국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이미 상당한 명망성을 지니고 있던 대중가요 가수가 스스로 제작자가 돼 자신의 정규음반을 비합법음반으로 내놓은 사건이다. 그는 이 행위만으로도 음반법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 험악했던 유신정권 말기에 김민기는 ‘공장의 불빛’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나마 도시산업선교회라는 종교단체가 법적 책임을 져주기로 한 것이었다. 한때 잘 나가던 인기가수였고 1980년대 중반 성공적으로 작가주의적 언더그라운드로 자리잡은 정태춘이라는 가수가, 법적 책임을 져줄 외피조차 없이 불법행동을 감행해버린 이 사건은,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솟아오르고 있던 민주화와 평등을 향한 전사회적 움직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코러스 편곡을 후에 꽃다지 대표를 맡게 되는 예울림 멤버 이은진이 맡고, 풍물도 노동연극으로 유명한 극단 ‘현장’에서 맡은 것으로 보아 진보적 예술운동 단체들과의 끈끈한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음반은, 검열성 사전심의 테두리 안과 밖에서 한 예술인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70년대에 지었지만 검열 때문에 발표할 수 없었던 ‘인사동’과 80년대 합법음반에서 발표된 바 있는 ‘한여름 밤’을 이 음반에서 확인하면서, 그가 이 음반에서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관심이 단지 시류에 휘말려 보여주는 제스처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단지 검열 때문에 이런 그의 모습을 대중에게 확연히 드러낼 수 없었을 뿐이다.
그의 이 음반은, 늘 함께 하던 아내 박은옥의 여린 목소리를 끼워줄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하다. 거꾸로 매달려 죽은 듯 눈알이 튀어나온 채 변사체로 발견된 대학생의 죽음을 놓고 외치듯 부르는 ‘일어나라 열사여’, ‘성질나서 뒈져버릴’ 이 불평등한 세상에 주먹질 해대듯 노래하는 ‘우리들 세상’, 화재로 죽은 도시 빈민 아이들의 이야기를 눈물나게 담아낸 ‘우리들의 죽음’, 듣는 사람마다 숙연해져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할 정도로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일갈하는 ‘아, 대한민국…’ 등은, 노래로서는 지나치게 산문적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고스란히 기록한 생생한 사진들처럼 느껴진다. 국악의 대중음악적 수용에 대한 진전 역시 두드러진다. ‘황토강에서’ 보이는 국악의 사용은, 한국 포크 음악인으로서 드물게 지니고 있는 토착적이고 향토적 감수성을 충분히 발현시키면서, 이전 작품에서 주로 드러났던 청승스러움과 또 다른 측면을 포착해냈다.
정태춘은 이 음반을 필두로 계속 비합법음반을 제작해 검열성 사전심의가 명기된 음반법에 의도적으로 싸움을 걸었고, 96년 드디어 이겼다. 이로써 식민지시대부터 지속된 검열성 사전심의가 사라지는 문화사적 사건의 주역이 됐고, 97년 이 음반은 합법음반으로 재발매됐다. 이 음반의 파란만장한 삶이야말로, 한국 음반사·대중가요사의 중요한 역사의 한 장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