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발가벗고 목욕탕서 나누는 대화, 그게 소통이야”

유인경 선임기자

단일 방송국 최장수 프로그램 KBS ‘전국노래자랑’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1980년 첫 선을 보인 전국노래자랑은 지금도 평균 시청률 15%로 일요일 지상파 오락프로 중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돌 스타들이 등장하는 허다한 프로그램들이 5% 안팎의 시청률을 보이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전국노래자랑의 장수를 이끈 요소는 여럿이다. 국민이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출연자들의 질박한 모습…. 하지만 21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송해씨의 기여를 뺀다면 이런 평가는 허구다. 모내기하다 갓 나온 것 같은 그을린 얼굴, 볼록 나온 배에 자그마한 체구 등 텔레비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지만, 그가 무대에 서면 박수 갈채와 함께 뽀뽀 세례가 쏟아진다. 꽃미남의 인기는 저리가라다.

송해씨는 인터뷰를 마친 뒤 사무실 근처 운현궁에서 처음 본 유치원생과 해맑은 웃음을 나누며 금세 친해졌다.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전부라는 그는 유치원생에게도 ‘형’이고, 아흔 살 할머니에게도 ‘오빠’다. |김세구 선임기자

송해씨는 인터뷰를 마친 뒤 사무실 근처 운현궁에서 처음 본 유치원생과 해맑은 웃음을 나누며 금세 친해졌다.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전부라는 그는 유치원생에게도 ‘형’이고, 아흔 살 할머니에게도 ‘오빠’다. |김세구 선임기자

‘최장수 프로의 최고령 MC’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것이다. 어르신으로의 권위나 노인 특유의 고집스러움은커녕 능청스러운 애교도 마다않는 그다. 그는 “현장에 나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진정한 소통의 달인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이 순간, 소통의 달인은 어떤 조언을 할까. 뜻밖에도 송씨는 이 대통령과 구면이었다. 원로 연예인을 위해 송씨가 운영하는 사랑방이 종로에 있어 의원 시절부터 이 대통령을 안다고 했다. 그 사무실에서 송씨를 만났다. 82세의 현역 송씨는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소통의 비결을 털어놓았다.

대화와 현장 파악이 소통의 비결

-21년째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로 어떤 연령층과도 허물없이 어울리는 송해님의 진행을 꼽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분위기를 잘 만드십니까.

“현장 파악이 중요해요. 그 지역의 특성과 지역민들의 관심사를 알아야 하고, 무대 상황이나 출연자 특징도 알아야 관객들과 호흡을 할 수 있고 생동감 나는 방송이 되거든요. 소통이란 게 나 혼자 통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나누는 거잖아요. 언제나 방송 하루 전이나 아침 일찍 그 지역에 가서 우선 목욕탕부터 들르고 시장에 있는 해장국집이나 식당에서 밥을 먹어봐요. 동네 목욕탕에 앉아 피로도 풀고 발가벗고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해요. 요즘 뭐가 제일 걱정이냐, 이 마을 자랑거리는 뭐냐 등등 이야기를 나누면 정보도 얻고 금방 친해지죠. 방송이건 정치인이건 책임자는 현장에 가서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또 세 살 어린아이부터 103세 어르신까지 1세기가 공존하는, 한 세기가 한 무대에서 노는 프로가 바로 ‘전국노래자랑’이에요. 주한외국인들까지 이 무대에 섰고 일본, 미국 등의 교포는 물론 금강산 모란봉 광장에서도 방송을 했죠. 103세 되는 할머니가 81세된 딸과 손잡고 나오고, 그 어렵다는 제수씨가 시아주버님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게 이 프로요. 100세 노인이 3년 만에 다시 출연했는데 얼굴이 좋아보이시기에 ‘장가 한 번 더 드셔도 되겠다’고 했더니 ‘그거 참 좋은 얘기’라고 답해서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죠. 어디 사람뿐인가? 크게는 타조에서 새끼 호랑이, 노루, 참새, 뻐꾸기, 염소, 수달, 달팽이까지 올라옵니다. 이런 짐승들도 전국노래자랑의 재미를 아는지 간드러지게 울부짖고 뛰놀아요. 짐승이든 사람이든 이 프로에는 누구나 출연 자격이 있는데 신기하게 무대에서 나와 놀면 짐승도 즐거워하거든.”

-출연자들이 친근하다 못해 너무 허물없이 대해 곤란할 때도 많죠?

“언젠가 공주에 사는 89세 할머니가 반갑다며 내게 착 들러붙으시는데 도저히 내 근력으론 뗄 수가 없어 애먹었어요. 얼마나 적적했으면 나를 보고 ‘이때로구나’ 하고 껴안고 외로움을 풀어보시려고 했을까 싶어 그냥 참았지요. 또 건장한 의경들이 나와서 비보이 흉내를 내며 나보고 무동을 타라고 하기에 올라 탔는데 내 체중을 못 이겨 굴러 떨어졌어요. 어깨가 탈골이 되고 목이 삐끗했는데 현장에서 아프다고 방송을 중단할 수 없어 중간에 파스 사다 붙여가며 무사히 마치긴 했는데 석달을 고생했죠.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해서 날 놓친 거니까 이해해야죠. 갑자기 스타킹을 머리에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나오자마자 뽀뽀를 해서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고. 프로그램 특성상 출연자들이 지역 특산물을 갖고 나오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크지만 사실 먹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특히 여름철에 녹화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생선을 날것으로, 그것도 꾸역꾸역 한 마리를 통째로 입에 쑤셔박듯 넣기도 해요. 비브리오균 식중독 걱정을 하면서도 도리없이 먹어줍니다. 고춧가루 범벅이 된 김치를 입에 넣어준다는 것이 얼굴에 치대도 ‘앗 따거!’라고 애교부리며 넘겨요. 내가 망가지고 까불어줘야 관객들이 좋아하거든요. 관객들이 우리 프로의 주인이자 보배인데 방송 나오려고 열심히 준비해왔으니 무대에서 맘껏 펼치게 해줘야죠. 상대방이 마음먹은 것을 풀어주는 것이 소통이에요.”

-젊은층을 만날 때 세대차이는 어떻게 극복합니까.

“아직 100세는 안 되었어도 82년을 살아봤으니 만나는 이들 연령대의 눈높이로 대하는 거지. 초등학생이 나한테 ‘형’이라고 할 때는 황당하기도 하지만 버릇이 없어 그런 게 아니라 소통의 한 방법으로 그렇게 툭 건드려보는 거니까 웃으며 받아들입니다. 요즘은 여중생들도 ‘오빠’라고 부르며 사인해달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시켜보면 그렇게 똑똑하고 야무질 수가 없어요. 대화를 해봐야 서로 이해가 가능해요. 부모, 가족과 대화의 즐거움이 없으니 텔레비전에서 친근해진 나를 ‘형’ ‘오빠’라 부르며 친해지자는데 버릇없다고 야단칠 수 있나. 혹시 자녀 문제로 속썩는 가정이 있다면 나를 좀 데려갔으면 해요. 그 애들과 한 두 시간만 허물없이 대화하면 자녀갈등이 해소된다니까요. 누구나 다 자기 말을 하고 싶어하고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해요.”

“사람이 재산…전국 어디가나 반겨주니 난 행복한 남자”

-21년간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펑크를 낸 적이 없는데 제일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방송 중 관객이 날 끌어안고 뒹굴어 갈비뼈에 금이 간 적도 있지만 힘든 줄은 몰랐어요. 고향인 북한에 갔을 때가 제일 당혹스러웠죠. 1994년 금강산 공연 때는 나를 배에서 못 내리게 해서 이틀 동안 배에 갇혀있을 때, 모란봉 공연 때는 노래 선곡 때문에 남북간 의견이 대립해 애를 먹었고요. 물론 나중엔 아주 정중하게 사과를 하더군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50여년이나 닫혔던 문이 이제 처음 열리는데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왜 없겠냐, 마찰이나 소음은 충분히 이해한다고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게 없고, 남과 북도 이렇게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하면 통일도 곧 될 것 같은데….”

환갑이 넘어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을 21년째 진행하고 있는 송해씨의 꿈은 “통일되면 고향인 북한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이다.  |김세구 선임기자

환갑이 넘어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을 21년째 진행하고 있는 송해씨의 꿈은 “통일되면 고향인 북한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이다. |김세구 선임기자

금기를 깨 감동을 준다

-참가자들의 장기자랑 외에 무대에서 송 선생님이 은근슬쩍 악단이나 심사위원들과 장난치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팀워크가 잘 맞는 게 인기 비결이자 자랑거리예요. 악단장은 이 프로가 시작할 때부터 맡아온 터줏대감인데 내가 참가자들과 이야기할 때 단원들과 뻘쭘하게 서 있는 게 화면에 잡히면 영 썰렁해서 참가자가 가져온 음식을 혼자 먹을 땐 악단장을 슬쩍 보며 ‘아유, 맛있다’고 놀리면서 웃음을 주죠. 청주사람인데 과묵한데도 아주 능청스럽다니까. 심사위원들과의 호흡도 중요해요. 노래 잘 부르면 딩동댕, 못부르면 땡! 치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니거든. 잘 불러 한창 흥이 나는데 빨리 딩동댕~을 울려줘 여운을 주기도 하고 음정박자가 엉망이어도 칠듯말듯 하다가 땡~쳐서 아슬아슬 지켜보게 하는 타이밍이 중요하죠. 우리 스태프들은 방송사 버스 타고 같이 움직이고 도시락도 함께 먹고 녹화 끝난 후에는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니 친해질 수밖에요. 박태호 프로듀서 등 연출자들은 지휘자처럼 잘 통솔을 하니 그런 정감들이 고스란히 무대에 묻어나나봐요.”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노래자랑을 하는 단순한 구성인데 그토록 많은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진행자로서 예심에서 떨어진 사람을 올려준다거나 하는 권한은 없습니까.

“이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방송의 금기를 깼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강화도에서 한 출연자가 자기 장인이 3대가 대장간에서 일을 해온 이 시대 마지막 대장장이인데 마을 사람들이 장인이 만든 삽과 호미를 다 쓰면서도 마을의 젊은 애들까지 70대인 장인을 하대한다기에 내가 그 자리에서 어르신 직업을 ‘농기구 공장장’으로 이름 지어드렸어요. 아마도 제가 100번은 더 농기구 공장장이라고 연호를 받아냈을 겁니다. 얼마 후에 그 사위가 동네사람들이 장인을 대하는 게 달라졌다고 고맙다는 전화를 했어요. 7, 8년 전 새해 천하장사 씨름대회 때 63세의 시각장애인이 참가를 원했어요. 새해 벽두라 제작진에서도 시각장애인은 께름칙하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깰 마음으로 일부러 출연시켰죠. 딸의 부축을 받고 올라온 장님 노인이 ‘나그네 설움’을 부르는데 그 노래가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옵디다. 장님 노인이 살아온 생애가 온통 이런 설움이었구나, 그 설움을 이 노래 속에 녹여놓았구나 하는 마음에 객석도 감동했습니다. 노래를 잘해서뿐만 아니라 잘못된 속설에 갇혀서, 그렇지 않아도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는 자괴감과 안쓰러움, 그런 반성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후부터 장애인들이 스스럼없이 출연하게 되었어요. 휠체어를 탄 사람, 팔이 없는 장애인이 출연해 몸 성한 사람들보다 더 신명나게 놉니다. 한번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나와서 자기는 노래를 부르고 시어머니는 춤을 췄는데 시어머니를 춤추게 한 못된 며느리라고 난리가 났어요. 이젠 고부가 손잡고 노래하고 춤추는 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바뀌었지요. 그렇게 고정관념을 깨는 것도 진행자의 몫이고 보람입니다.”

-21년간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지켜보신 대한민국의 가장 큰 변화는 뭔가요.

“국민들이 너무나 당당해졌고 목소리가 커졌어요. 무대에서 말 못하는 이들이 없고 시골에 갈수록 더 주장이 강해요. 서울이나 도시에 사는 이들은 공해에 찌들고 삶에 찌들어 목소리가 적은데 심심산골에 갈수록 목소리가 커요. 또 예전엔 참가자들의 70%가 뽀글뽀글 파마 머리였고 60%는 한복을 입고 등장했는데 이젠 그런 이들은 찾기 힘들죠. 또 무조건 흔들어야 하더군요. 이젠 노래보다 춤에 더 비중이 강해진 것도 변화라면 변화일 겁니다.”

-초당대학 국문학과 김창진 교수가 연예인들의 발음 평가를 해보니 유명 연예인들이 대부분 낙제점이고 임성훈씨가 C등급, 임백천씨가 B등급인데 송 선생님이 A등급으로 가장 바르게 한글을 발음하는 분으로 꼽혔습니다. 발음에도 평소 신경을 씁니까.

“그럼요. 탤런트건 앵커건 방송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언어의 질도 문제이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제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의무입니다. 예전에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 전영우 아나운서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정확한 한글은 물론 장단음, 된소리 등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그런 노력을 한 덕분에 이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는 겁니다.”

사람이 자산이다

-이젠 전에 활동하던 동료 연예인들은 다 은퇴하셨죠?

“그럼요. 악극단 시절부터 콤비로 활동했던 박시명씨가 작고한 후 너무 쓸쓸해요. 배삼룡, 이대성씨 등은 와병 중이라 전화 안부나 묻는 정도이고 구봉서 선배나 가끔 뵙죠. 내가 20년 전부터 종로 낙원동에 60세 이상 원로연예인들의 모임인 상록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갈수록 참여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경사보다는 조사가 많아 속상해요. 몇년 전만 해도 홀쭉이 양석천, 뚱뚱이 양훈 선생이 거의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마작도 하고 고스톱도 쳤는데…. 그래도 사무실을 열어 놓으니 연예인만이 아니라 진필호 프로듀서 등 연출자, 감독 등도 자주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대여섯시가 되면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대포나 한잔 하자며 삼겹살에 소주를 마십니다. 그게 살아가는 재미죠.”

-82세에도 현역으로 맹활약하시는데 건강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단순하게 사는 거죠. 10여년 전부터 지하철을 타고 다녀요. 도곡동 집에서 종로3가 사무실까지 지하철을 갈아타느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제법 운동이 돼요.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에 갈 때도 지하철을 타요. 매니저도 없고 코디네이터도 없이 나 혼자 스케줄 관리하고 옷도 협찬받지 않고 내가 사입어요. 휴대폰은 있는데 평소엔 꺼뒀다가 나중에 켜봐서 꼭 연락할 곳만 하니까 스트레스 받을 게 없지. 건강에 너무 신경을 안쓰는 것도 건강한 비결인 것 같아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공감해요. 아직은 별로 나이 들었다거나, 갑자기 노화현상을 느끼진 않아요. 주량이 좀 줄긴 했지만 아직도 소주 2병은 거뜬히 먹거든.”

-그렇게 전국은 물론 해외공연까지 다니면 가족들에겐 점수따기도 힘들 텐데요. 방송에 지장줄까봐 절대 지방이건 외국이건 가족동반을 안한다고 들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지. 휴가를 가도 어딜 가건 사람들이 알아보니 조용히 쉴 수도 없고…. 그래도 55년째 잘 견뎌준 집사람(석옥이씨)과 두 딸이 고맙죠. 결혼 초에는 연예활동에 희망이 안보여 자살시도도 할 만큼 살림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1987년에 스물두살이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내가 ‘가로수를 누비며’ 교통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저세상으로 가버렸어요. 그길로 ‘가로수를 누비며’를 중단했지요. 교통사고 줄이자고 그토록 호소했는데 아들이 교통사고의 희생자가 돼버리니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는 생각 등 만감이 교차해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더 이상 웃을 수도 없을 것 같았는데 아내와 두 딸이 먼저 슬픔을 딛고 일어서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모든 후배들이 부러워하는 최고 프로그램의 최고 MC인데 가장 큰 자산은 뭔가요.

“사람들이죠. 50여년의 방송생활에 광고에도 출연해 돈도 벌었지만 그건 다 헛된 거예요. 내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의 소중한 보물이고 재산이죠. 현대 울산중공업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마치고 회식을 하는데 누가 내 뒤에 와서 손으로 눈을 가립디다. 누가 장난치나 돌아봤더니 정주영 회장이에요. 그분이 직원들에게 ‘우리가 자동차, 배, 아파트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송해 선생이 현대 것은 안된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우리 회사를 찾아오는 이들을 소중히 모셔야 한다’고 해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집에도 초대받아 가봤는데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 드시는 대식가더군요. 또 그분이 ‘내가 아무리 차 팔고 배 팔아 돈이 많아도 진짜 부자는 사람들을 많이 사귄 송 선생’이라면서 사람이 자산이라고 강조했어요. 나도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내가 제일 부자라고 생각해요. 전국 어디를 가나 아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젊은 친구부터 100세 어르신들까지 다 좋아해주시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오.”

-촛불집회나 요즘 시국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촛불집회를 청소년들이 시작했는데, 요즘 애들은 참 똑똑하긴 한데 너무 자기 주장을 해요. 내가 아는 것이 다 진실이나 정의는 아니니까 다른 목소리도 들어봐야죠. 정부도 더 이상 혼란을 안주도록 정확한 입장을 밝혔으면 좋겠어요. 이명박 정부가 아예 걸음마도 못 뗀 상황에서 자꾸 흔들리니까 그 발이 어디로 뻗을지 몰라 불안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께 어떤 조언을 드리고 싶은가요?

“내가 종로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다보니 그분이 종로구 국회의원 시절부터 인연이 있어요. 대통령이 되었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갖고 있어도 국민의 심기를 잘 살피고 잘 섬기는 게 우선이죠. 국민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게 분출되었으니 국민들의 요구와 자기 생각이 다르다고 억울해 하거나 흔들리기만 하지 말고 빨리 무너져 새롭게 재출발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강부자 내각’이다 ‘고소영 정부’라고 질책하고, 쇠고기 협상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손해를 본다’면서 고수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의 틀을 새로 짜야죠. 국민들에게 강요하거나 감추려고 하지 말고 국민들의 응어리진 마음부터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21년간 대한민국 읍·면 단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나라는 정말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란 말이 어울리는 나라란 겁니다. 산과 물이 좋고 사람들은 착하니 정치만 잘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송해는 누구인가?

‘가로수를 누비며’ 17년 진행… 국내 최고령 MC

1927년 황해 재령 출신으로 본명은 송복희다. 북한 해주 예술학교에서 성악공부를 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단신 월남했다. 도중에 바닷물로 밥을 지어먹어 이름을 바다 해(海)로 바꿨다. 육군통신부대에서 군복무하던 시절에 전쟁 종식을 가장 먼저 타전한 것이 자랑거리다.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74년부터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란 교통 프로그램을 17년간 진행했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 등에서 구봉서·배삼룡·박시명 등과 더불어 한국 코미디의 부흥에도 앞장섰다.

환갑이 넘어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을 21년째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할 말을 다하고 준비해온 노래와 춤 등 끼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똑같이 망가져주는 그의 추임새와 편안한 진행 덕분이다. 현지 식당 종업원부터 주지 스님까지 만나 그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대화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소통의 비결이다. 여중생에서부터 아흔살 할머니에게까지 ‘오빠’로 불린다.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방송을 쉬지 않은 성실함과 바른 언어습관은 방송인의 모범이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최고령 진행자인 그의 자리를 노리는 후배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는 “통일 되면 고향인 북한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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