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정치 명문가’ 왜 없나

이용욱 기자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 상원의원이 검은 피부와 이슬람식인 ‘후세인’이라는 중간 이름을 딛고,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은 이변이었다. 물론 바탕은 탁월한 개인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그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누르고 결정적인 승기를 잡은 데에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케네디가(家)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케네디가의 명성은 높고, 영향력은 크다. 이런 힘은 단순히 대통령과 법무장관, 상원의원 등을 배출한 민주당의 대표적 가문이라는 데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변화’ ‘희망’ ‘다양성’ ‘소통’ ‘통합’ 등 이 가문의 이상과 정신이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는 어떤 정치 명문가가 있을까?

고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왼쪽), 정일형 전 장관 생전의 가족사진(가운데), 정대철 민주당 고문(오른쪽 위), 정호준 전 청와대 행정관(오른쪽 아래). |경향신문 자료사진·정호준씨 홈페이지

고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왼쪽), 정일형 전 장관 생전의 가족사진(가운데), 정대철 민주당 고문(오른쪽 위), 정호준 전 청와대 행정관(오른쪽 아래). |경향신문 자료사진·정호준씨 홈페이지

한국에도 겉으로 화려한 ‘정치가문’은 꽤 있다. 3대째 정치권의 풍랑에 뛰어든 집안도 있고, 대를 이어 국회의원을 지내는 가문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정치가문은 아직 없다. 영욕으로 점철된 고만고만한 가문들이 있을 뿐이다. 대를 이어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그다지 어필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2세, 3세 정치인들이 의정 활동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는 말도 없다. 한마디로 ‘정치가문’들은 대물림 정치를 했을 뿐이지, 명문가로 불릴 만큼 공적을 쌓지도 못했고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에서는 정녕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정치명문가가 탄생할 수 없는 것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가문

대표적인 정치가문은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작고)-정대철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정호준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 3대째 이어지는 집안을 꼽을 수 있겠다. 신민당 부총재와 대표권한 대행을 지낸 정 박사는 1950년 서울 중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7년까지 내리 8선을 했다. 아들인 정대철 상임고문은 아버지의 지역구를 이어받아 5선을 했다. 손자인 정 전 행정관은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이 지역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정 전 행정관은 18대 총선때 지역구인 중구를 정범구 전 의원에게 양보하고,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그러나 당선권(24번)에서 밀리면서 출마를 포기했다.

유석 조병옥 박사(작고)의 차남인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작고), 3남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 등도 유서깊은 정치 가문이다. 조 박사는 자유당 시절인 1956년 야당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내는 등 신익희·박순천·정일형·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이어져온 민주당의 전통을 세운 인물. 아들인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작고)도 민한당 총재를 지냈다. 3남인 조순형 의원은 1981년 정치규제에 묶인 형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을 대신해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4대 때는 두 형제가 나란히 국회에 등원했다.

대통령을 지낸 후광으로 정치를 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4선 의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정치인 중 한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안도 정치를 가업으로 하고 있다.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은 재선했고, 차남 김홍업 전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마했으나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는 끊임없이 정치인으로의 입신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선 2세 정치인들의 명암이 갈렸다. 대선 직후인 탓인지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들이 많이 웃었다. 남평우 전 의원(작고)의 아들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수원 팔달)은 지난 총선에서 4선에 성공했다. 비례대표로 3선 고지에 오른 정진석 의원은 내무부 장관과 6선을 지낸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이다. 재선인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은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이며, 재선인 같은당 이종구 의원은 이중재 전 의원의 아들이다. 유일호 의원(서울 송파을)은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작고)의 장남이며,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은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이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서울 서초갑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혜훈 의원은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태호 전 의원의 며느리다. 무소속 김세연 의원(부산 금정)은 한나라당 김진재 전 의원(작고)의 아들이자 한승수 국무총리의 사위다.

반면 야당인 통합민주당 소속 2세 정치인들은 고전했다. 김성곤 의원이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김상영씨의 지역구인 여수에서 재선에 성공했을 뿐 나머지 2세들은 고배를 마셨다. 김상현 민주당 고문의 아들 김영호 후보는 지역구를 서울 서대문갑에서 서울 서대문을로 옮겨 총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노웅래 의원은 서울 마포갑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고 김철 사회당 당수(작고)의 아들인 김한길 전 의원은 아예 총선을 앞두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치가문, 왜 나오나

왼쪽부터 고 조병옥 박사, 고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왼쪽부터 고 조병옥 박사, 고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단 일종의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정치의 성격을 감안해야 한다. 선거를 한번 치르려면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친척들까지 힘을 모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가족이나 자식, 친지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에 친숙해지고, 원하든 원치 않든 의정 활동의 노하우를 가까이서 배울 수밖에 없다. 실제 2세 정치인들은 각종 인터뷰 때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정치에 친숙해졌다” “현안 등에 대해 부친과 토론하면서 정치인으로 나아갈 길과 철학을 배웠다”고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다. 2세 정치인인 정우택 충북지사도 “어릴 때부터 부친(정운갑 전 의원·작고)과 지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늘 본 게 정치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칼 융 같은 심리학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가풍도 유전이 된다고 했다”면서 “그런 가풍도 유전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정치력이나 정치적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도 정치가문 출신들은 정치권 입성에 용이하다. 현재의 정치환경이 지역구를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것을 보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2세 정치인은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지역에서 정치력을 발휘했던 아버지 등 가족의 후광이 적지 않다. 아버지 등이 일궈놓은 지역조직이나 정치자금 등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 ‘정’과 ‘의리’를 우선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도 ‘2세 정치인’들에겐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대를 이어서 정치하기’ 편리한 구조인 것이다.

그러나, 명가(名家)는 없다?

정치가문은 있지만, 명문가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의 2세 정치인들에게는 “역시 누구의 아들, 자손답다”는 칭찬보다는 ‘세습 정치’라는 쓴 소리가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정치인 가문의 자손인 정대철 민주당 고문과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은 한때 정치 엘리트의 길을 걸었지만, 마무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대철 고문은 경기고·서울대 법대의 학력, 정일형 박사와 우리나라 최초 여성변호사인 이태영 여사(작고)의 아들이라는 집안을 배경삼아 잘 나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하고,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을 지냈다. 그러나 굿모닝시티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수감되면서 상처가 났고, 구정치인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밑에서 치열하게 올라온 게 아니라 온실 속 귀공자로 자랐다. 너무 쉽게 정치에 입문하다보니 자기를 정립하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했다. 정 고문은 다음달 6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는 등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조순형 의원은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2번으로 현역 최다선인 7선 고지에 올랐으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중도하차-한나라당 입당 타진-자유선진당 합류’라는 지그재그 행보를 보이면서 ‘철새’ 오명을 썼다. 한때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이미지는 무색해졌다. 김 교수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현 자유선진당 총재)와 대립구도를 만든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조 의원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한 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려면 지난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무소속으로 나왔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자제들도 정치 행적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18대 총선에 못나온 것은 벌금형 이하에 대해서만 공천신청을 받기로 한 한나라당 당규를 충족시키지 못해서다. 김씨는 1998년 한보 비리 관련 조세포탈 혐의, 2004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두 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아 ‘공천신청 자격 금지’에 해당됐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및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던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이 공천을 받지 못하자 “한나라당 공천은 아주 실패한 공천, 잘못한 공천”이라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은 18대 총선을 앞두고 ‘비리전력자 공천배제’라는 민주당 공천심사위의 기준 때문에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을 지낸 그는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증여세를 포탈, 1년6개월을 복역했다.

정치 명문가의 조건

김형준 교수는 “케네디가는 뉴프론티어 정신이나 진보적인 가치에 대한 공유가 있었지만, 한국의 정치 가문들은 기본적으로 정체성이나 지형성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2세 정치인들이 가치에 입각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지역 연고와 조직을 물려받아 정치를 하다보니 치열한 고민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짧은 헌정사로 인한 정당정치의 미성숙’이라는 구조도 원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미 케네디가가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도 민주당이 200년의 역사를 지닌 데다 지지층이 견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폴컴 윤경주 대표는 “정당의 생명력이 5~10년에 불과한 한국의 경우에는 지지층이 왔다갔다하는 만큼, 특정 정치인 집안이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흐름이 있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도 한 요인이다. 윤 대표는 “전국적인 큰 이슈들이 변화무쌍하게 제기돼 왔던 게 한국정치의 상황이었다. 특정정치 집안이 대를 이어서 제대로 된 현명한 정치선택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순형 의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주도, 정대철 고문이 아버지의 뿌리가 있는 구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선택한 점 등이 선대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 사례다. 최진 소장은 “해방 이후 급격한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선비정신이 실종됐다”면서 “정치인들은 그 과정에서 명예를 중시하기보다 권력지향적이 됐다. 생존의 정글 법칙을 따르게 됐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지지를 받는 것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법사위 활동을 하면서 서민층 등 마이너리티를 위한 법안을 내는 등 진보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며 “누구의 직계라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법안과 정책입안을 하고, 봉사하는 등의 활동에 힘써야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용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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