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과학으로서의 의학 vs 구원으로서의 의료 당신의 선택은?

김종목기자

닥터 골렘…해리 콜린스·트레버 핀치 | 사이언스북스

‘가짜의사’들은 어떻게 들통날까? 저자들이 미국과 영국 언론이 보도한 기사를 분석한 결과 가짜의사들은 대체로 의료와 무관한 행위 때문에 발각됐다. 환자에게 불필요한 시술을 해야 한다며 돈을 요구하거나 허위 보험 청구를 하다 적발되는 식이다. 중혼 때문에 체포되거나 여권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돼 정체가 탄로난 사례도 있다. 수술을 망치거나 의료 검진을 미숙하게 하다 들킨 일은 거의 없었다. 인후 감염 치료를 위해 비듬 예방 샴푸인 셀선(Selsun)을 처방해온 일반의는 30여년간 지역 사회에서 큰 의심을 받지 않고 의사 역할을 수행했다.

[책과 삶]과학으로서의 의학 vs 구원으로서의 의료 당신의 선택은?

저자들은 “유능한 가짜의사는 직무 중 학습의 기회를 잡아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을 쌓고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며 “직무 중 학습을 한 가짜의사들은 자격은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보다 유능하다”고 분석한다. 서구의 의료·의학 체제에서 가짜의사를 검증하는 시스템은 불확실하고, 수용 가능한 치료법으로 간주된 셀선 처방처럼 편차도 존재한다.

책 제목의 ‘골렘’은 유대신화에 나오는 것으로 진흙과 물로 빚어낸 인간 형체의 피조물이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통제받지 않으면 주인을 파괴할 수도 있는 ‘서투른 피조물’이다. 저자들은 의료·의학 역시 불확실한 ‘골렘’이라는 주장을 여러 사례를 통해 펼친다.

‘신체에 대한 분명한 개입 없이 마음이 몸을 치유하는 힘’을 뜻하는 전문 용어인 ‘플라시보 효과’도 마찬가지다.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이 시험될 때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효능이다. 무릎을 절개만 했는데도 ‘자연적 치유’를 통해 관절염 증상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난 ‘플라시보 수술’ 사례도 보고되었다. 또 몸의 상태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 ‘진짜 플라시보 효과’와 생리적 효과는 없이 마음에만 영향을 끼치는 ‘가짜 플라시보 효과’로 나뉠 정도로 ‘플라시보 효과’의 양상은 복잡하다. 저자들은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는 과학적 의료의 심장부에 뚫린 구멍”이라고 말한다. 플라시보 효과는 과학에 입각한 의학적 시각에서 보면 낭패이고, 의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방해물인 셈이다.

개인과 공동체 간의 긴장 관계도 책의 핵심 주제다. 노벨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은 암치료법으로 비타민C의 대량 투여를 제안했는데, 의료 과학의 판정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암 치료가 무위로 끝났을 때 개인이 비타민C에 구원의 희망을 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과 대학을 갓 졸업한 신참 의사보다 들통났지만 경험 많은 가짜의사에게 치료 행위를 맡긴다면? 저자들의 답은 공공선을 위해 비타민C 연구에 공공자금 투여를 정당화해선 안되고, 효율적인 의사 자격증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불확실성과 편차 같은 약점이 있지만 서구의 의학·의료가 가장 중요한 과학임을 역설한다. “정부가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향상시키면 (대체 의료 같은) 치료법으로서의 의료는 손상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다른 방향의 선택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음과 몸의 복잡한 상호 작용 관계 속에서 한 개인이 대체 의료를 선택할 수 있지만 국가의 의료·의학은 서구적인 과학 체계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의·양의 논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과학적 사고를 신봉하는 국가에서는 대체 의료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게 책의 결론”이라고 말한다. 한의학과 한방이 공식적 의학·의료 체계로 자리잡은 한국에서는 책의 주장들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이정호·김명진 옮김.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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