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현장을 가다

“썩은 하류 놔두고, 왜 멀쩡한 상류 모래만 파내나”

배명재 기자

수질개선 예산 1.8% 뿐, 기형 물고기 점점 늘어

35㎜ 비에도 농지 침수 “큰비 오면 어쩌라고”

“이 더러운 강물은 그대로 두고, 모래 파내고 댐 만들면 영산강이 살아난답디까.”

4일 오후 전남 목포시 옥암동 영산강 하구둑 선착장. 50, 60대 남자들이 하구둑 안쪽에 펼쳐진 영산호를 보고 쓴소리를 토해냈다. 경향신문 취재진과 동행한 조선대 이성기 교수(환경공학)가 맞장구를 쳤다.

[4대강 현장을 가다]“썩은 하류 놔두고, 왜 멀쩡한 상류 모래만 파내나”

“옳은 말씀이오. 하구둑에서 위로 10여㎞까지 강바닥에서는 생물이 살 수 없어요. 1981년 하구둑을 막은 후 계속 퇴적물이 쌓이면서 썩은 것이죠. 이런 데를 손보지 않고, 멀쩡한 중·상류 모래펄을 몽땅 긁어내면서 강을 살린다고 야단입니다.”

강변을 따라 4시간 가까이 걸어 다다른 소댕이 나루터. 막 보트낚시를 마친 박성운씨(47·무안군 일로읍)가 등굽은 떡붕어를 들어보였다.

“갈수록 이런 요상스러운 기형 물고기가 많이 잡히요. 걱정스럽소.”

이 교수가 말을 받았다.

“이곳까지는 수심이 평균 14m가 되니까, 대형 컨테이너선도 다닐 수 있지요. 수심이 충분한 곳은 강물이 썩든 말든, 그냥 놔두는 거죠. 결국은 운하를 만들겠다는 속셈입니다.”

상류 쪽으로 10㎞ 거리인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덤프트럭 10여대가 오가며 흙을 날랐다. 강둑 997m를 1m 높이는 공사였다. 이곳은 물 흐름이 예쁜 S자 모양인 데다 갈대숲까지 어우러져 영산강에서 ‘사진발’이 잘 받는 동네다.

“사람과 강, 물고기와 철새들이 도란도란 살았는디, 앞으로 이런 모습 볼 수 없게 돼부렀소.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물 넘치는 거 못봤는디, 그런데도 저렇게 강둑을 쌓는 이유를 모르겠소.”(김상오 할아버지·81)

어부 최병권씨(57·영산강뱃길복원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30여 년 전 끊긴 뱃길을 복원해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최근 전체 강 깊이를 5m 이상 판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랐다”면서 갖고 있던 지팡이를 내동댕이쳤다.

“모래와 자갈을 마구 파내면 물고기, 온갖 식생물은 종자도 안남을 것이여. 어민은 어떻게 살라고….”

강폭 630m를 가로지르는 죽산보 공사장 인근 마을인 신석리 주민들은 폭발직전이었다. 지난달 12일 35㎜ 내린 비로 마을앞 들녘 15㏊가 물에 잠긴 악몽을 떠올리며 땅을 쳤다. 죽산보 공사장은 가물막이를 한 채 80여대의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준설토를 싣고 강 한편에 내려놓고 있었다.

“장마철 전이라도 집중호우 내리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저기 성처럼 쌓아둔 흙더미 보시오. 강 동쪽엔 가동보 만든다고 막아부렀고, 서쪽엔 파낸 준설토를 그대로 놔뒀어. 저러다 큰비 오면 10㎞ 위쪽 영산포까지 물 난리가 날 거요.”(이장 정우창씨·68)

승촌보가 들어서는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80여가구 주민들도 분통을 터뜨렸다. 특산물인 돌미나리를 키우는 들녘을 수변공원 터로 내놔야 하는 처지다. 주변에 보호가치가 높은 대규모 습지(청동습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호남대 이두표 교수(생태학)는 “넓이가 62만㎡가 넘는 이 습지는 수초와 갈대가 골고루 분포해 희귀동식물이 많이 살던 곳인데 물에 잠기거나, 파헤쳐지게 됐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구둑에서 위쪽으로 80㎞ 거리인 광주천 합류지점. 희뿌연 색깔의 강물이 영산강 본류로 흘러들고 있다. 145만 광주시민들이 쏟아낸 생활하수다. 영산강 오염원의 70%가 광주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수처리한다지만 여전히 4~5급수다.

역한 냄새가 나는 강물을 한 컵 떠올린 이성기 교수는 영산강을 살리는 길은 아주 간단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산강 본류에는 홍수가 날 수 없습니다. 수질 개선만 하면 영산강은 살아납니다. 상류 쪽 물을 깨끗이 하고, 완전히 썩어있는 영산호를 살리면 됩니다. 그런데도 수질개선엔 영산강 살리기 총공사비의 1.8%인 483억원만 투자하는 게 말이 됩니까. 강을 5m 깊이로 파는 것은 강을 죽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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