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신뢰자본

이강백 | ‘아름다운 커피’ 사무처장

사자는 늙으면 무리에서 퇴출된다. 늙은 사자란 무리에서 퇴출을 앞두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영국의 거대한 유통기업 ‘막스앤스펜서’의 별명은 ‘늙은 사자(Old Lion)’였다. 막스앤스펜서는 세계 최고의 비영리단체, 옥스팜에 거액의 기부를 제의했다. 옥스팜은 막스앤스펜서의 비즈니스 윤리와 그간의 행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부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막스앤스펜서에서는 난리가 났다. ‘왜 우리의 기부를 거절했는가’에 대한 답변을 요청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했다. 기부조차 거절당했으니 얼마나 굴욕적이었을까.

[시론]상처 받은 신뢰자본

그 이유는 막스앤스펜서의 공정하지 못한 비즈니스에 있었다. 그들이 구매하는 면화와 상품은 비윤리적이고 불공정했다. 그들은 아동노동을 착취하는 상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기부조차 거부당한 충격에 막스앤스펜서는 자신들의 사업 관행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매장에서 파는 모든 차와 커피, 초콜릿을 공정무역 상품으로 바꾸었다. 그러고 나서야 옥스팜에 기부를 할 수 있었다.

늙은 사자, 막스앤스펜서는 그것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었다. 옥스팜이 세계 최고의 비영리단체로 존경받는 이유는 그들의 엄격한 원칙 때문이다. 그들이 영국 국민의 자랑이 된 이유는 그들의 높은 도덕적 기준과 철저한 자기관리다.

자선행위 통해 새로 태어난 기업

한 인간을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판단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귀처럼 자기 혼자 ‘처먹는’ 놈은 ‘나쁜 놈’이다. 나누는 사람, 함께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가 뒤처진 사회인지, 선진적인 사회인지를 측정하는 결정적인 지표는 무엇일까? 기부문화가 결정적인 증거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재산은 무엇일까? 한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자본은 무엇일까?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은 신뢰자본이다. 기부문화의 핵심은 신뢰에 있다. 신뢰는 어떻게 생기는가? 신뢰는 투명성과 높은 도덕성에서 나온다. 기부를 받는 모금단체를 내가 안심하고 돈을 기부해도 좋을 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이것을 확신하지 못하면 누구도 선뜻 기부하지 않을 것이다. 기부문화의 성장은 신뢰문화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기부문화가 큰 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부문화의 확산은 한국 사회의 발전과 시민사회의 성장을 증명해주는 중대한 지표다. 최근 기부문화의 확산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적십자사 사건은 우리 사회의 신뢰자본에 큰 상처를 주었다. 기부자의 선한 마음에 불신을 주었다는 점에서 해당 조직은 크게 반성하고 투명성과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엄격한 감사의 의무를 맡고 있는 정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2의 공동모금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저의를 의심받을 뿐이다. 반성해야 할 책임 주체로서 할 말이 아니다. 감사원이 감사를 소홀히 했다고 제2의 감사원을 만들자고 주장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런 일이 한국 사회의 기부문화에 위축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기부문화는 한 사회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건강한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0년 전 쇼펜하우어의 말을 다시 새겨보자.

기부문화 사회 행복지수 높여

“어떤 사람이 생애를 무사히 마칠 때까지 별 탈 없이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 그동안 그가 땀 흘려 애쓴 보람으로 남은 것은 단지 황금 덩어리일 뿐, 이제 그 귀중한 세월은 다 써버리고 말았다. 이제 그것을 남에게 물려줄 일만 남은 것이다. 그는 사실상 인생을 잃기 위해 돈을 벌었으며, 남에게(자식에게) 빼앗기기 위해 돈을 번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을 벌어 대부분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 귀중한 인생을 낭비했다면 그는 참으로 허망한 일을 했으며 미친 생애를 살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대체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재산을 탕진하거나 방탕해져 자신의 생애를 망치는 일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돈을 위해 망치고 유산을 물려준 자녀까지 망치는 일을 자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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