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가수’ 떠나는 윤도현

박경은 기자

“음악적 자유 얻은 것 같아…록밴드의 틀 벗어나고 싶어졌어”

“똑바로 하라고 했지? 넌 너무 답답해. 하나를 보면 열을 알거든. 너희 집에 가봐. 냉장고 열면 한 달이 넘은 우유에, 묵은지를 넘어서 곰팡이 핀 김치까지…. 집만 크면 뭐해. 내용물이 너무 허접한데. 네 상태가 그런데 여자를 만날 준비가 돼 있겠냐고. 네 어머니도 답답해 하시잖아. 반성 안하냐?”

바쁜 시간 쪼개 인터뷰하자고 만났더니 잔소리부터 날아온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그렇지 뭐. 그런 집에 혼자 놀러와서 뭘 바라?”라고 맞받았지만 도현이 형의 말은 구구절절 옳다.

윤도현 형(40)과 나는 ‘톰과 제리’이자 ‘실과 바늘’ ‘삼겹살과 소주’다. ‘YB 윤도현’이기 전에 ‘방송인 김제동’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 존재이자, 10년 동안 한결 같았던 내 삶의 위안이다. 지난 6개월간 형과 함께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우린 소중한 것을 얻었다. 형은 음악 속에서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됐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은 기쁨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b>김제동</b> “형은 진짜 동안이야.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형이래. 내가 노안이라 그런지. 어쨌든 옆에 내가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br><b>윤도현</b> “록밴드를 하기 때문인 것 같아. 재미있는 일을 하며 의욕적으로 사는 것, 그런 삶이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전부지.”<br><b>김제동</b> “내 목표도 그건데.”<br><b>윤도현</b> “그러려면 넌 뜨거운 사랑을 해야 돼.”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김제동 “형은 진짜 동안이야.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형이래. 내가 노안이라 그런지. 어쨌든 옆에 내가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윤도현 “록밴드를 하기 때문인 것 같아. 재미있는 일을 하며 의욕적으로 사는 것, 그런 삶이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전부지.”
김제동 “내 목표도 그건데.”
윤도현 “그러려면 넌 뜨거운 사랑을 해야 돼.”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월드컵 후 변했다는 말 이미 한번 들어봤잖아
그때 같은 실수 안할 거야”

▲ “나도 재도전 논란 후 욕 많이 먹었지만. 형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승엽이 홈런쳤을 때 같은 느낌.” - 김제동

- 명예졸업은 못했지만…. 어때?

“즐거웠지. 잠을 못 잔 건 빼고, 정말 고마운 일만 안겨줬던 추억이야.”

- 마지막에 불렀던 ‘내 사람이여’는 너무 좋았어. 형이 가슴으로 불렀다고 했는데, 난 들으면서 울었지. 형이 김광석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늘 보고 싶었거든.

“나도 2절 부를 땐 이를 악물고 불렀어.”

- 그런데 이젠 뭐 할 거야? 써놓은 곡도 많다면서?

“앨범부터 낼 거야. ‘나가수’ 하면서 음악적으로 자유를 얻은 것 같아. ‘빙글빙글’부터 여러 곡을 리메이크 했잖아. 거기서 얻은 영감이 많아.”

- 어떤 게 제일 좋았어?

“딱 꼬집을 수 없지. 우리가 해왔던 음악들이 아니니까 그 곡을 부르면서 새로운 세계를 맛본 거지. 록밴드는 이래야 한다, 저항성 있어야 한다는 식의 정형성에서 벗어나고 싶어졌어. 소재도 다양해졌고 해학과 풍자도 알게 됐고, 우리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한 최대한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

- 지난달 단독공연 때 내가 게스트로 갔잖아. 사실 형 공연을 10년 전부터 바람잡이하면서 자주 봤는데 몇 년 전부터는 제대로 안 봤어. 뭘 할지 알겠고 뻔했거든.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 계속 보고 싶어지더라고. 형의 원래 음악색에다 ‘나가수’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이 추가되면서 완전히 시너지효과가 난 거지. 마치 제방둑에 갇혔던 물살이 터져나오는 느낌이었어.

“그래 나도 그걸 느꼈어. ‘갇힌 음악’에서 ‘열린 음악’으로 바뀌었다고 할까? 그런데 난 너한테 많이 미안해. ‘나가수’ 하면서 고생 많이 했는데 YB에 비해 너한텐 득이 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방송분량도 잘 안 나오고.”

- 하하. 편집이 돼서 내가 형한테 잔소리하는 장면만 자주 나왔잖아. 댓글 보니까 내가 형인 줄 알고, 동생한테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분도 있었어. 하긴 우리가 일주일에 4~5일씩 붙어 있다 보니 별로 할 말이 없기도 했어. 또 ‘매니저’가 튀면 ‘가수’가 죽잖아.

“방송에서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우린 프로가 되기에 아직 멀었나봐. 서로 너무 잘 아니까 눈빛만 주고받은 거잖아. 어쨌든 많이 미안해. 나에 대한 평판엔 자유로워졌는데 누가 네 이야기를 하면 신경 쓰여. 트위터에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어.”

도현이 형의 매력은 ‘솔직함’과 ‘따스함’이다. ‘재도전’ 논란 이후 욕먹은 걸로 치자면 에베레스트 3좌 정도는 정복했다. 그럴 때마다 형은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면서 나를 감쌌다. 나 역시 형이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진짜 매니저’가 된 기분이었다. 승엽이(이승엽)가 홈런쳤을 때의 느낌 같았다.

▲ “나가수 사랑 보답할 길은
팬들이 자존심 세울 만한 음악을 만드는 것 같아”

▲ “노래도 말도 입에서 나가는 순간 떠나는 거 같아, 우린 다만 활시위를 당기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거지.” - 김제동

“아이로니컬하게도 ‘나가수’에 출연하면서 월드컵 때 내 모습이 떠올랐어. 월드컵으로 떴으면서 월드컵을 부인했잖아.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지.”

- 형 기억나요? 그때가 나 서울 왔을 무렵인데 그때 형은 붕 떠 있었어. 왜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 있는 연예인 있잖아.

“그땐 공연을 앰뷸런스 타고 다니면서까지 했어. 하루에 서너 개씩. 무슨 벼슬한다고. 신호도 다 무시하면서 다니니, 안에서 그런 가시방석이 없더라고. 그것 때문에 다들 힘들어했지. 이런 식으로 우리 음악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한쪽에선 못하겠다, 또 한쪽에선 누군 좋아서 하느냐고 싸웠지. 팀을 해체하겠다고까지 했었으니까.”

-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바빴는데 차이점이라면 그땐 진정으로 감사할 줄 몰랐던 거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 당시에도 고마운 마음이야 있었지. 그런데 어딜 가나 월드컵에 관한 질문만 해대니까 확 차올랐던 거야. 우린 그 전에도 계속 음악을 해왔는데 ‘월드컵 가수’로 정의되는 게 싫었던 거지. 그저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어리광부리고 투정했던 거야.”

- 맞아. 그때 대기실 들어가면 다들 축 늘어져서 한숨 내쉬고 있고, 형은 맥주 반 병 마시고 피아노 건반에 머리 박고 울기도 했어. ‘오 필승 코리아 아니었어도 됐다고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욕을 하는 거야’ 이랬어.

“누구나 한 번씩 그런 일이 있는 것 같아. 그런 과정을 거쳐야 나중에 깨달음이 있는 거지. 그때부터 슬슬 사람이 되는 거고. 너야말로 만날 술 먹고, 머리 박고 울지 않냐?”

- 내가 뭘?

“네 생활을 깔끔하게 정리할 때가 됐어. 우선 집 자체가 방황이야. 옷장엔 겨울옷과 여름옷, 세탁한 옷과 입은 옷이 뒤섞여 있고. 통닭도 그 동네에 살지도 않는 매니저한테 물어봐야 시키냐? 자기 집에 뜨거운 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하수도는 늘 막혀 있잖아. 너 여자랑 술마실 때도 재미없는 얘기만 골라서 하지? 등산 갔던 얘기, 절얘기, 읽었던 책 이야기…. 네가 토크콘서트 준비하는 열정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네 생활에 열정을 쏟아봐. 하루빨리 여자를 만나야 해. 그래야 뭐든 바뀌고 방송도 하는 일도 더 잘돼. 넌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고.”

- 하긴 요즘 갈수록 누군가를 웃기는 일이 힘들어요.

“뜨거운 사랑을 해야 가능해.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만 서면 ‘애모’의 가사처럼 돼.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거지. 박노해 시인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 사랑이 제일 중요한 거야. 사랑이 있을 때 그 사람이 가장 빛나거든.”

- 그러고보니 박노해 시인이 그랬잖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밥먹고, 사랑하는 여인의 품 안에서 잠들고, 그게 혁명이라고.

“그래, 박노해 시인 멋있다니까. 변했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어. 내가 김민기 선생님이나 박노해 시인을 좋아하는 건 그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시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야. 전에 내가 어떤 발언을 하거나 어떤 곡을 발표했을 때 그분들이 가끔 조언을 해주셨어. 그런데 그게 의외의 내용이야. 노래에 사랑이 없다, 포용하고 감싸라. 그땐 이해가 안 갔지. 그런데 상대가 주먹질을 할 때 오히려 감싸주는 게 진정한 카리스마더라고. 난 그게 멋있어.”

얼마 전 만난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닌 온몸으로 나는 거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이 칭찬하든 비난하든 그 말이 자신을 띄우거나 가라앉힐 수 없다고 하셨다. 결국 나 자신에게 따뜻하게 집중하라는 말씀일 터다.

“인터넷에 보니 구룡마을에 또 갔더라.”

- 혼자 집에 있으면 뭐해. 가서 함께 일하면 재미있어. 일 끝나고 막걸리도 한잔하고…. 주민들이 처음엔 5분 정도 연예인 취급하시다가 나중엔 함께 뒹굴며 막 일 못한다고 혼내시기도 해. 난 그런 게 좋아. 참 형 미연이 알죠? 베이비복스 간미연. 전에 보니까 미연이가 말도 없이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일하는데, 진짜 일을 잘하는 거야. 내가 미클레인(미연+포클레인)이라고 별명 지어줬잖아. 침수주택 도배해야 한다니까 도배까지 배우러 갔어.

“미연이 어떻게 생각해? 흐흐흐.”

- 밀어붙이지 마. 걔가 왜 날 좋아하겠어?

“넌 그게 문제야. 효리하고도 봉사활동 갔다왔다며.”

- 유기견 보호소가 침수피해 입어서 같이 간 거야. 개집 벽돌 새로 깔아줬지. 오전엔 진짜 힘들고 벽돌도 무거웠는데 오후에 은진이(베이비복스 멤버였던 심은진)가 오니까 벽돌도 가벼워지고 일도 즐거워졌어. 히히히.

“은진이는 몇 살이야?”

- 걔도 누가 있겠지.

“그러니까 넌 문제라고. 걔는 이래서, 쟤는 저래서…. ‘이 여자는 내 여자니까 절대 건드리지 마라’ 하면서 목숨 걸고 사랑할 여자를 구해봐.”

또 시작이다. ‘파주 세탁소집 아들’은 ‘대구 딸부잣집 막둥이’를 여전히 애 취급한다. 하긴 인터뷰하던 날도 형은 파주시에서 열린 경기도 행사에서 ‘파주찬가’를 불렀다고 했다. ‘파주 세탁소집 아들’이 ‘파주찬가’를 부르는 가수가 됐으니 배울 점이 많은 형이다.

“2년 전에 파주찬가를 록버전으로 바꿨어. 그전엔 교가 같았거든.”

- 중·고등학교 교가도 록으로 바꾸면 어떨까.

“좋겠지. 요샌 지역노래도 따로 만드는 대신 대중가요에 지명이 들어가면 그 지역 노래가 되는 것 같아. 돌아와요 부산항에, 목포는 항구다, 춘천가는 기차 등 모두 그 지역 노래가 됐잖아. 억지로 구태의연한 노래를 만들면 신세대들이 안 불러.”

- 그렇죠. 노래란 사람들이 불러줘야 생명력을 갖는 거니까.

“우리 음악을 열렬히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분들 때문에 우리 음악도 더 생명력을 얻게 됐잖아. 그러니 내가 어떻게 보답해야겠어? 우리 팬들이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고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음악 만드는 것, 그게 보답하는 거라고 생각해.”

- 그 멘트 멋있는데. 형하고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노래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입에서 나가는 순간 우리를 떠난 거야. 판단은 그걸 듣는 분들의 몫인 거고.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활시위를 당기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것뿐이야.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명중되는 건 운명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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