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정성일|영화감독·평론가

두 사람의 스필버그가 있다. 한 사람은 B급영화의 감수성으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거의 자유자재로 오락영화를 만드는 ‘소년’ 스필버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백인 유태계 미국인의 고뇌를 부여안고 쩔쩔매는 ‘환자’ 스필버그이다. 우리는 둘 사이를 지속적으로 오고갔다. <인디아나 존스>를 본 다음 <칼라 퍼플>을 보고, <쥐라기 공원>을 본 다음 <쉰들러 리스트>를 보았다. 둘 사이가 처음 화해를 한 영화는 「A.I.」였고, <우주전쟁>은 존 포드가 웨스턴에서 해낸 것을 스필버그는 SF영화에서 해냈다. 두 편의 의심할 바 없는 걸작. 하지만 그는 재빨리 두 사람의 스필버그로 돌아왔다. <뮌헨>을 만든 다음 다시 <인디아나 존스4,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만드는 사이클로 되돌아왔다. 나는 스필버그라는 이름 앞에 서면 다소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하 <틴틴>·사진)은 물론 B급영화광 스필버그의 영화이다. 1929년 벨기에 신문 ‘소년 20세기’에 연재를 시작한 조르주 ‘에르제’ 레미의 만화 (한국 번역 제목) <땡땡의 모험> 중에서 세 편, <황금집게발 달린 게>(1941), <유니콘호의 비밀>(1943), <라캄의 보물>(1943)을 각색한 이 영화는 또한 스필버그의 첫 번째 3D영화이기도 하다.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소년기자 틴틴은 화이트푸들 강아지 스노위와 함께 우연히 손에 넣은 모형 배 유니콘호에 숨겨놓은 비밀문서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모험에 말려들고 마침내 하독 선장과 사카린의 3대에 걸친 대결에까지 이른다, 라고 쓰긴 했지만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정신없는’ 엎치락뒤치락 슬랩스틱 모험활극이다.

이 영화에 관한 세 가지 인상. 첫째, 배우 이름을 외워봐야 별 도움이 안된다. (배우들을 찍어놓고 그걸 다시 컴퓨터 작업한) 퍼포먼스 캡처 기법을 동원한 촬영은 대부분의 인물들을 영화라기보다는 만화의 화질에 더 가깝게 보여준다(나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쓰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가 인물에 다가가면 그 섬세함은 영화에 가까워진다. 가장 영화적인 사실감이 느껴지는 순간은 강아지 스노위의 ‘개 털’이 바람에 휘날릴 때이다. 반대로 틴틴은 어떤 표정에서도 제이미 벨의 ‘퍼포먼스’를 ‘캡처’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그냥 만화가 책에서 걸어나와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틴틴과 하독 선장은 몹시 무더운 날씨에 아무리 힘겨운 모험을 해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기묘한 방식으로 만화와 영화가 공존하고 있다. 차라리 스필버그는 여기서 만화와 영화 사이를 오가기 시작하면서 그 어느 쪽에도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 구태여 비싼 입장료를 내고 3D로 볼 이유가 없다. 스필버그는 여기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 어떤 경쟁심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틴틴>의 3D 시차적 포커스는 인물과 소도구들이 화면에서 뛰쳐나온다기보다는 차라리 공간적 깊이감을 갖는 쪽에 더 맞추어져 있다.

셋째, <틴틴>은 영화라기보다는 여러 매체를 모아놓은 일종의 잡동사니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스필버그가 <틴틴>의 원작만화에 충실해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에르제가 자신의 만화로 20세기에 해낸 것을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로 21세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거의 영화 콘티에 가까운 에르제의 만화. 이제까지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게임에 가까운 스필버그의 영화. 이미지의 진화? <틴틴>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은 물론 이국적인 도시 바가라에서 틴틴과 하독 선장, 그리고 스노위가 내리막길을 따라 사카린 일당과 자동차 추적을 벌이면서 세 장의 비밀문서를 뺏고 뺏기는 추적 장면이다. 거의 10분 이상을 단 하나의 테이크로 따라가는 이 장면은 기술적으로 놀랍다기보다는 그 화면효과 때문에 어딘가 게임 화면을 보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말하자면 이건 실험적인 시도라기보다는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한 게임 스크린으로 인도하기 위한 가벼운 제스처처럼 보인다.

그런 다음 의문. <틴틴>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이 영화에 단 한 명의 중요한 여자 주인공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도 없고, 애인도 없고, 딸도 없고, 소녀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남자와 소년들로만 이루어진 거의 완전하리만큼 남자들만의 세계로 이루어진 이 이상한 이야기는 아버지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 <틴틴>에는 여자들이 들어올 만한 어떤 틈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마치 사막 위의 신기루를 본 것처럼 당신의 기억속에서 먼지처럼 사라진다면 그건 여기에 감정의 눈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틴틴>에는 액션이 넘쳐나지만 정감이 삭막하며, 테크놀로지는 놀랍지만 이미지는 어떤 홈도 없는 평면처럼 매끄러워서 나의 시선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틴틴>은 스필버그가 21세기 테크놀로지의 지각을 통해서 새로운 미디어의 감각을 익히는 영화이다. 말 그대로 신세계의 감각. 사실적인 영상과 만화적인 이미지 사이의 불연속성을 어떻게 하나의 화면 안에서 유기적인 매칭 방식으로 묶어낼 것인가. 묘사의 새로운 힘과 스타일의 기계적 운동. 하지만 이 훈련은 무미건조한 사막을 건너는 여행이다. 새로운 학습. 그런데 영화가 영화인 것은 영화가 기계인 것을 그만두었을 때 시작되지 않았던가. 우리는 영화의 죽음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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