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지동설’이라는 교차로에서 만난 동시대의 두 천재 케플러와 갈릴레이

윤성노 기자

▲ 신의 설계도를 훔친 남자…스튜어트 클라크 지음·김성훈 옮김 | 살림 | 488쪽 | 1만3800원

16세기 중반, 폴란드의 신부이자 천문학자인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저술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간됐다. 코페르니쿠스가 사망하기 직전 발간된 그 책은 ‘만물의 중심에 태양이 있고, 별들의 무리는 그 주위를 선회한다’는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책과 삶]‘지동설’이라는 교차로에서 만난 동시대의 두 천재 케플러와 갈릴레이

당시 종교재판이 횡행하고 있었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바티칸 가톨릭으로부터 종교적인 탄압을 받지 않았다. 그가 신부였던 덕도 있었겠지만 ‘신의 창조 설계에 대한 발견’이라며 오히려 일부 신학자들로부터 옹호를 받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은 탄압을 받지 않은 만큼 쉽사리 잊혀졌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다음 세기인 1616년에야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수사였던 조르다노 부르노(1548~1600)에 의해 다시 천문학계에 복귀했다. 1600년 부르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넘겨져 화형을 당한다.

동시대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수학과 천체 관측을 통해 과학적 사실로 입증해낸 두 사람이 있었으니,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와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그들이다.

케플러(왼쪽)·갈릴레이

케플러(왼쪽)·갈릴레이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 17세기는 종교재판이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때였다. 종교개혁의 영향이 확산되면서 유럽 중심부의 장악을 두고 바티칸과 프로테스탄트의 세력 다툼이 치열해지자 두 종파 모두 서로를 견제하고 멸절시키기 위해 종교재판을 강화했다.

스튜어트 클라크의 장편 소설 <신의 설계도를 훔친 남자>는 ‘과학의 암흑기’였던 17세기 초반,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과학적·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겪은 고난을 그린 작품이다.

클라크는 갈릴레이보다 케플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태생과 종교적 배경이 다르게 출발한 두 사람(케플러는 독일 출신 루터교도이고, 갈릴레이는 이탈리아 피사 출신으로 가톨릭교도였다)의 역정은 ‘지동설’에서 만난다.

독일의 수학자였던 케플러는 루터교도라는 이유로 자신이 살던 곳에서 프라하로 쫓겨난다. 그는 천체 관측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천문학 권위자인 티코 브라헤의 밑으로 들어가 화성의 궤도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행성의 공전궤도가 원을 그린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수학적으로 불완전함을 발견하게 된다. 케플러는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토대로 행성이 타원 모양으로 공전함을 증명해낸다. 행성이 공전할 때 면적속도(태양과의 거리×행성의 속도)가 일정하며, 공전주기의 제곱은 공전궤도 가운데 가장 긴 반경의 세제곱과 비례한다는 케플러 법칙이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개요>라는 책을 펴낸다.

갈릴레이는 이전에 있었던 망원경을 개선하여 갈릴레이 망원경을 만든다.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던 갈릴레이 또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행성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또한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지동설 주장을 담은 <두 개의 주된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를 펴낸다. 그러나 처음에 그의 주장을 비호하던 바티칸은 루터교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갈릴레이를 이단 혐의로 종교재판에 넘긴다.

저자는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삶이 ‘지동설’에서 교차하는 과정에서, 케플러가 궁지에 몰린 갈릴레이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거나, 갈릴레이가 자신의 망원경을 케플러에게 보내주길 꺼리는 등 두 천재가 서로 경계하면서도 옹호하는 미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기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클라크는 영국 일간 ‘더 인디펜던트’로부터 스티븐 호킹과 함께 영국 천체물리학 분야 ‘최고의 스타’로 꼽히기도 했다. <신의 설계도를 훔친 남자>에 등장하는 인물은 갈릴레이를 궁지에 몰아넣는 바티칸의 피페 추기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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