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미 비판 총리 몰락의 비밀… 일본 정치를 지배하는 미국의 깊숙한 손길

황경상 기자

▲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마고사키 우케루 지음·양기호 옮김 | 메디치 | 392쪽 | 1만8000원

오자와 이치로는 2009년 9월 일본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면서 총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해 초 시작된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에 연루됐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총리 킬러’로 불리는 도쿄지검 특수부는 단호한 수사로 유명하다.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1988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그 칼날에 쓰러졌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이 만약 미국 정보기관이 반미 정치가를 쫓아내려고 일본 검찰에 정보를 흘렸기 때문에 일어났다면 어떨까.

[책과 삶]미 비판 총리 몰락의 비밀… 일본 정치를 지배하는 미국의 깊숙한 손길

저자는 거침없이 이런 주장을 펼쳐보인다. 음모론쯤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전직 일본 외무성 고위관료여서만은 아니다. 구체적인 사료와 증언으로 전개되는 치밀한 논리가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만들어낸 가장 큰 힘은 미국이라고 본다. 미국에 대한 자주 혹은 추종이라는 선택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정치가 중 자주파는 늘 미국에 의해 밀려났다. 오자와는 주일미군 축소와 중·일관계 개선을 주장했고, 다나카는 미국보다 앞서 중국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다. 반면 이들을 쓰러트린 도쿄지검 특수부는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산하 ‘은닉물자 수사본부’가 모태다. GHQ를 위해 일본인이 숨긴 물자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저자는 대미 자주파 정치인들이 쫓겨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본다. 미국이 일본 총리 하나쯤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다. 후텐마 주일미군 기지를 최소한 오키나와 외부로 옮길 수 있다는 주장을 했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미·일 안팎으로부터 격렬한 공격을 받았고 결국 물러나야 했다. ‘A급 전범’으로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경우는 더 극적이다. 그는 불평등한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미국 주도의 안보조약 개정 반대’를 외치는 안보투쟁 시위의 격화로 사임한다.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학생단체 전학련에 자금을 지원한 이들이 바로 친미성향의 경제인이었다.

일본의 ‘종속’은 전후 점령기에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명령을 내리고, 일본 정부가 그에 따라 움직이는 ‘간접통치’가 실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맥아더는 일본 국민을 ‘노예’라고까지 표현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은 형식상 독립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미·일 안보조약과 행정협정으로 종속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1945년 9월2일 도쿄만의 미 군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우메즈 요시지로 일본군 참모총장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것은 곧 미국에의 완전한 종속을 의미했지만 일본인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했다. 일본은 지금도 9월2일이 아니라 8월15일을 ‘전쟁의 끝’이라 생각한다. |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사진

1945년 9월2일 도쿄만의 미 군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우메즈 요시지로 일본군 참모총장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것은 곧 미국에의 완전한 종속을 의미했지만 일본인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했다. 일본은 지금도 9월2일이 아니라 8월15일을 ‘전쟁의 끝’이라 생각한다. |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사진

그러나 정작 일본 국민들은 일본이 미국에 종속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일본의 정치가가 통치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노골적으로 미국을 추종하고도 국민들 앞에서는 폼을 잡으며 미국에 반항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같은 인물 덕분이다. 그는 맥아더 장군의 정보참모부장 찰스 윌로비 숙소의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지시를 받으며 내각을 결정하고 차기 총리 인선을 도모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이 모습을 알 길이 없다. 요시다의 대미 추종노선은 되레 미화돼 60년 이상 이어져왔다.

심지어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쇼와 천황조차 오키나와의 반영구적 군사점령을 원한다는 의견을 맥아더에게 전달했을 정도였다. 전쟁 직후 천황을 처형해야 한다는 미국 내 여론이 33%에 이른 만큼 천황제가 미국에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점령 직후 미군 주둔 경비 증액을 거부한 당시 대장대신 이시바시 탄잔은 요시다 총리에 의해 추방당했다. 1955년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은 주일미군의 완전철수 등을 주장했다가 사임하고 겨우 1개월 뒤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미국의 손길은 깊숙하다. 일본이 러시아(구 소련)와 쿠릴 열도를 두고 분쟁하고 있는 것도 미국 때문이다.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서 이 문제는 양측의 양보로 타결됐지만 미국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미국의 전형적인 ‘분리 통치’ 즉, 구 식민지들이 단결해 미국에 반대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분쟁의 소지를 남겨놓는 전략 때문이다. 한국·중국과 영토 문제를 빚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더욱이 일상적으로 지진 피해를 겪는 일본이 핵발전소를 대거 건립하게 된 것도 다름 아닌 미국 때문이었다. 미국의 입김은 정치인·경제인·학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미쳐서 ‘반미’라는 말조차 나오기 어렵게 만들었다.

전쟁 직후 미국은 일본의 경제를 식민지 조선 수준의 이하로 떨어뜨려 ‘징벌’하려 했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되자 일본은 공산주의의 방패막이로서 중요성이 부상했고 미국은 일본의 경제부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일본이 미국을 추종해서도 반대해서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이익에 따른 결정이었다. 일본이 자국 안보에 아무 소용 없는 미국의 대잠정찰기 P3C를 100대나 사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면서 미국의 환심을 산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저자는 결국 “어떻게 변화를 파악하여 자국의 이익으로 전환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의 현실에도 아프게 들린다. 일본에서는 20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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