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는 혁명적이었을까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우주체계를 새롭게 제시한 사람이다.

그는 종교적 권위에 도전하여, 지구가 움직인다는 혁명적 이론을 제창한 선구자로도 알려져 있다.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서양 계몽사상가 사이에 유행해 우리에게는 상식이 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그가 과연 혁명을 이끈 저항의 영웅이었을까?

[과학 오디세이]코페르니쿠스는 혁명적이었을까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그를 ‘canonicus incomparabilis’ 천문학자로 보는 것이었다. ‘canonicus’란 교회와 관련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코페르니쿠스가 폴란드 바르미아 지역의 교회 행정관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비록 사제 서품을 받지는 않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당시 교회 체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당시 교회 실세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 천문학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중에는 기에세 주교처럼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하도록 코페르니쿠스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정작 코페르니쿠스는 책 출판을 꺼렸다. 그 이유는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한다면 왜 우리가 그것을 못 느끼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양중심설이 성서의 몇몇 구절과 불일치한다는 문제를 그가 인식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만족스러운 동역학적 설명 없이 이론을 공표했을 때 동료 천문학자들로부터 받게 될 비웃음이었다. 결국 코페르니쿠스가 갈망했던 동역학적 설명은 후배 과학자인 갈릴레오와 뉴턴에 이르러서야 제시된다.

앞에서 설명했던 ‘canonicus’에는 표준적이고 모범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 ‘incomparabilis’란 다른 사람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 두 수식어를 결합하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당대 천문학에 대한 이해와 활용에서 천문학 연구의 전범을 보여줄 정도로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가장 잘하던 기존의 천문학을 대체하는 혁명적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인 토마스 쿤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쿤은 과학연구에 핵심적인 능력을 ‘수렴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로 정리했다. 수렴적 사고란 이미 성공적으로 풀린 문제를 본받아 유사한 방식으로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것이다. 발산적 사고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꾼 것처럼 기존의 연구틀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처럼 과학이론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참신하고 과감한 발산적 사고만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코페르니쿠스는 기존 이론을 아무리 잘 변형해도 천문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당대 천문학에 통달했다. 특히 그를 괴롭힌 점은 기존 천문학이 천체의 운동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천체가 위치에 따라 다른 속도로 원운동한다고 가정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에테르로 이루어진 천체의 완전한 본성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꿔 생각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의 발산적 사고의 배경에는 기존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좋은 과학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한 독특한 생각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에서 천체는 균일한 속도로 원운동을 한다. 이는 코페르니쿠스가 보기에 만족스러운 천체이론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특징이었다.

역설적인 사실은 코페르니쿠스가 기존 이론의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한 점이 사실은 문제조차 아니었다는 점이다. 행성은 실제로는 타원 궤도의 매 지점에서 태양으로부터 인력이 다르기에 공전 속도가 다르다. 현재 우리가 참으로 알고 있는 사실(태양중심설)을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하게 된 주요 동기가 현재 우리가 거짓으로 알고 있는 사실(행성이 균일한 속도로 회전)이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혁명적이었는가?

물론이다. 그의 천문이론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결국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으로 발전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혁명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종교적 권위에 의해 핍박당한 자유로운 영혼의 과학자로 간주하기에 그는 너무나 ‘교회적(canonical)’이었다. 그가 혁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출발점은 현재는 부인되는 옛 이론의 잔재였다. 모든 과학은 기존의 이론에서 차근차근 발전해 나간다.

혁명적이었던 코페르니쿠스의 경우조차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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