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회 핵무장론과 불량식품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의 단언컨대] 124회 핵무장론과 불량식품

애국단체총협의회와 나라사랑기독인연합 등 극우 단체들이 한국의 핵무장을 촉구하는 ‘생존을 위한 핵무장 국민연대’ 준비위원회 출범식을 22일 열었다. 취지문은 이렇다. “정부는 즉시 자위적 핵무장을 결단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야 한다” “한국의 핵무장 선언은 자유통일을 이룩하는 시발점으로, 동맹국도 우리의 자주적 결단과 노력을 존경할 것이다.”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좋아하듯 극우세력은 본래 핵을 좋아한다. 핵무기는 힘, 우월성, 지배, 통제라는 극우적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핵은 아이들의 과자와 같은 존재다. 손 안에 쥐고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하지만 없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슬프기 때문이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할 때까지 이들이 핵무장론을 참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문제는 여론형성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극우세력들이 아니라, 집권세력, 집권당에게 있다. 나라의 안전과 시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자는 어떤 경우라도 신중하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집권당 지도자들이 거의 한 목소리로 어떤 방식이든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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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술핵 배치론

미국 전술핵 배치론은 남의 것을 우리 땅에 갖다 놓자는 주장이다. 얼핏 생각하면 한국이 핵개발 하느라 고생하느니 빌려 오자는 편리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국의 결심에 달렸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싫다고 했다. 미국에 가서 몰래 훔쳐오지 않는 한 이미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전술핵 배치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자는 건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줄테니 핵을 빌려달라고 미국에 가서 삼보일배라도 하며 애걸하자는 걸까?

미국의 전술핵은 공중 투하용만 남아 있다. 이걸 남쪽에 들여온다고 해보자. 유사시 괌 미공군 기지에서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오는데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핵이 남쪽에 있으나 괌에 있으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베게 밑에 숨겨둬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다. 핵무기가 괌이 아니라 남한에 있어야 한다면 그건 핵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 문제이다. 그런데 은행에 맡긴 돈은 자기 것이지만 핵은 미국의 것이다. 나의 심리적 안도감을 위해 남의 것을 가져올 방법이 없다.

이미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 제공하느라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전술핵까지 배치한다면 효과 없는 일에 이중의 비용을 지불하는 결과가 된다. 미국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술핵 배치론은 한국의 안보와 미래를 아예 미국에게 완전히 맡기겠다는 발상이다. 한국인은 이제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렇게 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쟁과 평화를 미국이 결정한다면 굳이 선거해서 정치 지도자를 뽑는 수고를 하고 한국정부에 왜 세금을 내야할까?

한국 자체 핵무장론

핵 국가가 되려면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 기구에서 탈퇴하고 국제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한미관계도 파탄 날 각오를 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핵개발 시도만으로도 미국과 오랫동안 갈등했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한미 동맹은 폐기되거나 결정적으로 훼손되면서 한미 대립과 갈등의 새로운 외교사가 펼쳐질 것이다. 남북은 핵무장한 상태에서 대결하고, 한중관계는 냉랭한 관계에서 갈등관계로 전환할 것이다. 일본과 대만은 우리도 핵무장해야 한다고 나설 것이고 그로 인해 한일관계는 더 나빠질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한미까지 대립하고 갈등한다면? 동북아에서 모든 국가들과 대립하는 한국은 고립될 것이다. 모든 주변국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제재까지 받는다면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 구조를 감안할 때 경제는 추락할 것이고 시민들은 불안해지고 삶은 나빠질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전력난 경제난에도 고난의 행군을 할 수 있겠지만 남한 시민들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재 효과가 분명히 나타날 곳은 국제적 고립 속에서 자력갱생을 기치로 버텨온 북한이 아니라 자유 무역을 앞세우는 개방 경제체제인 남한이 될 것이다. 정권 교체를 할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이야 어려워도 참고 살 수 밖에 없겠지만, 남한 주민들은 정권교체를 하고야 말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으로 자주국방이 가능하게 됐다면 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 근거도 사라진다. 보수세력들은 정말 동맹과 미군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핵연료공급그룹과 조약을 맺고 있다. 조약을 깨고 핵개발에 나서면 우라늄 공급 중단, 농축 서비스 원자력 관련 민군 겸용기술 제공 중단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한국에는 우라늄광이 없어 수입해야 한다. 그런데 핵 관련 물질과 서비스 도입이 중단되면 핵무기를 어떻게 만들고, 원전은 무엇으로 가동하나?

북한처럼 밀수하나? 좋다. 밀수하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은 어디에 두고, 핵실험은 어디에서 할까? 사드 배치도 지역 주민의 거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방사성 폐기물이 넘쳐나는데도 폐기물 처리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다. 그런데 위험천만한 재처리 시설과 핵 실험장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 동네에서 핵실험해도 좋다는 사람들이 나타날까?

온갖 난관을 뚫고 핵물질도 확보하고 운 좋게 재처리 시설, 핵실험장을 내주는 동네도 나왔다고 해보자.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없으면 다른 것을 다 가져도 소용이 없다. 바로 핵을 사용할 권한, 즉 전시작전통제권이다. 현재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군에 무기한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 손에 핵이 있다해도 쓸 수가 없다. 핵무장론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전작권을 돌려받는 것이다. 우선 열쇠부터 챙기는 걸 잊지 말라. 보석함만 끌어앉고 있어봤자 소용이 없다.

몇 가지 질문

■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

공포의 균형으로 북핵을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의 윤상현 의원이 9월 2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잘 설명했기에 윤의원 발언 내용 소개로 반론을 대신하겠다.

“공포는 대응수단이 될 수 없다. 공포는 상대적이고 이성적인 두려움이다. 70년 공포통치를 물려받은 김씨왕조의 젊은 후손에게 그런 이성을 기대하는가? 70년간 전쟁을 준비해오고, 60년간 핵무기를 만들어온 북한왕조가 ‘대등한 공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까? 남과 북은 그 공포에 연계된 ‘담보가치’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에겐 5천만 국민의 삶이 걸려있지만, 북한의 젊은 독재자가 잃을 것은 자신의 목숨 하나밖에 없다. 둘째, 균형이라는 것도 미국과 구소련처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고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 그래서 서로 ‘최후의 대안’이 있고 ‘보복할 시간과 보복당할 위험’이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개념이다. 한반도는 좁은 땅이다. 그리고 핵이 아니더라도 이 좁은 땅을 몇 번이고 파괴할 수 있는 거대한 군사력이 이미 첨예하게 대치중이다. 전쟁의 문이 열리는 순간, 피할 곳도 남아날 곳도 없다. 잿더미만 남는 곳에 ‘균형’이 설 자리가 어디 있나? ‘균형’은 그저 수사적 개념일 뿐, 한반도 지형과 군사현실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남북간에는 이미 재래식 무기로 상호 치명적 파괴가 가능한 상태에 있다. 핵무기가 추가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래도 좁은 곳에 마주 앉아 서로 핵위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 남한에 핵이 있으면 김정은이 꼼짝 못할까?

북핵을 남핵으로 견제하자는 논리에는 김정은이 남한 핵에 위축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깔려 있다. 외부세계의 핵이 북한을 견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 타당하다면 북한은 그동안 핵을 개발하지 말았어야 한다. 멀리는 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해 핵위협을 받은 일 때문에, 그리고 미군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 것 때문에 북한은 오랫동안 핵보유를 꿈꿔왔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받으면서 길게는 60년간, 짧게는 20년간 핵개발을 지속해왔다. 이같이 북한에 대한 핵위협은 북한을 억제하기는커녕 북한을 핵의 유혹에 빠뜨렸고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의 핵에 맞서온 북한이 남한 핵을 무서워할까? 아마도 일찌감치 핵개발에 나선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핵개발은 역시 현명했고 정당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반길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핵개발로 남측으로부터 비난받았던 사실에 대해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 통일은 포기하나?

남북이 모두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보자. 이로 인해 동북아 핵도미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동북아 정세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은 어렵다. 주변국이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통일된 핵강국을 반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외교는 포기해야 한다. 그동안 통일외교는 통일된 한반도가 평화국가로서 주변국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줌으로써 통일을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주변국에게 통일은 위험 요인이 되었다. 통일대박?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나?

부잣집 아이, 욕심 많은 아이라도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핵, 동맹, 주한미군, 안보, 경제적 번영, 평화, 통일을 한 바구니에 담을 수는 없다. 핵무기 갖고 자주국방하고,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그대로 두고 전작권 미군에 넘기고, 국제 제제 받으면서 국제사회의 중견국가로 우뚝 서고 개방 경제 체제 살리면서 동북아 정세 주도하고 통일을 향해 전진하는 방법은 없다. 그런 것들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핵무장을 한다는 것은 이미 다 가진 것 외에 추가로 하나 더 갖는 그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무장은 다른 가치 있는 것들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도 손에 쥘 가치 있다면 마땅히 그걸 선택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그렇게 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북한화

■ ‘자위적 핵무장’ 따라 하기

남한 핵무장론은 북핵에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명분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바로 북한의 핵개발 논리이기도 하다. 미국의 핵위협에 정당한 자위적 조치로 핵을 보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핵위협에 자위적 조치로 남한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북핵을 비판한다면 남한핵도 비판받아야 한다. 남한 핵무장을 정당하다고 여긴다면 북핵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남한은 이제 핵위협을 느끼지만 북한은 60년간 핵위협에서 살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느끼는 위협은 가짜고 남한이 겪는 위협은 진짜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북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으로부터 북한이 당하는 위협이 진짜이지, 남한이 우리로부터 느끼는 위협은 진짜가 아니다. 우리의 핵은 그저 미국 핵을 억지하려는 것 뿐, 남한을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남한이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을 이렇게 정당화해왔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한국 핵무장을 이해해 줄 것이라 주장하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그렇게 이해심이 있다면 한국 전쟁이후 핵위협에 시달려 왔고, 미국의 제재와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서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핵을 보유하기로 한 북한의 선택도 이해해줘야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북한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처럼 남한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다. 절대 선의를 믿어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는 냉혹한 세계다.

■ 경제-핵 병진 노선 따라 하기

남한에서 한 목소리로 일치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경제-핵 병진 노선이 실패할 것이라는 점이다. 핵을 먹고는 살 수 없다, 핵무장한 채 국제 제재와 국제적 고립 상태에서 경제난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남한도 북한의 병진노선을 따르자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도 발전시키고 핵무장도 하는, 실패 모델을 배우자고 한다.

■ 남북간 동병상련하기

남북은 외부의 핵위협에 자위적 조치로 핵무장을 했다는 이유로 국제 제재를 받는 부당함(?)에 대해 서로 공감할지 모른다. 대북제재와 대남제재를 받는 두 체제는 혹시 공동대응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가까워지게 될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건국절 제정 까지 주장하는 마당에 김정은 흉내내며 제2의 북한으로 전락하면 남북간 이질성을 극복하는 일이니 좋은 일일까?

왜 그럴까?

한반도에 북한 하나 만으로도 피곤한데 북한과 제2의 북한 둘이나 있다면 좀 괴로울 것 같다. 그런데 왜 집권세력들은 무책임한 주장을 퍼뜨리고 있는 것일까? 가능한 설명 하나는 그들이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인은 시민의 대표자, 대리인으로서 시민들의 여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고 또한 그런 여론을 반영해야 할 처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최근 북핵 실험에 불안해진 시민을 대신해 그런 의사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여론을 반영하는 기계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도록 위임받은 대표자이다. 그렇다면 불안에 불안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즉, 북핵 해결책을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보수정치인에게는 안보를 중시하고 안보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오히려 대책 없이 안보를 해치고 있다. 고정관념을 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안보는 너무 중요해서 보수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근의 단언컨대] 124회 핵무장론과 불량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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