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 황소상과 마주한 소녀상, 궁금한 5가지

주영재 기자

7일 새벽 등장한 뉴욕 월가의 ‘두려움 없는 소녀상’은 단숨에 관광명소가 됐다. 인스타그램에는 소녀상과 찍은 사진이 수천 건씩 올라왔고 위키피디아에도 소개글이 올라갔다. 소녀상 또래의 여자 아이가 슈퍼히어로 복장을 하고 소녀상 옆에 나란히 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녀상은 전 세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 뉴욕 월가의 상징인 황소상 앞에 세워진 ‘두려움 없는 소녀상’에 8일(현지시간) 보라색 모자가 씌워져 있다. Photo by Drew Angerer/Getty Images

미국 뉴욕 월가의 상징인 황소상 앞에 세워진 ‘두려움 없는 소녀상’에 8일(현지시간) 보라색 모자가 씌워져 있다. Photo by Drew Angerer/Getty Images

-소녀상을 누가 왜 만들었나?

“여성 지도력의 힘을 알라. 여성(SHE)은 차이를 만든다.” 소녀상 아래 동판에 써진 글귀다. 소녀상을 세운 이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SSGA)이다. ‘SHE’는 이 기업이 지난해 발표한 ‘성 다양성 지수 펀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SSGA는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이 소녀상을 세웠다. 그러면서 이 회사가 투자하는 3500개 이상의 기업에 여성 임원의 숫자를 늘리라고 촉구했다. SSGA는 성 다양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재무 성과가 좋았다고 밝혔다. 로리 하이넬 SSGA 상임 상무이사는 “25조달러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로서 우리는 핵심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이사회와 경영진을 활용하길 원한다”라며 “이사회와 임원들의 성 다양성이 높을수록 실제로 기업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SSGA에 따르면 미국 러셀3000 지수에 이름을 올린 3000개 기업 가운데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기업은 4분의 1이나 된다. 시장 조사 기관인 ‘ISS’의 조사에 따르면 러셀3000 지수에 포함된 기업 이사회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6%였다. 포춘 500대 기업 중에서 최고경영자가 여성인 기업은 전체의 4.2%인 21개사에 불과하다. SSGA의 경우도 평균보다는 낫지만 이사회 구성원 11명 중 여성은 3명, 28명의 고위 임원 중 여성은 5명이었다. SSGA는 자사도 이사회와 임원에 더 많은 여성을 임명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녀상은 상업 광고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여성의 기업 내 지위를 높이기 위한 SSGA의 노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국 뉴욕을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두려움 없는 소녀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by Drew Angerer/Getty Images

미국 뉴욕을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두려움 없는 소녀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by Drew Angerer/Getty Images

-왜 황소상 앞에 세웠나?

그렇다면 왜 굳이 이 소녀상을 황소상 앞에 세웠을까? 하이넬은 9일 AP통신에 “우린 정말로 황소에게, 그에게 어울리는 짝이 있길 원했다”라며 “두려움이 없으며 우리가 필요하다고 믿는 변화를 기꺼이 추진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젊은 여성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소녀상을 만든 미국 여성 조각가 크리스틴 비스발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한 월가 한복판에서 소녀상은 ‘이봐, 우리 여기 있어’라고 말을 하고 있다”면서 “소녀상이 내게 말하는 것은 ‘여성은 아담하고 섬세하지만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황소상의 자세를 따라 소녀상도 어깨를 숙인 채 한쪽 다리를 뒤로 뻗은 형태로 만들려고도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그냥 똑바로 서서 정면으로 황소상을 마주 보는 자세로 결정했다”면서 “친구의 7살 난 딸과 다른 9살 여자아이와 함께 소녀상의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열심히 토론했다”라고 덧붙였다.

SSGA의 수석 홍보 책임자인 스테판 티스달은 8일 뉴욕타임스에 “소녀는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도 대변하고 있다”라며 “소녀는 황소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소녀는 자신감 있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고 그리고 황소가 주의를 기울이길 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소녀상은 월가가 상징하는 미국 금융계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협력자가 되어야 하며 기업들이 이를 인정하고 독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여성의날 앞두고… 월가 황소상 앞에 소녀상이 섰다

-소녀상 앞에 선 ‘슈퍼히어로’는 누구?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소녀상 앞에는 ‘슈퍼 히어로’가 등장했다. 빨간색 옷에 핑크색 망토를 두른 5살 꼬마 아이의 이름은 아브리안나 토바르 알몬트이다. 알몬트는 여성의 경제적 영향력을 체감하도록 기획된 일종의 파업인 ‘여성 없는 날’ 행사로 학교가 쉬자 엄마와 함께 뉴욕의 소녀상을 찾았다. 알몬트는 소녀상을 보자마자 곧 그와 비슷한 자세로 소녀상을 마주했다. 곧 주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어 이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알몬트에게 자세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CNN은 왜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신과 소녀상을 찍는지 알몬트가 정확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진작가인 아만다 마모르는 CNN에 “나는 아이가 소녀상을 따라 하는 것에 매우 자신감을 느끼는 걸 봤다. 이게 소녀상이 상징하는 것이자 여성들의 파업이 상징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히어로 복장을 한 5살 여아가 8일(현지시간) 뉴욕 월가의 ‘두려움 없는 소녀상’을 마주보고 서있다. 출처:CNN 트위터

히어로 복장을 한 5살 여아가 8일(현지시간) 뉴욕 월가의 ‘두려움 없는 소녀상’을 마주보고 서있다. 출처:CNN 트위터

-자유의 여신상도 동참했다고?

소녀상과 함께 세계 여성의 날에 ‘동참’한 청동상이 또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11시부터 한 시간 넘게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도 평소와 달리 거의 대부분이 꺼진 채 어둠에 잠겼다. 불이 켜진 곳은 횃불과 왕관뿐이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한 파업 행사(#DayWithoutWomen)를 주도하는 ‘Women‘s March’는 트위터에서 “여성 없는 날을 기념하는 저항에 동참한 자유의 여신상에 고맙다”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립공원관리청(NPS) 측이 “낙후된 조명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 발전과 조명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껐다”라며 “교체 작업을 마치자마자 전력은 복구됐지만 조명 시스템 조정기를 초기화시키지 못해서 정전이 됐다”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NPS 측은 이어 “어떤 특정 신념을 지지하기 위해 조명 시스템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이 신문에 밝혔다.

-소녀상의 운명은?

소녀상은 설치되자마자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영구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황소상을 돌아보면 소녀상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 월가의 황소상은 ‘게릴라 예술’의 일종이었다. 1989년 이탈리아계 예술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가 허락도 없이 한밤 중 뉴욕 증권 거래소 앞에 설치한 조각이 황소상이었다. 모디카는 황소상이 2년 전 월가의 주식 시장 폭락을 견대낸 미국인의 “힘과 용기”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말했다. 뉴욕 증권 거래소는 황소상이 설치된 그날 오후 이 청동상을 철거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도 황소상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뉴욕 시는 황소상을 볼링 그린 파크로 옮겨 계속 그곳에 머물도록 허락했고 황소상은 곧장 월가의 상징이 됐다.

소녀상은 7일 새벽 4시~6시 사이에 설치됐다. 황소상의 ‘깜짝 설치’를 뒤따른 것이지만 허가를 받고 설치됐다는 점에서 ‘게릴라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소녀상은 뉴욕 시로부터 일주일간 설치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AP통신은 현재 뉴욕시와 SSGA가 소녀상의 존속 기간을 두고 협상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SSGA의 대변인은 8일 로이터통신에 “최소한 한 달간 머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도 9일 트위터에 “우리의 미래는 두려움 없는 소녀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글을 올렸는데 영구 보전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트위터

출처:트위터

“우리의 미래는 두려움 없는 소녀의 손에 달려있다.” 출처: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의 트위터

“우리의 미래는 두려움 없는 소녀의 손에 달려있다.” 출처: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의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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