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고 말 안 듣는 애들’ 편견 깨고 싶어

윤승민 기자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 남성우·윤종훈·박희수

9월 출범…지난달 구의역서 회견 “차별·무시 직접 바꾸겠다”

실습 취업 불이익 여전…대학 진학 원해도 학교선 취업 유도

지난 18일 특성화고생 권리 연합회 학생들이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자신들의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18일 특성화고생 권리 연합회 학생들이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자신들의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는 2학년 남성우군(17)과 윤종훈군(17)은 최근 건축회사에서 실습을 시작한 같은 과 3학년 선배가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선배는 건설현장 엘리베이터에 탄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며 “그래도 돈은 많이 번다”고 자조했다고 한다. 둘은 “실습을 1년 앞두고 우리의 미래를 본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지역 특성화고 1학년인 박희수양(16)은 ‘취업률 100%’ ‘공무원·공사 취직’이라는 학교 홍보 문구를 떠올리며 입학했다. 하지만 곧 기대를 접었다. 박양은 “3년치 진학·취업 실적을 한번에 적어 1년치 실적인 것처럼 적어놓았다”며 “취업률 100%도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다 포함해 만들어낸 수치더라”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군, 지난 1월 전북 전주시 콜센터에서 실습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모양 등의 사례는 특성화고의 졸업생·재학생들이 취업과 실습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특성화고 학생들이 실습·취업현장과 학교에서 겪는 차별에 맞서 권리를 찾겠다며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를 꾸리기로 했다.

연합회 출범을 추진하는 남성우군과 윤종훈군, 박희수양은 지난 18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은 ‘공부 못하고 말 안 듣는 애들’이라는 편견을 깨고 정당한 권리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학생들은 오는 9월 연합회 공식 출범을 앞두고 구의역 9-4번 출입구에서 지난 7월26일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양도 이날 구의역을 찾았다. 그는 “같은 특성화고에 다니는 친구들 중 구의역 사건을 모르는 친구도 있다”며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신경을 안 쓰는 친구들이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군과 윤군은 회견 이후 연합회에 합류했다. 둘은 “특성화고 학생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많이 봐왔다”고 했다. 지난 7월 구의역 기자회견에서도 ‘우리는 공부 못해서 특성화고 온 게 아니다’ ‘차별과 무시, 우리가 직접 바꾼다!’는 대형 팻말이 등장했다.

최근 특성화고 학생들의 부조리한 실습과 취업 문제가 이슈화됐지만 이들은 사회로부터 느끼는 차별이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남군은 “실습현장에 간 학교 여선배가 대학교 출신 선배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박양은 “취업 면접 때 ‘상사가 커피를 타오라면 어떡하겠냐’는 질문이 나오면 ‘거절하지 않고 수긍한다’고 답해야 합격한다는 이야기를 학교 선배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교내에서도 성적에 따라 차별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군은 “우리 학교는 ‘대학 가도 취업 안된다’며 취업을 하라고 요구한다”며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정성 들여 진로를 알아봐주는 반면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에겐 공부를 도와주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양은 “학생이 대학 진학을 원해도 학교 측은 ‘성적이 높지 않다’며 학생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취업을 유도한다”며 “한 학년에서 전교 석차 5등 안의 학생들만 학교가 만든 ‘공무원 준비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여름방학 동안 서울지역 10개 학교, 경기지역 7개 학교에 지부를 꾸렸고 이달 내로 수도권 중심으로 지부 수를 20여개로 늘릴 계획이다. 다만 선생님과 부모님과의 갈등은 이들에게 부담이다. 남군과 윤군은 “학교 지부 운영진에 들어오겠다던 학생 2명이 있었는데, 약속한 면접 당일 부모님이 반대했다며 오지 못했다”고 했다. 남군은 “특성화고에서 제일 중요한 게 교사와 제자 관계”라며 “실습이나 취업할 때 교사의 추천서가 필요하고 선생님들이 관련 정보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각오가 돼 있다”며 웃어 보였다. 박양은 “내 권리를 찾는 행동을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후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군은 “청소년들의 투표권이 반영되지 않아 정치권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의 의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며 “연합회 활동을 통해 특성화고 학생들, 청소년들의 의견을 담은 청소년 노동법을 별도로 제정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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