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일기 쓰는 원불교 교무 정상덕 “사드로 소성리 평화의 핏줄은 끊어졌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9월 23일 오전 10시 청와대 인근 효자동 자치센터 앞에서 고 조영삼씨(58)의 시민사회장이 열렸다. 시민사회장에는 시민·평화단체 회원 1000여명이 참석했다. 조씨는 19일 오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가고 평화 오라, 문재인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고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이틀 후인 25일 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심재권 특위 위원장은 “사드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방어는 어렵다”고 말했다. 설훈 의원은 “사드는 군사적 효용성만 따지면 참으로 낮은 수준”이라며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실토했다. 노웅래 의원도 “사드를 배치하고 말고는 우리가 결정할 문제인데, 주권국가로서 무책임한 것”이라고 정부를 겨냥했다. 사드 배치가 끝난 후 열린 뒷북 청문회라고 비난 받았지만, 사드 배치에 여당도 반대 기류가 많음을 드러낸 것이다.

정상덕 원불교 교무/우철훈 선임기자

정상덕 원불교 교무/우철훈 선임기자

■“생명은 평화의 땅을 벗어났다”

사드 배치를 가장 반대한 사람은 경북 성주군민이었을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원불교도 사드 배치에 반발했다. 이곳에 성지가 있는 원불교는 ‘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저지투쟁을 벌였다. 그 비대위 교육위원장이 정상덕 교무(55)다. 원불교에서 교무는 기독교의 목사와 같다. 그는 평화일기를 쓴다. 그는 사드가 배치되던 그날 ‘2017년 9월 7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새벽, 평화의 핏줄은 끊어졌다…. 자유와 평등, 평화는 숨을 몰아쉬고 헐떡이며 길바닥에 쓰러졌다’고 기록했다.

‘작년 10월부터 원불교 차원에서 비대위를 조직해 총체적으로 사드 배치 반대투쟁을 했다. 9월 6일 성주 소성리 현장에서 오전 9시40분쯤 천주교 신부님의 부탁으로 미사 강론을 했는데 강론을 마칠 때 경찰이 작전을 시작했다. 저항하는 500여명의 시민을 다 끌어내고, 다음에는 레커차를 동원해 도로를 막은 차를 들어냈다. 차량 밑에 드러누워 저항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차량 2대를 서로 용접해 도로를 막아놓은 차량을 끌어내는 데 2시간 정도 걸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사드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는 평화일기에서 ‘평화는 지쳤고, 인권은 목이 메고, 생명은 평화의 땅을 벗어났다’면서 ‘군사 자본으로 전쟁을 일으켜야 사는 미국과 사드는 이제 이 땅을 떠나야 한다’고 기록했다.

-정산종사 생가가 있는 소성리는 원불교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원불교 창시자이신 소태산 대종사가 전남 영광 분이다. 대종사의 원불교 완성은 직접 제자인 정산종사를 만남으로써 완성된다. 창시자가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면을 얘기했다면, 정산종사는 창시자의 삶의 역사를 다 기록했고, 원불교 이름도 정산종사가 지었다.”

-기독교로 비유를 하면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 정도인가.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예수 탄생 성지라면, 소성리 성지는 로마의 성베드로성당쯤으로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 원불교는 성지가 다섯 군데 있다. 첫 번째가 교주가 태어난 영광, 두 번째가 2대 교주가 태어난 이곳 성주다. 세 번째가 원불교 본부가 있는 전북 익산, 네 번째가 첫 제자를 가르친 전북 진안 만덕산, 그리고 다섯 번째가 교주가 경전을 쓴 전북 변산이다. 이곳 성주는 2대 교주가 태어나 18세까지 사신 곳이다.”

-정산종사 탄생지는 사드가 배치된 골프장에서 2㎞ 떨어져 있다.

“정산종사는 일찍이 도에 뜻이 있어 이 일대를 다니며 기도했다. 정산종사는 골프장이 있는 산을 넘어 김천역에 가서 익산 대종사에게 간다. 원불교에서는 이를 구도의 길로 삼고, 교무라면 영광스럽게 가는 길이다. 스승님이 평화를 염원하며 걸었던 그 길이다.”

대화는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2명의 원불교 교무가 광화문광장에서 17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고, 가톨릭 신자인 조영삼씨가 사드 배치에 분노해 분신 자살했다. 정 교무도 조씨의 장례식에 장례위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원불교에서 조씨의 49재를 치러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씨의 분신 소식은 진보언론에서조차 전하지 않았다. 그만큼 사드 배치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무뎌진 것일까.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은 안보 불안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분단병이라고 하는데,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두려워한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밖에 되지 않아 ‘봐주자’는 막연한 기대심리도 있다. 안보불안과 기대심리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사드와 문재인의 사드를 달리 봐야 하나.

“근본적으로 같다.”

-원불교 대종사는 ‘끝까지 중단 말고 결과를 내라’고 했다. 앞으로 어쩔 것인가.

“(사드를) 뽑아버려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드의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다. …군사·과학적으로 사드의 역할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안보 지상주의자들과 미국은 더 비싼 무기를 또 사고 팔려고 할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사드가 한국 방위가 아닌 중국을 들여다보기 위한 엑스밴드레이더를 놓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을 다 알지 않나.”

-(좀 잔인한 질문이다) 그 지역이 기독교나 불교 성지였다면 사드를 설치했을까.

“이미 공개된 얘기지만 사드는 원래 왜관에 설치하려 했다. 그런데 거기에 교황청 직할 베네딕토수도원이 있다. 내부적으로 엄청나게 반대했다고 천주교 신부들이 다 얘기해준다. 그래서 성주시내에서 2㎞ 떨어진 방공포대에 설치하려 했는데 부지가 좁았다. 국방부 사람들이 그러더라. 사전에 이곳에 천연기념물이나 유적지가 있나 등 다 조사했는데 원불교 성지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원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미약했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하지만 원불교가 할 수 있는 일은 항의·연대·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교무는 자신의 카페에 5~6년 전부터 간간이 평화일기를 썼고 사드 문제가 본격화된 4월부터는 매일 썼다.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쓰고 있는데 잘 쓰는 글이다. 대학원에서 평화학을 전공한 것도 이론적 뒷받침이 됐다.

지난해 9월 원불교 정상덕 교무 등이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사드 배치 반대 기도회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지난해 9월 원불교 정상덕 교무 등이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사드 배치 반대 기도회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사드문제 볼 때 문재인 정부 의문”

사실 그는 누구보다 문재인 지지자였다. 평소 평화운동·통일운동을 통해 누구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 사드 배치를 절감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지도자는 가장 먼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드 문제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의문스럽고,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6·15선언을 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랬다. 그때도 북한은 첫 핵실험을 했고, 햇볕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이 빗발쳤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그것은 북·미 협상용”이라며 햇볕정책을 중단하지 않았다. 정 교무는 “그때 미국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비난했고, 여론의 70%가 북한을 지원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한반도 전쟁은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에 비해 평화에 대한 학습과 신념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하면서 원불교 내에서 오래전부터 평화운동·통일운동을 주동했다. 그의 사드 반대운동은 평화운동의 한 방법이다. 그는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은 쌍둥이 같은 것으로 평화가 원칙이라면 통일은 그 방법”이라며 “평화가 지구촌 전체가 사는 힘이면 통일은 남북이 사는 에너지”라고 규정했다. 한반도에서 통일을 빼고 평화를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평화와 통일운동을 강조하는 것은 원불교의 교리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 소신인가.

“원불교는 일원상(동그란 원)의 진리를 추종하는 종교다. 세계와 인류는 한 기운으로 연결되고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물질의 욕심과 정치권력 욕망 때문에 이 평화가 깨졌다. 태초의 은혜적 평화관계로 돌아가자는 것이 원불교다. 다 교리가 뒷받침하는 얘기다.”

■“정여립의 난과 동학농민운동이 나의 뿌리”

그는 평화운동 말고도 다양한 사회참여를 주도한다. 사형폐지범종교협의회 공동대표(1988)를 지내고, 원불교 인권위원회를 만들고(2003),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2013)은 물론 자유언론실천재단 발기인(2014)으로 언론민주화까지 ‘참견’한다.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2001년 만든 (사)‘평화의 친구들’이다. 미얀마, 캄보디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오키나와 등 분쟁지역을 다니며 구호활동과 평화운동을 하는 단체다. 물론 북한도 여러 차례 갔다.

그는 아예 원불교 사회개혁교무단장(2007)으로 원불교의 사회참여를 전담하는 기구를 맡기도 했다. 그가 원불교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이유는 소년원 지도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린아이들의 범죄는 바로 고장난 사회구조 때문임을 절감한 것이다. 다행히 원불교 교리도 사회참여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원불교 교리에 선교를 위한 교당과 교육기관, 그리고 자선기관 이 세 방면을 고루하라고 돼 있다. 그래서 원불교는 600개 교당이 있고, 100개 이상의 복지기관, 그리고 대학에서부터 대안학교까지 전국적으로 많은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가 교당(교회)에 치중하는 것에 비해 원불교는 사회복지와 교육에 적극적이다.”

정 교무는 1963년 익산에서 태어나 82년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 원불교 교당에서 감화를 받고 원불교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독한’ 전라도 사투리를 마구 쓴다. 그는 “고향 전주(전북) 정여립의 난과 동학농민운동 저항정신이 나의 뿌리”라고 말한다. 기자의 ‘반골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반골주의자가 아니라 사실주의자”라며 “맥없이 복종하는 삶이 아니라 정의를 좇는 정신을 중시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원불교의 교리에 대해 원불교의 ‘원’은 일원상의 진리인 궁극적인 목표를 의미하고, ‘불’은 그 진리를 깨우친다는 의미이며, ‘교’는 가르친다는 의미로 결국 일원상의 진리를 깨우치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공회대 대학원을 다니고, 천주교 성당에서 강론도 하고 조계종 불교 행사에도 참여한다. 기독교 10계명 중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 번째 계율에 비추어 원불교는 매우 자유스런 종교로 보인다. 그는 “원불교 3대 대산종사는 ‘인류 전쟁의 절반은 종교전쟁으로, 모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라’고 했다”면서 “원불교는 다른 종교와의 교류·협력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교단 내에서 ‘좌파 교무’, 심지어 ‘빨갱이 교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남쪽이냐 북쪽이냐, 진보냐 보수냐, 자유한국당이냐 민주당이냐, 그런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실적 훈련법, 즉 규정된 틀이 아닌 오늘 벌어지는 사실을 중요시하라고 하셨다. 종교에 주목하지 말고 진리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종교는 하나의 길을 안내할 뿐 목적은 아니다. 목적은 진리이고, 진리는 모두가 잘사는 것이다. 나는 종교에 속해 있지만 종교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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