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평양, 비가 내린다”···남북 평화 바로미터 ‘핫라인’의 역사

허진무 기자
지난 1월3일 오후 3시34분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연락사무소 ‘남북직통전화’를 통해 남측 연락관이 북측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지난 1월3일 오후 3시34분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연락사무소 ‘남북직통전화’를 통해 남측 연락관이 북측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평양입니다.” “여기는 청와대입니다. 잘 들립니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남북직통전화)이 20일 개통됐습니다. 이날 개통된 핫라인은 남측 청와대와 북측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회선으로 구체적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남북 정상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핫라인이 개통되는 것은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남북 합의로 연결된 핫라인은 모두 48개 회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 5회선이 판문점 남쪽 자유의집과 북쪽 판문각을 연결하는 남북연락사무소간 직통전화입니다. 음성 송수신용 회선이 2개, 팩스 송수신용 회선이 1개, 예비 회선이 2개입니다. 이 핫라인은 남북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은 존재입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이 핫라인이 어김없이 끊겼습니다. 판문점 핫라인 단절은 6차례인데 모두 북한이 끊었습니다.

핫라인은 대부분 판문점을 지납니다. 남북연락사무소간 5회선을 포함해 서울~평양간 회담지원용 21회선, 인천~평양간 항공관제용 2회선, 서울~평양간 해사당국용 2회선, 서울~개성간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용 3회선 등 33회선이 있습니다. 판문점을 지나지 않는 회선도 15회선이 있습니다. 남북 군 상황실을 연결하는 직통전화 9회선, 남북열차의 운행을 위한 직통전화 6회선 등입니다. 각각 회선이 언제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보안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71년 9월22일자 경향신문 1면

1971년 9월22일자 경향신문 1면

■핫라인 설치(1971년 9월22일)

핫라인은 1971년 9월 처음으로 설치됐습니다. 그해 9월20일 1차 남북적십자예비회담에서 남측 대한적십자사는 원활한 회담을 위해 판문점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직통전화를 마련하자고 북측에 제안했습니다. 이틀 뒤인 22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집과 판문각에 상설 연락사무소가 설치돼 직통전화 2개 회선이 열렸습니다.

이날 직통전화를 통해 남측은 “대한적십자 회담연락사무소를 자유의집에 마련하고 22일부터 정식운영을 개시한다. 근무시간은 평일은 상오 9시부터 하오 4시까지, 토요일은 상오 9시부터 낮 12시까지고 휴일은 근무하지 않는다”, 북측은 “이 직통전화가 회담을 성공적으로 진행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26년간이나 끊겨졌던 남북간의 연결을 다시 이루고 갈라진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위업에 기여하기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후 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열리게 되자 서울~평양간 핫라인은 1972년 8월26일 22개 회선으로 늘어났습니다. 앞서 그해 4월29일 남북고위급회담으로 설치된 서울~평양간 1개 회선을 더해 핫라인은 모두 23개 회선이 됐습니다. 남측 기자들도 처음 평양을 방문했는데 1972년 8월30일자 조선일보의 ‘여기는 평양, 비가 내린다’는 유명한 1면 톱기사 제목입니다. 이 핫라인은 5년이 지속되지 못하고 닫혔습니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사천교(돌아오지 않는 다리) 인근에서 유엔군사령부 경비병 10여명을 북한군 30여명이 도끼로 살해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1980년 2월6일자 경향신문 1면

1980년 2월6일자 경향신문 1면

■1차 재개통(1980년 2월6일)

핫라인은 1980년 2월6일 남북총리회담 개최를 위한 제1차 실무대표 접촉을 위해 재개통됐습니다. 북한은 “북과 남의 당국자 회담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고위당국자 회담도 성숙시켜 나갈 용의가 있다”라며 남북총리회담을 제의해 왔습니다. 남북은 그해 2월6일부터 8월20일까지 10차례에 걸쳐 실무접촉을 진행했지만 회담의 명칭, 장소, 의제 등에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해 9월 북한이 방송을 통해 일방적으로 회담 중단을 선언해 핫라인은 7개월만에 다시 닫혔습니다.

1984년 9월29일자 경향신문 3면

1984년 9월29일자 경향신문 3면

■2차 재개통(1984년 9월29일)

1984년 9월 한국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북한은 수해지원물자를 보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역대 정권 최초로 북한의 지원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달 29일 남북 양측 적십자간 수재물자 인도를 위해 핫라인이 다시 열렸고 11월15일 남북경제회담이 시작되면서 경제회담 전용회선이 추가 개통됐습니다. 1997년 10월9일에는 남북한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합의에 따라 대구~평양 간 항공관제용 2개 회선이 추가로 설치됐습니다. 이후 인천국제공항이 만들어지면서 대구 대신 인천이 2001년 9월18일 평양 순안공항 관제소와 연결됐습니다. 이 회선은 2010년 5월24일 대북제재조치로 10월18일까지 몇 달 동안 단절됐을 뿐 중단된 적이 없는 핫라인입니다. 다만 이 회선은 평양 비행정보구역을 지나는 비행기를 관제할 뿐 북한과의 연락회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2005년 8월12일 서울~평양 남북 해사당국간 2회선, 그해 11월1일에는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개설 공동준비단회의 합의에 따라 서울~개성간 3개 회선이 개통됐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33개 회선은 모두 판문점을 경유해 연결돼 있습니다. 적십자 연락사무소와는 별도로 1992년 5월 판문점에 설치된 남북 정부 간 연락사무소는 1996년 9월18일 북한 잠수정의 강릉 침투 사건이 일어나 끊어졌습니다. 이 회선은 2000년 7월31일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그해 8월14일 재개됐지만 이후 정부는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남북 정부 간 연락사무소와 적십자 연락사무소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9년 8월26일자 경향신문 1면

2009년 8월26일자 경향신문 1면

■3차 재개통(2009년 8월25일)

2008년 11월22일 제63차 유엔총회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인권 결의안 공동제안을 내자 북한은 다시 핫라인을 끊었습니다. 핫라인을 다시 이어준 사람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2009년 8월18일 김 대통령이 서거하자 북한이 21일부터 23일까지 조문 특사단을 보냈고 25일 핫라인이 다시 연결됐습니다. 잠시 녹았던 남북관계는 금방 꽁꽁 얼었습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벌어졌고 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자 5월24일 한국 정부는 대북제재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틀 후인 26일 북한은 “판문점 적십자 연락대표 사업 완전 중비와 모든 남북 간 통신연계를 단절한다”라고 통보하며 군 상황실 간 직통전화를 제외한 모든 핫라인을 끊었습니다.

2011년 1월13일자 경향신문 6면

2011년 1월13일자 경향신문 6면

■4차 재개통(2011년 1월12일)

2011년 1월5일 북한이 성명을 발표하며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제의하며 1월12일부터 남북 간 연락사무소 직통전화를 연결했습니다. 북한의 화해 신청에 한국 정부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를 강화하자 북한은 또 연결을 끊었습니다.

2013년 6월8일자 경향신문 1면

2013년 6월8일자 경향신문 1면

■5차 재개통(2013년 6월7일)

끊어진 핫라인은 3개월만인 2013년 6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해 4월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키 리졸브)에 반발해 개성공단 가동을 잠정 중단했지만 6월6일 6·15 공동선언 발표 13주년을 계기로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다음날인 7일 판문점 핫라인이 재가동됐습니다. 그해 9월 개성공단도 다시 열렸습니다.

2018년 1월4일자 경향신문 1면

2018년 1월4일자 경향신문 1면

■6차 재개통(2018년 1월3일)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자 그해 2월10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다음날 개성공단 폐쇄와 남측 인원 전원 추방으로 맞받으며 모든 직통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북한은 지난 1월3일 조선중앙TV를 통해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간 핫라인 복원을 예고하고 당일 남측에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핫라인을 다시 연결했습니다.

이날 오후 1시20분 조선중앙TV에 출연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평창올림픽 경기대회 대표단 파견 문제를 포함해 해당 개최와 관련한 문제들을 남측과 제때에 연계하도록 3월 15시(서울시간 오후 3시30분)부터 북남 사이에 판문점 연락통로를 개통할 데 대한 지시를 주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북측은 전화와 팩스가 제대로 가동되는지 점검했을 뿐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이어 9일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군 통신선의 복원도 알려왔습니다. 23개월만에 남과 북이 다시 연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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