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민주주의, 그 불안과 역설

이대근 논설고문

박근혜 정부 때 강점을 보여주었던 민주주의가 문재인 정부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상에서 생각은 광속으로 전파되고 공유된다. 박근혜 정부 말기 시민은 초연결성이 낳은 속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경험했다. 서로의 생각이 같다는 걸 알고, 그걸 하나로 모을 수 있음을 확인하고, 집단적 의사를 표출하는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촛불집회→탄핵→조기 대선이라는, 압축적이면서도 순조로운 전환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승리였고, 속도의 승리였다. 시민은 이 속도의 쾌감을 적폐청산에서 다시 맛보았다. 시민이 원하면 새 정부는 지체 없이 이행했다. 요구-해결의 빠른 민주주의였다.

[이대근 칼럼]실시간 민주주의, 그 불안과 역설

하나의 속도로 달리던 시민과 정부는 적폐청산 정국 이후 어긋나기 시작했다. 시민의 기대 속도는 그대로지만, 정부의 반응 속도는 그렇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불타는 BMW를 TV로 지켜본 시민은 정부가 당장 달려가 불 끄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고된 쓰레기 대란을 미리 막지 못했으면 쓰레기가 쌓일 때라도 즉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부는 더 이상 빠르지 않다.

정부가 모든 부문에서 느리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빠르게 나섰다. 하지만 집값이 더 빨리 뛰었다. 최저임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늦지 않게 대처했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더 올려야 한다고, 자영업자는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엉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요구 즉시 해결’의 속 시원한 국정은 과거의 일처럼 되었다.

빠른 행동이 필요한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다. 정부만이 아니라, 국회, 정당, 이해 당사자, 시민이 협력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것이 있다. 상황에 따른 대응보다 구조적 접근을 해야 할 것이 있다.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장기 효과를 기대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개혁과제의 상당수가 그런 성격의 것이다. 그런데도 시민은 성마르게 행동하는 것 같다. 정부 대응 하나하나에 즉자적 반응을 한다.

시민-정부 간 속도 경쟁에는 청와대도 책임이 있다. 청와대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 청원을 설치, 즉각 해결의 욕구를 부추기고 집단 이기주의를 자극했다. 청와대가 가속 엔진을 단 것이다. 자연히 요구-해결의 차이는 더 커졌다. 속도에 올라탄 정부가 속도에 치이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야당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야당은 끝없이 ‘즉시 폐기, 바로 대책’을 다그친다. 이렇게 시민, 청와대, 야당이 가속페달만 밟으면 정부 대응은 느릴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속도는 상대적이다. 실은 정부가 느린 게 아니라, 정부 밖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반응 속도가 늦으면 지지율이 추락하고 개혁 동력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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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민주주의를 목격하고 상찬했던 알렉시스 토크빌도 조바심, 가벼움, 표피적인 일에만 관심 갖는 태도를 발견하고 걱정했다. 민주주의가 대중의 감정적, 즉흥적 판단에 휩쓸려 신속한 결정은 해도 신중한 결정은 못하는 걸 우려한 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도 다르지 않다. 그게 민주주의의 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관리하며 토론과 숙의로 근본 문제를 풀고 삶의 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것 또한 민주주의다. 그런데 지금 시민-정부 간 속도 경쟁이 민주주의에 내재한 불안과 위험을 키우고 있는데도 모두 지켜보기만 한다. 이러다간 욕망의 폭발로 과잉 민주주의가 되거나, 냉소주의가 넘쳐 과소 민주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아니면, 과잉 민주주의와 과소 민주주의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불안정성을 키울 수도 있다.

시민-청와대 간 빠른 민주주의는 착시다. 국회, 정당이라는 제도를 배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배제가 잠시 동안은 가능할 수 있지만 계속될 수는 없다. 시민-청와대 사이에는 국회, 정당 외에 관료조직, 시민사회도 있다. 이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양한 이해와 요구, 관점이 이 조절 장치를 통과하며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썼다. “민주국가들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칭얼대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데 그 까닭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책임을 떠맡을 때 어른이 된다. 그런데 누구에게서 배우는가. 군주국은 아버지 같은 인물이 지배한다. 민주주의에는 부모도 선생도 없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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