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환상인가 혁신인가

임지선 기자

프롤로그

[커버스토리]블록체인, 환상인가 혁신인가

1년 전 한국은 블록체인 기술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통화 열풍을 앓았다. 외신은 한국을 ‘그라운드 제로(폭발 지점)’라고 표현했다. 블록체인은 인터넷의 뒤를 이어 세상을 바꿀 혁명적 기술이라 평가됐고, 가상통화는 새로운 부를 축적해줄 수단으로 인식됐다.

1년이 지난 2019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안겨줄 것 같았던 비트코인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추락했다. 개념조차 와닿지 않아 모호했던 블록체인은 일부나마 기술을 현실화하고 있다.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이 사기라고 주장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닷컴 버블’처럼 인터넷 초창기 시절을 지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시선을 잠시 과거로 돌려보자.

1970년대 사무실 한 공간을 다 차지할 정도로 초대형 컴퓨터가 있던 시절, 책상 위에 올려놓고 쓰는 데스크톱 PC(퍼스널 컴퓨터)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왜 굳이 컴퓨터를 책상에 올려놔야 하죠?”라는 질문을 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노트북 컴퓨터가 대세이던 시절,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결합한 PDA(개인용 정보 단말기)와 스마트폰 개발자들은 “굳이 걸어다니면서까지 컴퓨터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블록체인과 가상통화를 앞에 두고 우리는 묻는다. 왜 블록체인인가. 신뢰를 창출해내는 획기적 기술인가.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 질문에 누구도 쉽사리 답하기 힘들다. 1990년대를 살면서 2000년대 스마트폰이 가져온 모바일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기술 하나로 하루 만에 뒤집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술 발전을 천천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혁명’이 ‘혁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투기 열풍이 잦아들고 냉정을 찾아가는 지금이야말로 성큼 다가온 블록체인과 가상통화가 무엇인지 들여다볼 때이다.

경향신문은 화려한 미사여구와 막연한 환상을 뛰어넘어 기초적인 수준이라도 블록체인이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 현장을 찾아나섰다. 블록체인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지 들여다봤다.

경향신문이 들여다본 블록체인의 활용 분야는 다양했다. 요르단 난민촌에서는 은행계좌 없이 블록체인을 통해 난민에게 지원금을 보냈다. 호주의 가정에서는 각자 모은 태양광 에너지를 블록체인 계량기와 거래 시스템을 통해 이웃과 주고받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항해 기업이 독점한 개인정보 통제권을 개인이 되찾는 ‘디코드(Decode·암호해독)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고, 호주의 플럭스(FLUX) 소수 정당은 블록체인 투표를 이용해 직접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블록체인과 가상통화 관련 프로젝트가 넘쳐나는 스위스 주크시에서는 블록체인과 가상통화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투기가 판치던 가상통화 광풍이 잦아든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도를 새로 설계해야 할지,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도 짚어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블록체인은 과연 미래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거래내역 장부를 여러 개로 분산 보관하는 ‘데이터 저장 기술’

블록체인은 장부에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여러 개에 나눠 똑같이 분산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블록’ ‘체인’ ‘분산’ ‘신뢰’ 등 4가지 핵심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보상으로 주어지는 가상통화까지 관련 개념을 간략히 정리했다. 아래 내용은 전명산의 <블록체인 거번먼트>와 마이클 J 케이시·폴 바냐의 <트루스머신> 책을 참고했다.

■ 블록 : 거래내역 등 여러 가지 정보가 담긴 저장소이다. 특정한 시간 동안 거래된 내역과 관련 정보를 묶어 하나의 파일로 만든 것이 블록이다.

■ 체인 : 블록은 서로 연결돼 있다. 예를 들어 100번째 블록을 만들 때는 99번째 블록의 정보를 섞어 암호화한다. 101번째 블록 역시 100번째 블록의 정보가 담긴다. 즉 99번이나 100번이나 101번이나 블록들은 서로 다른 파일이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 블록체인이란 서로 연결돼 있는 파일들의 묶음이다. 누군가 100번째 블록을 조작한다면 이는 앞뒤 블록의 정보와 다르기 때문에 조작된 파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블록체인 전체를 위·변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 분산 : 흔히 블록체인은 똑같은 장부가 분산돼 있다고 한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한 비유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똑같은 문서를 총 다섯 군데 분산해 보관했다. 5개 모두 진본이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이다.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컴퓨터에 똑같은 파일(블록)들이 보관된다. 어떤 한 컴퓨터에서 장부가 업데이트되면 동시에 다른 컴퓨터에서도 장부를 똑같이 업데이트한다.

■ 신뢰 : 블록체인의 구조 덕분에 참여자가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신뢰’이다. ‘진짜’ 장부가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져 있어 중개기관의 개입이나 조작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고, 중개자 개입 없이 개인끼리 거래가 가능해진다.

■ 가상통화 : 분산형 시스템에 참여해 암호화된 블록을 새로 만들어낸 사람을 채굴자라고 하며 이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이다. 모든 대중에게 열려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채굴이라는 시스템과 보상을 주기 위해 가상통화가 필요하지만 모든 블록체인에 가상통화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한정된 사람들만 사용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가상통화가 필수적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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