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파이

1회. 국회 담장 사이 목소리

임아영 기자

‘이슈파이’는 평범해 보이는 현상을 ‘다르게, 오래’ 들여다보는 콘텐츠입니다. 파이를 쪼개먹듯 이슈를 쪼개보겠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일상에 숨어있는 이슈를 뜯어보겠습니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제가 대신 들여다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국회 정론관이라는 공간에 대해 아시나요?

국회 정론관 현판.

국회 정론관 현판.

정론관은 국회 기자회견장과 기자들이 일하는 기자실을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TV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곳을 상상하시면 쉽습니다. 정론관은 국회 본관 1층에 있는데 171호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는 하루종일 당의 입장, 법안 취지, 주요 이슈에 대해 설명하려는 기자회견이 30분, 1시간 단위로 이어집니다. 정론관 기자회견장은 기자들이 국회의원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곳이고 또 국회의원들이 언론과 국민을 만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2월 하루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지켜봤습니다. 경기도 성남에서도, 경상남도 포항에서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올라왔을까요? 이윤희 성남시정감시연대 대표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방이니까 메이저 (언론)은 여기서 와야 (보도)되니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성남시청에서 하면 메이저가 오겠습니까. 입법을 다루는 민의의 전당에서 하려는 것입니다.” 박창호씨(포항 시민)은 말했습니다. “(지역서 기자회견을 해 봤는데) 지역신문에 한 줄도 안 나요.” 국회 정론관은 그만큼 주목도가 높습니다. 기자들이 상주해 있기도 하고요.

국회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국회 출입기자는 3월 기준으로 490여개 매체 1623명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출입기자를 둔 곳이 바로 국회입니다. 그만큼 민의의 전당 국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국회 정론관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일까요?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론(正論)은 ‘정당하고 이치에 합당한 의견이나 주장’이라는 뜻입니다. 정당하고 이치에 합당한 의견, 주장을 누구나 말할 수 있을까요?

정론관 기자회견장은 국회의원이나 정당 대변인 등의 명의로 사전 예약해야 사용 가능합니다. 다시 얘기하면 사전 예약하지 않은 사람은 국회 정론관에 들어와서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정론관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

정론관을 예약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엽니다. 아침부터 정문 앞은 북적입니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짓밟은 개악법안 철회하라! 임이자·한정애 국회의원 개악법안 발의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추운 날씨였는데요. “날씨도 추운데 기자분들 오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말이 무색하게 정론관보다는 현저하게 취재하는 기자 숫자가 적었습니다.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취재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취재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기자회견 시작 전 사람들은 플래카드를 바닥에 깔고 손팻말을 준비했습니다. 10시 정각이 되자 사회자가 “대열에 맞춰 서 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피켓 든 사람은 앞줄, 한 글자 피켓은 뒤에 서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참석자들은 두 줄로 피켓을 들고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것을 보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좋게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처럼 과대포장하고 있습니다.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고노동자들을 죽이는, 조용히 일이나 하라는 취지의 법안입니다. 노동 3권을 부정하는 법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특고노동자들 대표들이 오늘 기자회견 통해서 모든 것을 알리고 지금부터의 투쟁 방향을 잡아나갈 것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정말 비참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문재인 정부 2년 다 되어 가는데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고…”

절절한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임 의원 법안은 “특고노동자들의 노조법, 근로기준법 적용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법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사안에 대한 생각은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을 한 지 한 달 넘게 지났지만 특고노동자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잠자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기에 민생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한 국회가 가동되어야 할텐데…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한숨 날 지경입니다.”

■‘보도사진 한 장으로 담기기 위한 노력’

기자회견을 해도 보도되지 않으면 허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사진 한 장에 담길 수 있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이날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도 기다란 망치 2개가 보였는데요. 망치의 사용 용도는 마지막에 드러났습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주최 측은 ‘노동자성’, ‘노조 활동’이라 적힌 검정색 판지를 망치로 내리쳤습니다. 사회자가 “포즈를 취해주십시오. 기자분들은 사진을 찍어주십시오”라고 하자 참석자들은 ‘하나 둘 셋’을 셌고 망치로 박살냈습니다.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된 망치.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된 망치.

국회 정문에서 50번 넘게 기자회견을 했다는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퍼포먼스가 사진으로 나가기 때문에 한 컷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기획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최근 가장 핫했던(많이 보도됐던) 퍼포먼스는 작년 연말에 ‘유치원 3법 통과’를 특정 정당이 반대해서 그 당 당사 앞에서 분노한 국민들 목소리 들으라는 취지로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팔을 사서 불을 내뿜는 공룡 모습을 했던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5일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앞에서 참석자들이 자유한국당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지난해 12월 5일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앞에서 참석자들이 자유한국당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기자들이 취재하지 않는 기자회견도 많습니다. “보통 기자회견을 10번 정도 하면 기자들이 많이 취재하는 경우는 2~3번 정도예요. 거의 대부분은 사실 기자분들 없이 기자회견 진행되는 경우 많이 있고요.” 기자회견을 했는데 기자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허탈하지 않을까요. “기자회견도 성격에 따라 언론을 통해 많이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있고 항의가 중요한 것도 있어요. 집회에 가까운 형태의 기자회견이죠. 그럼에도 보도가 많이 되는 게 중요하죠. 시민사회단체의 고민은 ‘기자들이 (어떻게 하면) 현장에 와서 취재하도록 할까’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저희의 목소리를 알게 되는 거니까요.”

국회 앞은 국회와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김주호 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통 정문에서 할 때는 국회의원실하고 공동으로 하기보다는 시민사회단체 자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국회에 요구하기 위해서 하는 기자회견이 많아요. 국회를 비판하는 형태의 기자회견이죠.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국회를 비판하는 것은 하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의원들은 시민사회단체에 자기 당에 대해 비판할 목소리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정론관에서 같이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훌륭한 의원이죠.”

■‘국회 정론관은 누구를 대변하나요’

같은 시각 국회 안에서도 기자회견이 한창입니다. 국회 기자회견장은 정치적 스펙트럼도 넓습니다. 이날 오전10시30분 정론관 첫 기자회견은 대한애국당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대한애국당 인지연 수석대변인은 마이크를 잡고 ‘박근혜 대통령 죽이기에 동참한 공범들은 이제라도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다소 강렬한 주장인데요. 인지연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과반수의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들의 의지를 짓밟는 것”이라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서 박근혜 대통령 죽이기에 적극적으로 합세했던 배신세력, 가짜보수우파들의 다시 한번 박근혜 대통령 죽이기로 작정하고 나섰다”는 논평을 낭독했습니다.

대한애국당은 평균적으로 하루 두 번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습니다. 조원진 당대표가 원내 의원이죠. 1명의 국회의원이 있으니 정론관에서 자유롭고 당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몇 명일까요? 최근 근로자처럼 일하지만 법적으로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수가 220만명에 이른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회에서 특고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몇 명일까요? 문득 씁쓸해졌습니다. 이날 하루종일 정론관에서는 8차례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 기자회견의 목소리들은 얼마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까요?

대한애국당 인지연 대변인이 기자회견 중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대한애국당 인지연 대변인이 기자회견 중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정론관에 대한 공간의 상징성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평소에 많은 현안들에 대해서 언론을 통해서 국민께 자기 의사를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장이 국회에 있는 정론관이죠.”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의 의견이나 어떤 의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죠. 페이스북에 올리거나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아니면 기자들에게 문자를 전하를 방법이 있는데요.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그만큼 좀더 강조하고 싶을 때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당 의원들이 정론관에 많이 서죠. 기사 한 줄 나오지 않고 방송 현안에도 나올 수 없는 소외된 분들이 정의당에 찾아옵니다. 대부분 큰 당에 문을 다 두드리고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벼랑끝 심정으로 오는 겁니다.”

■“왜 정론관은 국회의원만 쓸 수 있는 걸까요?”

그럼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정론관 기자회견장은 국회의원이나 정당 대변인 등의 명의로 사전 예약해야 사용 가능합니다. 이것은 특권 아닐까요? 국회 사무처에 물었습니다.

기자 : 국회의원이 아니면 기자회견하기 어렵나요?
사무처 관계자 : 사용권자는 국회의원이고 그외에도 몇몇가지 규정이 있긴 한데 다 불러드리기 곤란합니다.
기자 : 기자회견 운영 규정이 있나요?
사무처 관계자 : 있습니다. 국회 사무처 내부 지침, 행정법적으로 내규라고 합니다. 내부 지침이라 게시하는 것은 아니고 받아보고 싶으면 정보공개청구하셔야 합니다.
기자 : 국회 운영지침을 국회 홈페이지에서 볼 순 없나요?
사무처 관계자 : 굳이 일반인이 알 필요 없는 내용이고 지침이라 세부적인 것까지는 국회 홈페이지에 게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운영지침이 뭐기에 정보공개청구까지 해야 볼 수 있을까요?

[이슈파이] 1회. 국회 담장 사이 목소리

‘2회.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 하는 법’으로 이어집니다. [이슈파이] 2회. 국회에서 기자회견 하는 법

[이슈파이] 1회. 국회 담장 사이 목소리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