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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성도 임신중지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재덕 기자
어느 여성도 임신중지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읽씹뉴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낙태죄’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성이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했을 때 1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는 ‘자기낙태죄’ 규정과 의사 등이 동의를 얻어 낙태 시술을 하면 2년 이하 징역 등에 처하는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헌법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겁니다.

헌재는 국회에 2020년 말까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해달라고 했고요.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형법의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 낙태가 가능한 사유를 강간·근친상간·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때 등 5가지로 제한한 모자보건법 14조는 효력을 잃게 됩니다. 헌재 결정이 났지만 이제 정말 논의해야할 일들이 산적해있습니다.

복잡한 이슈의 행간을 분석하고 ‘읽어주고 씹어주는’ <읽씹뉴스>. 이번에는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들어봤습니다.

■Q. 임신중지(낙태)를 한 여성들, 어떤 선택을 하던간에 그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잖아요?

“사실 (임신중지가) 1000건이면 (임신중지 사유가) 1000가지가 될 정도로 다들 다른 사연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원치않은, 예상치 못한 임신이 굉장히 흔할 수 밖에 없어서 전세계적으로 1년에 3억3000만건 정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임신에서 고민하시게 되고, 한 절반 정도는 임신중지를 결정하게 되고, 절반 정도는 출산을 결정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부모가 되는 것을 결심하는 일도 굉장히 큰 일이고요. 특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은요. 또 임신중지를 결정해서 본인과 연결돼있던 생명체를 떠나보내는 과정도 굉장히 큰 결정이거든요. 여성이 무슨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은 본인의 몸, 미래, 삶, 지금 돌봐야하는 가족들, 파트너와의 관계 이런 것들을 다 고민해서 내리는 결정이기 때문에 여성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해야된다고 믿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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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 성폭력에 의해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임신중지를 하게 된 분이 나중에 난임으로 고생하다가 결국에 임신에 성공했어요. 염색체 이상 위험성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도 결국 양수검사 하지 않고 출산 결정하셨어요. 이 여성의 평생의 삶의 과정에서 임신 중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출산만 있는 것도 아니죠. 상황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결정도 그 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인데 우리는 대개 ‘프로라이프’ 아니면 ‘프로초이스’ 생각만하는 거죠. 저는 어떤 선택을 하던 의료인이 조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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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보건법은 굉장히 좁게 임신중지가 가능한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었거든요. 16만건 정도가 한해 있었다는 2011년 자료를 보면 16만건 중에 5% 정도만이 합법적인 사유 안에서 이뤄진 케이스였고, 95%가 그 이외의 사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너무 좁게 설정해놨어요. 아무리 따져봐도 지금의 모자보건법에서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돌려보냈던 케이스도 있었고요. 적어도 안전한 방법, 예를 들면 ‘소파술’ 보다는 ‘흡입술’ 하는 병원을 찾으시고 약물적인 방법들에 대한 부분들도 브로커 통하는 방법은 믿을 수 없고 이런 약물에 대한 정보들도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대한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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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으로 (임신중지를) 받지 못하신 분들은 암시장에 의존하시게 되는데요. 미페프리스톤(미프진)이라고 하는 유산유도약 약물이 개발된지 30년이 넘었고 67개국서 사용되고 있는데 약이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아서 브로커를 통해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어요. 이런 걸 사서 드시고 불완전 유산 돼서 오시는 분도 있었고,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아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용을 벌려고 하다가 시간이 더 지체돼서 더 비용이 높아지는 상황에 처하는 이런 청소년도 있었어요. 불법이라는 상황하에서 의료인도 되게 자유로울수 없고 위축되기 때문에 각서를 쓰거나, 현금으로 내라고 하거나, 무슨 합병증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사실 의사와 환자 관계라고 할 수 없는 굉장히 왜곡된 의료서비스가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Q.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의과대학에서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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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에 대해서 의과대학 교육과정이나, 레지던트 수련과정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제가 학생때 배웠던 거는 의료 윤리시간에 지금처럼 프로라이프, 프로초이스 반반 나눠서 토론시켰던 게 다였고요. 술기나 지식 부분은 사실 산부인과 수업 과정 중에 일부 들어있긴 하지만 ‘이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불법이니까 너네는 몰라도 돼’라고 넘어가거든요. 레지던트 때도 있긴 하지만 사실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받으러 대학병원 오지는 않잖습니까. 합법적인 케이스는 굉장히 극소수거든요. 굉장히 극소수로 보고 접할 기회가 많이 없게 되기 때문에 (의사들도) 자연스럽게 임신중지에 대해 터부라던지, 어떤 특정 집단, 특정 상황에서만 하는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거 같습니다.”

■Q. 임신중지 가능 시기와 요건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원칙을 둬야 할까요?

“더 후기로 임신중지를 하게 되시는 분들은 그만큼 더 절박한 상황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임신 지속이 건강에, 생명에 위험한 상황이라던지, 지적장애인이 성폭력 당한 걸 모르고 있다가 굉장히 늦게서야, 임신 자각을 못하고 있다가 발견한다던지, 임신한 청소년이 부모에게 말도 못하고 계속 주수가 늦어지게 된다던지, 치명적인 태아의 이상이 정밀초음파를 본 이후에나 발견된다던지... 그렇지만 중요한 원칙을 세워야 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떤 제도를 하고 있는지를 다 고려해서 생각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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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나라에서는 요청만으로 가능한 시기, 다시말해 임신중지가 여성의 몸에 위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요청만으로도 가능한 시기를 보통 임신 12~14주인 1분기로 잡고 있고요. 그 이후에는 제한적인 이유로 가능한 시기, 그리고 특별한 사유에만 가능한 시기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기를 나누는 기준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을 확보할 수 있는지 의료적인 기준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임신중지 사유라던지 주수 제한, 그 주수를 어겼을 때 어떻게 처벌을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18주까지만 여성의 요청에 의해서 임신중지가 가능하고, 그 이후에는 태아의 생존력이 있는 시기까지가 22주라고 보고, 그 시기에는 의사, 사회복지가, 윤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꾸려져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방법을 더 권하는지 이런 정보들을 여성에게 제공하고, 충분히 상의를 하고 상담을 해서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별 임신중단 기한 방식

영국: 임신한 여성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위해를 끼치는 경우 24주 이내. 태아의 심각한 장애의 위험성이나 임신한 여성의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위해가 있는 경우 주수에 상관없이.

이탈리아: 경제, 가족 여건, 건강, 개인적 이유 아래 모든 낙태 90일 이내. 여성의 생명에 위협이나 태아의 기형이 여성의 정신적·육체적 건강 위협 시 24주 이내.

노르웨이: 여성의 요구만으로 모든 낙태 12주 이내. 임신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태아에게 심각한 합병층을 초래,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경우 18주 이내. 그 이상은 특수한 경우 의학적인 판단으로만 가능.

※출처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Q. 어떤 의사들은 낙태가 자신들의 신념에 반한다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고 합니다.

“세계산부인과 학회나,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임신중지가 의료서비스이고, 보건 의료 체계라고 오래전부터 천명해오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 Safe Abortion Guideline이란 책자를 만들었고요. 이 책자에 따르면, 전체 임신의 절반이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고 그중 절반이 중지로 끝나게 됩니다. 임신중지는 어떤 주수에 시행되더라도 적절하게만, 안전하게 수행되기만 한다면 만삭분만보다 안전한 시술입니다. 그런데 임신중절을 받는 여성의 절반이 숙련되지 않은 시술자나 부적절한 환경에서 위험한 임신중지 시술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곳은 모성사망률이나 합병증 유병율이 현저하게 떨어졌고 동시에 임신중지 건수도 더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여성의 신체 자율성에 대한 존중과 안전하지 않은 인공임신중지를 예방할 의무를 고려했을 때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인의 의무이다’ 이렇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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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이나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서 본인이 시술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신 의사들도 있을겁니다. 신념의 자유는 국제인권법에서도 다 보장하고 있는 부분이고, 신념에 반한 수술을 억지로 시키지는 않아요. 다만 본인이 개인적 신념으로 (임신중지 시술을) 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의료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시술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의뢰 해야 하고, 잘못된 정보를 주면 안되고요. 응급상황에서는 거부권과 상관없이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해야겠지요. 사실 앞으로 제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의사의 시술 거부권을 법에 넣을 경우, 이런 조건들이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임신중지와 관련해 한국 사회가 논의해야할 것들이 많은데요. 이런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놓쳐선 안될 것들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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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문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이란 말이 들어간 게 굉장히 전향적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법 개정 혹은 입법 과정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해준다’는 건 낳지 않을 권리, 낙태할 권리만 의미하는 건 아니거든요. 어떻게 낳을 것인지, 언제 낳을 것인지, 낳을지 말지를 결정할 권리가 모두 다 포함돼 있는 거고,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고 피임 교육을 받을 권리, 또 피임을 합리적인 가격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면서 할 권리, 성폭력 당하지 않을 권리, 젠더 관계에서 평등이라든지, 국가로부터 재생산 관련 서비스를 받을 때 지원을 받을 권리 이런 것들이 다 포함돼 있는 게 재생산권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의료인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상담 프로토콜이라던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되겠고, 의료인 교육도 돼야겠죠. 임신중지 유도 약물도 도입해야하고, 할 일이 사실 한 두 개가 아닌 것 같습니다.”

■Q. 임신중지를 하셨거나, 하게 될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헌재 결정문에서 ‘여성의 몸은 불법이 아니고, 여성도 본인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건 여성은 ‘2등시민이 아니다’라는 말을 이제야 해준 거거든요. 역사를 돌아봤을 때 피임이 불법이던 시기도 있었고요. 응급 피임약이 불법이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 것처럼 임신중지에 대해서도 ‘임신중지가 불법이던 때가 있었어’라고 할 시기가 언젠가는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임신중지가 여성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임신중지를 둘러싼 사회적인 낙인, 관습, 편견 이런 것들이 여성을 힘들게 한다고 항상 생각해왔거든요. 더 안전하고 낙인이 없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임신중지를 받는 것. 이건 사실 임신중지뿐만 아니라 모든 재생산 관련 의료서비스, 출산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하고요. 피임을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신중지를 하셨던 분들이나 혹시 앞으로 하시게 될 분들도 과도한 죄책감이라던지, 걱정이라던지 염려, 이런 부분들을 조금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 [낙태죄, 그 너머를 이야기하다] 낙태죄 폐지 이후엔 병원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여전히 헌재 결정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에게 1974년 프랑스의 보건부 장관이었던 시몬 베유(1927~2017)가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프랑스 의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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