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남자다운’ 옷을 입고 ‘드랙’을 하는가

글 장은교·사진 강윤중 기자
드랙킹 아티스트 ‘아장맨’이 분장을 마치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아장맨은 인터뷰 때 아버지의 양복을 입었다. 어린 시절 집안을 혐오와 폭력의 세계로 물들였던 아버지를 ‘드랙’으로 연기하며 조금씩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고 아장맨은 말했다. 아장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두번의 드랙킹 콘테스트 무대를 기획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드랙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아장맨은 드랙 입문자들을 위한 튜토리얼 영상도 만들 계획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

드랙킹 아티스트 ‘아장맨’이 분장을 마치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아장맨은 인터뷰 때 아버지의 양복을 입었다. 어린 시절 집안을 혐오와 폭력의 세계로 물들였던 아버지를 ‘드랙’으로 연기하며 조금씩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고 아장맨은 말했다. 아장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두번의 드랙킹 콘테스트 무대를 기획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드랙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아장맨은 드랙 입문자들을 위한 튜토리얼 영상도 만들 계획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

일상에선 생물학적 여성 직장인
무대에선 남성을 연기하는 드랙킹

김원미와 아장맨은 한 사람인데
세상의 편견은 ‘둘’이라고 한다

 김원미씨(25·가명)는 무역회사에서 일한다. 회사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것이 그의 업무지만, 손님의 차접대도 자연스레 그가 맡는다. 딸 셋 중 막내인 그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 부모님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태극기집회에 나간다. 큰언니는 외국으로 떠났고, 둘째 언니는 얼마 전 ‘시집을 갔다’. 1994년 산부인과 의사가 “아들인 것 같은데…”라고 얼버무려 태어났고, “뭐 좀 달고 나왔어야지”라는 말을 들으며 유년기를 보낸 원미씨는 한국에서 간통죄보다 늦게 낙태죄가 폐지되는 것을 지켜봤다.

 아장맨은 지난 5월26일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더킹’ 무대에 올랐다. 여성들이 소위 남성의 것으로 여겨지는 복장을 하고,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틀고 패러디하는 자리였다. 이곳에는 아장맨의 여자 친구와 그의 쇼를 좋아하는 팬들도 함께했다. 아장맨은 ‘페미니스트만 입장 가능’한 이 무대를 기획했고, 이날 데뷔하는 퍼포머들을 도왔으며 사회를 봤고 피날레 무대를 장식했다. 위선적이며 폭력적인 남성사제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 환호가 쏟아졌다. 김원미와 아장맨. 둘은 같은 사람이지만, 김원미의 세계와 아장맨의 세계는 아직 이토록 멀다.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을 만났다. 2017년 페미니스트 단체 ‘여성괴물’이 주최한 쇼에서 광기 어린 천재 남성을 연기하며 데뷔한 그는 지금 드랙신에서 가장 핫한 드랙킹 아티스트다. 온라인에 업로드된 그의 공연 영상에는 “아장맨을 보고 드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거나 “드랙에 빠지게 됐다”는 댓글이 올라온다. 아장맨은 2019년 6월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호평을 받으며 상연 중인 정은영 작가의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에 차세대 여성아티스트를 대표해 참여했다. 오는 6일과 8일에는 제19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특별공연을 한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 아장맨이었던 그는 중간중간 김원미가 되었고, 다시 아장맨으로 돌아왔다. 그 둘은 너무나 다른 사람 같았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다. 드랙? 드랙킹? 생소하다면, 지금부터 아장맨이 된 김원미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내 첫 드랙은 할머니 달래려던 팬티 속 지우개랑 찐 고구마”

[커버스토리]나는 왜 ‘남자다운’ 옷을 입고 ‘드랙’을 하는가

‘고추 어디다 두고 왔냐’
아주 어릴 적 새겨진 상처
아빠에서 시작해 학교선생님
일상처럼 마주친 남성들까지
폭력에 노출되어 온 나, 여성
몰랐다, 그게 혐오란 걸
나의 ‘드랙’은 그렇게 시작돼

나는 내게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남성들의 특징을
연기하며 공포를 극복해요
아장맨으로 ‘주체’가 되죠
남성을 따라 하자는 게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픈 남성성을
쇼나 공연으로 보여주는 거죠

 - ‘아장맨’이라는 닉네임은 무슨 뜻인가요. (드랙 아티스트들은 보통 공연용 닉네임을 따로 쓴다.)

 “드랙을 시작하면서 ‘처음’이라는 뜻에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남성 히어로들에게만 쓰는 ‘맨’을 붙여서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제 공연을 따뜻한 눈길로 봐주고, 또 쉽게 기억했으면 해서요.”

 - ‘드랙(drag)’이 생소한 분들이 많습니다. 아장맨이 생각하는 드랙이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여성은 이래야 한다 혹은 남성은 이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쇼나 사진, 공연 등을 통해서요.”

 - (정의가) 길군요.(웃음)

 “네.(웃음) 저는 젠더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 없이 단순히 남장이나 여장을 하거나 집처럼 굉장히 사적인 공간에서 이성의 옷이 좋아서 입는 것은 드랙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보통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을 ‘드랙퀸’이라고 하고, 남성을 연기하는 여성을 ‘드랙킹’이라고 하는데요. 이것 역시 성별 이분법에 따라 나눴다는 비판도 있죠. 사실 드랙을 하는 사람의 성별은 상관없어요. 드랙킹은 남성을 따라 하자는 게 아니거든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남성성을 보여주는 거죠.”

 -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아장맨이 처음 드랙을 만나게 된 순간이 궁금해요.

 “대학을 영국에서 다녔는데요. (아장맨은 골드스미스대학에서 미술과 예술사를 공부했다.) 교수님 중에 본인 사진으로 작업하는 분이 있었어요. 생물학적 여성인데도 수염이 조금 굵게 나는 분인데, 그걸 더 강조해서 수염에 색을 칠하거나 다리털을 얼굴에 붙이는 사진이었어요. 어렴풋이 ‘아, 이런 게 드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드랙퀸들의 과도한 노출이나 풍만한 몸을 강조한 복장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들도 있는데요.

 “여성의 희화화라는 비판들이 있죠. 우리(여성)에겐 강요된 코르셋이었는데 왜 그 고통은 모른 채 그걸 가져가서 과장하고 즐겁게 표현을 하냐고요. 저도 어느 정도는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만, 드랙퀸 중에 대중적 심미성을 추구하는 분들만 있는 건 아니에요. 남성적인 신체 특성을 숨기지 않고 수염을 기르거나 근육을 과장될 정도로 만들고 소위 말하는 여성복을 입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드랙퀸을 처음 보고 ‘이분법적 성별에 대한 교란을 주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별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공연을 위해 분장을 하고 있다. 스물다섯 여성 김원미가 위선적인 남성귀족이 되기까지는 얼굴 분장에만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강윤중 기자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공연을 위해 분장을 하고 있다. 스물다섯 여성 김원미가 위선적인 남성귀족이 되기까지는 얼굴 분장에만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강윤중 기자

 드랙이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남녀가 이성의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 것은 연극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지만, 그것을 드랙의 시작이라고 보긴 어렵다. 드랙을 왜 드랙이라고 부르느냐에 대한 설도 여러 가지다. 남성배우를 여장시킨 것(dressed as girl)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드레스 자락이 무대에서 끌린다(drag)는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미국의 유명 드랙 아티스트 루 폴은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채 태어났고, 나머지는 모두 드랙”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여성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페미니즘의 고전이 된 저서 <젠더트러블>에서 “드랙은 젠더를 모방하면서 은연중에 젠더 자체의 우연성뿐 아니라, 모방적인 구조도 드러낸다”고 썼다. 아장맨의 말처럼 드랙을 단순한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남녀 옷 바꿔입기)과 구별하는 것이다.

 드랙은 영미권에선 이미 주류문화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 시작해 드랙의 대중화를 이끈 미국 프로그램 <루 폴의 드래그 레이스>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즌 11이 방영 중이다. 시즌 8에선 한국계 드랙퀸인 ‘김치’가 톱 3에 올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고, 시즌 11에도 한국계 드랙퀸 ‘소주’가 출연했다. 한국의 드랙 아티스트들은 이태원을 중심으로 한 퀴어클럽이나 퀴어행사 무대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드랙공연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신분노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드랙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드랙퀸은 그래도 100명 이상이지만, 아장맨처럼 꾸준히 활동하는 드랙킹은 다섯 명도 되지 않는다.

 - ‘난 내게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남성을 연기한다’고 쓴 글을 봤습니다.

 “첫 번째 공연 때 광기 어린 천재 남성을 연기했고, 두 번째 공연 때는 아버지를 연기했어요. 근데 당시에는 잘 몰랐어요. 이게 내 아빤가 아니면 미디어에서 봤던 과장된 남성들인가. 그냥 남성을 생각했을 때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캐릭터를 연기했는데…이게 왜 나왔을까…저도 한참을 고민했다가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 왜 그런 캐릭터가 튀어나왔을까요.

 “음…굉장히 오랫동안 나이 많은 남성에 대한 공포가 심했어요. 아버지에서 시작해서 학교선생님, 일상에서 마주친 남성들까지요. 아버지는 제가 드랙을 하게 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분이죠. 말로도, 물리적인 폭력도 많이 쓰셨고요. 저에게는 덜한 편이었지만, 엄마와 언니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나마 아버지의 폭력이 가장 덜했던 때는 집에 거의 안 들어올 때였어요. (아장맨의 아버지는 불륜사실을 들켰지만, 본처가 아들을 못 낳으면 새살림을 차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에는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분이에요. 여성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입시킨 분이죠.”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공연을 위해 분장을 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공연을 위해 분장을 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 아들이 아니라서 구박도 당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셋째 딸이에요. 아들을 기대했는데 제가 나와서 실망했다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런 얘길 처음 들은 게 언제라고 기억하나요.) 음…네다섯 살 이전부터요. 외할머니가 저를 돌봐주셨는데 늘 이런 말로 혼났어요. ‘아들래미였어야 했는데….’ 장난칠 때도 ‘고추 어디다 두고 왔냐’고 하셨고요. 아주 어릴 때 일인데 아직도 생각나는 걸 보면 그게 나름 상처였나봐요. 하루는 제가 또 뭔가 잘못을 하고 혼나게 됐는데, 할머니를 웃기려고 팬티 속에 지우개랑 찐 고구마를 넣고 걸었어요. 그게 저의 첫 드랙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 학교에서도 폭력을 당했나요.

 “중학교 마치고 미술을 공부하러 유학 가기로 결정된 상태였어요. 졸업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담임이 저를 교탁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제 뺨을 때렸어요. 아무 설명도 없이 때리더니 들어가라고 했어요. 엄마가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여자애가 너무 기가 살아서 외국 가면 큰일 당할까봐 그랬다’고 했대요. 그때 엄마가 ‘선생님이 너 생각해서 그랬나봐’라고 했어요. 그때는 그게 폭력이라거나 여성혐오라거나 그런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 것들은 제 드랙에 영감이 되긴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상처가 치유되진 않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지금도 교직에 있나요.) 네. 제 후배 한 명을 심하게 구타해서 학교에서 문제가 됐다는데, 그냥 사과하고 넘어갔대요.”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아버지의 양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아버지의 양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유학 가서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동안은 폭력에서 좀 벗어났나요.

 “아뇨.(웃음) 처음에는 아버지랑 떨어져서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이런 폭력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더 느끼게 됐어요. 예술을 공부하면서, 여성의 천재성이나 광기는 감금이나 죽음의 이유가 되는데 남성 예술가들은 아무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범죄를 저질러도 오히려 천재성에 대한 재물이라고 더 추앙을 받았죠. 그런 걸 알고 나니까,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데도 그 작품이나 작가들에 대해 자꾸 변명하게 되고 나중엔 책도 쳐다보기 싫게 됐어요. 여성은 예술에서도 절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화되는구나 느끼니까요. 그래도 제가 혐오하고 공포스러워하던 남성들의 특징을 하나씩 가져와서 나로 치환하거나 풍자하면서 공포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그 사람을 연기하려면 순간이나마 그 사람이 돼야 하는데, 무섭고 싫진 않았나요.

 “오히려 공포는 정말 잘 모를 때 더 크게 오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려면 관찰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제게 온 폭력을 직면해야하죠. 모두가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그게 더 폭력적일 수 있지만, 저에겐 이런 방법이 먹혔던 것 같아요.”

 - 한국에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는데요. 아주 개선됐다고 할 순 없지만, 이제 어떤 행동과 발언에 대해 눈치를 좀 보는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장맨이 보기에 10대를 보냈던 한국과, 영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본 한국은 좀 달라졌나요.

 “음…글쎄요. 제가 영국에서 남자친구를 사귀고 (2017년에) 한국으로 같이 돌아왔는데요. (아장맨은 초등학교 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자각했지만, 소위 ‘정상연애’를 해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너 몰카 찍어 놓은 거 퍼뜨릴 거야’라고 말해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큰일 나겠다 싶어 다시 화해를 했는데, 남친이 그러는 거예요. ‘너무 갑자기 헤어지자고 해서 툭 튀어나온 말이지 실제론 몰카가 없다’고요. 그런데 몰카라는 말이 놀라서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는 말인가요. 그리고 얼마 안돼서 ‘웹하드 유작’이라는 식으로 디지털성폭력피해여성의 죽음을 오락처럼 여기고 마케팅한 사건이 있었어요. 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줄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혐오가 있지 않은지…. ‘안티페미’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개념을 만든다는 게 웃기지 않나요. 여성혐오의 모습만 바뀌었지 조금 더 수면 위로 올라오는 상황 같아서 더 무서울 때가 있어요.”

 - 그렇게 느끼는 상황에서 드랙킹을 하는 것이 두렵진 않나요.

 “오히려 이렇게 노출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이래도 몰카 찍히고 저래도 찍히는데 드러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폭력·혐오·편견…‘아장맨’을 끄집어낸 건, 나 김원미의 눈물”

[커버스토리]나는 왜 ‘남자다운’ 옷을 입고 ‘드랙’을 하는가

무대 위 나는 자유로운데
아장맨이 김원미가 되는 순간
‘여자는 이래야 돼’ 수많은 벽
공연 끝나면 서글픔 밀려와

드랙을 하면서 찾아온 변화?
꾸미지 않더라도 당당하고
나를 사랑할 이유 많아졌죠

내 모습이 불편한 사람들
남성 연기했기 때문 아닐까
‘왜’라는 물음 가져봤으면

 - 회사생활은 어때요.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라 사적인 얘길 많이 안 해도 돼서 그건 좋아요. 근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손님이 오면 당연히 차접대를 해요. 직급이 높은 분도 차접대는 꼭 여성이 하더라고요.”

 - 일상생활에선 여성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하진 않나요.

 “해봤자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귀찮아지기만 할 거라는 걸 알아요.”

 - 지난해에 이어서 두 번째로 ‘드랙킹 콘테스트’를 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무대를 기획하게 됐나요.

 “드랙퀸 무대는 많지만 드랙킹은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아요. 있더라도 규제가 많아요. 드랙퀸은 여성이라고 꾸미고 유두를 노출해도 되는데 드랙킹들은 안돼요. 몰카라든지 성추행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저는 그게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문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정말 편한 상황에서 공연하고 싶고, 관객들도 안전하고 퍼포머도 안심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 드랙킹을 시작한 계기 중 하나가 여성유두해방운동이라고 들었어요.

 “유두 노출에 대한 SNS와 커뮤니티에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유방 절제 수술 후의 사진이나 직접 모유수유를 하는 사진 외에는 여성의 유두가 나온 사진은 음란물로 보고 삭제해요. 여성이 괜찮다, 안 괜찮다를 느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여성의 가슴을 음란하다, 음란하지 않다고 지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봐요.”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 무대에서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남성 귀족을 연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 무대에서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남성 귀족을 연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공연을 하고 나면 기분이 어떤가요. 해방감을 느끼나요.

 “무대에 있을 때는 좋은데 다시 평범한 여성으로 돌아와 출근을 한다든지 일상생활을 하면 그때는 좀 서글픔이 드는 것 같아요. 내가 연기한 사람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데, 일상 속의 나는 계속 객체화되는 느낌이죠. 성별에 기반해서요. 무대에서 내려와 택시만 타도 바로 ‘아가씨…’하는 소리를 들으니까요.”

 - 드랙을 하고 나서 변화가 있다면 뭘까요.

 “제가 원래 화장을 안 하면 밖을 못 나갔어요. ‘화장을 하면 뇌가 즐거워진다’고 하는 책도 일부러 읽고, 굉장히 집착하고 합리화했어요. 드랙하면 분장을 진하게 하는데, 분장을 다 지우고도 새벽 2시에 다시 기본화장을 하고 싶더라고요. 처음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안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메이크업하지 않고도 잘 다녀요. 꾸밈으로 인해서 제가 뺏긴 시간과 돈이 어마어마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고…드랙을 한 이후에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많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 관객들이 드랙을 보고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음…다양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혹시 제 모습을 보고 불편하다면…이 사람은 왜 이런 모습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로 선택했을까. 무섭고 불편한 이 모습이 어떻게 흘러 흘러서 이 사람에게 왔을까. 혹시 여성의 모습으로 연기했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저도 무대 밖으로 내려오면 피해당하기 쉬운 평범한 여성일 뿐이잖아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각각의 질문을 품고 돌아가길 바라는 거군요.) 네. 그래요.”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 무대에서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남성 귀족을 연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이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 무대에서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남성 귀족을 연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언젠가 가족들도 아장맨의 공연을 보길 바라나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나 이런 활동을 이해받고 싶은가요.

 “저는 커밍아웃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성정체성이 어떤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의 허락하에 있어야 한다는 걸 인정한다는 느낌이어서요. 그냥 자식 된 도리로서…언젠가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를 이해하거나 용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용서는 제가 생각한다고 되는 건 아니고. 언제나 이해하려고는 노력해요. 어느 방면에서는 저도 소수자가 아니잖아요. 서울에 거주하고 비장애인이죠. 드랙킹 콘테스트를 서울에서만 여는 것에 대해서 비판 여론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지방에서도 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했어요. 멍청한 생각이었죠. 지방은 문화적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고, 훨씬 더 보수적인 분위기잖아요. 저조차도 그런 것에 무신경하게 발언하고 상처인 줄도 모르고 살았거든요. 무지함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그런 것들을 깨닫고 그러면서 또 아버지에 대해 이해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공연에 맞는 캐릭터를 위해 머리를 탈색한 아장맨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검정머리로 염색했다. 집과 직장에서 ‘노랑머리’로는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장맨의 무대에서 내려와 김원미로 돌아온 순간, 그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수만 가지의 벽에 부딪힌다. 단 하루도 자신이 원하는 머리색을 가질 수 없는 것이 그의 현실이지만, 김원미를 품은 아장맨은 이미 자신의 걸음마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 드랙킹 아장맨은 묻는다. 당신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나요. 당신의 드랙은 어떤 옷을 입고 있나요.

◆성별반전 복장쇼? 성소수자 문화? 고정관념은 ‘와장창’

드랙킹 콘테스트 가보니

지난 5월26일 서울 서교동 앞 클럽 ‘명월관’에서 열린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 무대에 선 드랙킹들이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을 위한 포토타임을 가졌다. 이름은 콘테스트였지만 순위를 가리진 않았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 5월26일 서울 서교동 앞 클럽 ‘명월관’에서 열린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 무대에 선 드랙킹들이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을 위한 포토타임을 가졌다. 이름은 콘테스트였지만 순위를 가리진 않았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 5월26일 오후 4시 서울 서교동 클럽 ‘명월관’ 앞. 빨간 눈의 록스타와 근사한 슈트를 차려입은 신사, 울퉁불퉁한 근육맨과 악마의 얼굴을 한 중세 귀족이 컴컴한 클럽 지하로 차례차례 사라졌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알기 어려운 이들 뒤로 또 한 무리의 기묘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오후 5시30분. 괴물들이 사라진 문 앞으로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인간들은 자신의 닉네임을 적은 이름표를 옷에 붙인 뒤, “불법촬영이나 성희롱, 성추행, 혐오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차례차례 클럽으로 입장했다. 괴물과 인간이 함께한 이곳은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더킹(All Hail the King·왕을 경배하라)’의 현장. 오후 6시15분. 마지막 티켓을 운 좋게 거머쥔 관객이 입장한 뒤 쇼가 시작됐다.

 드랙킹 콘테스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2회째를 맞았다. 드랙 아티스트 ‘아장맨’과 친구들이 드랙킹(남성성을 연기하는 드랙 아티스트)들이 설 수 있도록 만든 무대다. 함께 쇼를 기획한 드랙 아티스트 ‘금개’는 “드랙퀸(여성성을 연기하는 드랙 아티스트) 무대를 좋아하지만, 드랙퀸이 시스젠더게이(생물학적이나 정신적으로 모두 남성인 게이) 중심의 문화이다 보니, 그 안에서 여성혐오 같은 것을 발견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선판매한 120석은 티켓을 오픈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매진됐다. 현장에서 판매한 20석도 금세 동났다. 공연 규모도 확장됐다. 1회 때는 11팀의 무대에 90명의 관객이, 2회 때는 14팀의 무대에 140명의 관객이 함께했다.

 14팀 중 다섯 팀은 이번 무대가 ‘드랙 데뷔’였다. 낮에는 직장인이나 학생으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이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남성성을 꺼내 마음껏 표현했다. 아티스트들의 생물학적 성별은 모두 여성이었지만, 드랙 속 인물은 하나의 성별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했다.

 금발의 록스타(존존슨)는 마약에 찌들어 음정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물을 뿌려대거나 괴성을 지르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을 연기했고, “남자의 미덕은 조신함이지!”라는 안내와 함께 등장한 미소년(로미오)은 누나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꾸밈노동과 애교를 반복하며 “나도 남자랍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귀족사제(아장맨)는 위선과 허세에 가득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하녀에게 굴욕을 당하는 무대를 보였다.

 ‘성별반전 복장쇼’ 정도로 치부되던 드랙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어떤 이들에겐 극단적 여성성 또는 남성성을 드러내는 불편한 쇼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날 무대는 ‘드랙은 꼭 이래야 한다’는 구속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멋진 슈트를 입고 정갈하게 손톱을 정리하는 ‘부치(외관상 남성성이 강조된 레즈비언)’를 연기한 ‘아키라’는 “저는 왜소한 몸이어서 열등감이 있었는데 드랙을 하면서 ‘내가 그냥 이대로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키라는 이날 “외면은 강한 남성처럼 보이지만 감정에 솔직하고 유약한 면을 드러내서 좋아한다”는 배우 양조위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다.

댄서인 ‘리들’은 ‘침대 아래 괴물’을 파워풀한 춤으로 표현했다. 리들은 “제가 괴물이라는 것을 고백함과 동시에 이 무대를 보고 있는 당신들 안에도 괴물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며 “가장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나만의 공간(침대) 바로 아래 괴물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 끼치지만, 누구나 괴물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들은 “댄서로 일하면서 제 춤이 너무 남자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춤을 왜 남자·여자로 구분해야 하는지…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대로 남자 춤을 춰 줄게’ 하는 느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근육맨으로 변신한 ‘꾼’은 택배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스탠드업코미디로 풀었다. 1회 때 관객으로 즐기다 이번 무대에서 데뷔한 꾼은 “물류회사에서 여성노동자로서 일하며 느낀 점을 성별을 바꿔서 유쾌하게 얘기해볼 수 있다는 점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드랙을 즐기는 관객들의 마음 역시 열려 있었다. 관객 ‘룬’은 드랙퀸들의 여장이 여혐이라는 비판에 대해 “남성들에게는 화장을 못하고 머리를 못 기르며 드레스를 입을 수 없는 것이 일종의 ‘코르셋’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드랙퀸 퍼포먼스 역시 하나의 해방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객 ‘하놀’은 “역할과 규범, 편견이 한국에선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데 그런 것을 전복하고 자기가 상상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드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저희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이나 편견을 부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드랙을 성소수자들만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관객 ‘헵찌’는 이렇게 답했다. “드랙은 경계를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 연령과 모든 인종의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아닐까요.” 오후 9시. 환호와 눈물이 뒤섞인 무대가 끝났다. 괴물과 인간들은 다시 경계 속으로 돌아갔다. 세 번째 드랙킹 콘테스트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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