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죽음보다는 나은 방법이 분명히 남아 있을 겁니다

손아람 작가

마포대교

서울의 한강 다리 중 투신자살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마포대교. 북단은 마포대로를 통해 광화문과 종로로, 남단은 영등포와 부천·인천으로 이어진다. 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글귀가 다리 난간에 적혀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의 한강 다리 중 투신자살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마포대교. 북단은 마포대로를 통해 광화문과 종로로, 남단은 영등포와 부천·인천으로 이어진다. 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글귀가 다리 난간에 적혀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영화 <더 테러라이브>는 마포대교를 붕괴시킨 테러 사건으로 시작한다. 다리의 미관을 보수하는 공사 중에 일용직 노동자가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언론은 기사 한 줄 내보내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은 뒤 아들은 권력구조를 증오하는 테러범이 되었다. 그의 입장에 동조한 언론인마저 자살테러에 가담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마포대교는 권력기관인 국회의사당과 증권사, 지상파 방송국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세워진 다리다.

국회·증권사서 가까운 이 다리가
할리우드 영화 속 배경 되는 동안
교각 아래선 투신 시신이 발견됐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감독 조스 웨던은 할리우드 영화에 한 번도 제대로 담긴 적이 없는 도시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서 서울을 촬영지로 선택했다고 한다. 카메라에는 마포대교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캡틴 아메리카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여의도 증권가의 위풍당당한 스카이라인이 담겼다. 다리 위에서 타이츠를 입은 남자배우가 합금 방패를 휘두르며 지구를 구하는 연기에 몰입하는 동안, 교각 아래의 영화 스태프 한 명이 투신으로 익사한 젊은 남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언론에는 크게 매력적인 기삿거리가 아니었다. 마포대교가 알고 보니 얼마나 아름다운 다리였는지, 그걸 서울시민보다 먼저 간파하고 방문한 어벤져스 팀이 가져온 경제 효과가 어떤 규모인지를 다룬 기사가 쏟아지던 때였다. 이 투신자살 사건은 영화 제작진을 깜짝 놀라게 만든 해프닝처럼 다뤄졌다. 유족들은 <더 테러라이브>에서 아버지를 잃었던 테러범과 비슷한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캡틴 아메리카가 마포대교를 건너야만 했던 이유가 뭐였는지는 벌써 잊었지만, 나는 그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늦게나마 남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

한강 다리 전체 투신 시도의 40%
신고·상담 전화의 70%가 몰리는
이곳에 적혀 있는 ‘자살예방문구’
오히려 자살 충동을 일으키기도

한강 다리 전체 투신 시도의 약 40%, 투신 신고 및 상담 전화의 약 70%가 마포대교 위에서 발생해 왔다.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이 증권가에 연결된 다리를 시위 장소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투신 다발 장소로 자주 거론되면서 오히려 자살 장소로서의 상징성이 강화되는 되먹임이 일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후자가 진실이라면 이 글을 내보내는 것 역시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주요한 동기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해마다 실시되는 통계청 조사에서는 자살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 가운데 압도적 다수인 약 40%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꼽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한강 투신 자살도 경제적 고통이 이유였다. 그는 용산 육군병원의 간호사였고, 갚아야 할 빚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1917년 한강대교가 개통하자마자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남성연대 대표였던 성재기씨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마포대교 위에서 투신 퍼포먼스를 벌였다. 퍼포먼스가 투신 시늉일 뿐 자살 시도가 아니라고 장담했지만, 그는 한강에 뛰어내린 직후에 실종됐다. 수색 3일째까지 성재기씨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지녔던 기괴한 유머 감각의 독창성을 얼마간 인정하고 있었기에, 작가인 나는 실종까지도 퍼포먼스 각본의 일부일 게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는 찜질방 수면실 같은 곳에 숨어서 시선이 충분히 모이기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적당한 시점에 짠! 하고 나타나 기행의 경지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거라 믿었다.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랐다. 조의를 표하기가 난감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던 죽음이었지만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무엇보다 아내를 위해서라면 남성연대를 포기하겠다는 고인의 메시지와, 성소수자들을 지인으로 뒀기에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했다는 주위의 증언이 함께 기억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내와 지인처럼 사적으로 굴절된 고유명사들을 보통명사로 확장할 수 있는 상상력이지, 고인을 난간 위로 올라서게 만든 강박적이고 덧없는 논쟁들이 아닐 것이다.

사업가 김유진씨(가명)는 빚더미에 앉은 뒤 마포대교에서 투신을 시도했다. 그를 괴롭힌 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그 괴로움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먼저 물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던진 첫 질문은 무례하고 비정한 호기심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왜 마포대교였어요?”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네임밸류요”라고 대답했다. 자살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마포대교에 대해 알게 됐고, 현장 답사를 떠났을 때 난간에 적힌 자살예방문구를 읽었다. “읽다보니까 바로 이곳이 내 자리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충동적으로 난간에 올라갔어요.” 실제로 마포대교 난간에 자살예방문구가 쓰인 뒤로 투신 시도는 늘어났는데, 예방문구가 오히려 자살 생각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일으켰다고 판단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우리는 왜 자살을 생각하는 걸까
난간에 띄엄띄엄 쓰인 낙서들에선
누군가의 외로운 걸음이 떠오른다

왜 우리는 자살을 생각하는 것일까? 알베르 카뮈는 자살 문제를 집착적으로 파고든 작가였다. 그의 저작들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자살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시시포스의 신화>는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하나뿐이다. 바로 자살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할 정도다. 카뮈는 삶이 근본적으로 무의미하고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어차피 언젠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태어났으므로 죽음이라는 운명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고,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카뮈는 무의미해 보이는 삶의 궤도를 탈출하는 해법으로써 자살은 최선이 아니라고 보았다. 필연적으로 닥쳐올 죽음의 운명에 저항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 그 자체로 삶은 의미를 획득한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다시 굴러떨어질 커다란 바위를 비탈 위로 꾸역꾸역 밀고 올라갔던 시시포스처럼.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는 듯이 카뮈는 작가로서, 철학자로서, 정치활동가로서 순간순간을 불태우듯이 살았다. 그는 ‘죽음’에 대한 성찰의 공로를 인정받아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가장 바보 같은 일은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이란 어록을 남기고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호주머니에는 구입한 뒤 사용하지 않았던 기차표가 들어 있었다. 그의 죽음은 부조리 철학의 부조리한 결말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자살 문제에 대한 카뮈의 대답이 정교하고 분석적인 설명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자살 생각을 피하기가 어려운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생물학적 노화, 직업적 성취의 종말, 삶을 개척하는 탐험가로서의 멸망, 그런 것들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닥쳐온다. 나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일하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번을 지우고 갈아엎은 문서, 산더미처럼 쌓인 책, 라면 국물이 눌어붙은 냄비, 사그라드는 달빛과 새벽의 여명,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혹은 드넓은 물을 바라볼 때, 결국엔 저게 마지막 장면이 될 것이고 그게 꼭 나중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밀려들 수도 있다. 카뮈와 달리 내가 찾은 답은 스스로를 죽일 방법을 찾을 수가 없고, 신의 뜻이든지 혹은 인간이 그렇게 진화했든지 간에 거기엔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인간을 죽이는 건 깊은 물, 수면제, 면도칼 아니면 중력가속도지. 스스로 죽지 못하니까 그런 것들의 힘을 빌려야 해. 전원을 끄거나 눈꺼풀을 닫듯이 죽음을 실행할 수는 없는 거야. 숨을 참아 죽으려 해도 마지막 순간에 불수의근이 작동해서 호흡을 되살려내거든. 인간은 스스로 죽을 수 없도록 설계됐어. 혹시 언젠가 목숨을 끊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지금 한 말을 꼭 떠올리도록 해. 그건 스스로 죽는 게 아니야. 절대로.”(디 마이너스)

하지만 예술가들이 자살 생각에 너무 진지하게 사로잡히는 것은 단지 연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삶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때로는 다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중력처럼 삶을 땅에 붙여두는 감각을 형성하기도 한다. 자살에 관한 최초의 사회학적 연구서인 <자살론>을 집필한 에밀 뒤르켐은 개인을 향한 강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자살률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부양가족이 있거나 절박한 생존동기를 부여하는 전쟁이 발발하면 자살률은 거꾸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자살 생각과 신변 상태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심리학자 데니스 데카탄사로 역시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사회적 감각의 진공 지대에서 인간의 마음은 우주비행사의 뼈처럼 약해진다. 닳아 무뎌지는 반복적인 일상과 떠밀 듯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외력이 사라지면, 다른 사람들은 쉽게 발을 딛고 나오는 얕은 진창이 절망의 구렁텅이가 될 수도 있다.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 부유하거나 부유하지 않거나, 예술가들은 이런 감각을 결핍하기 쉬운 조건에 있다. 그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커트 코베인과 김광석과 최진실이 내린 극단적인 선택 뒤에 상상력을 한껏 불어넣어 납득하기 쉬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애를 썼다.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꼭 관념적인 해답을 얻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를 자주 걷는 것, 처음 맛보는 음식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면서 몸의 한계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것, 호기심과 애정을 되찾게 만드는 새로운 존재를 만나는 것(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외 무엇이 답이 될지 모른다. 마포대교 투신 시도가 실패한 뒤 김유진씨도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빈손으로 무작정 떠나는 것이었다.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자살 생각에 강렬하게 사로잡혔던 순간에는 미처 떠올리지 못한 해법을 그는 실행에 옮겼고, 끝없이 반복되는 좌절, 우연히 찾아온 기회, 몸이 남아나지 않는 노동, 기적적인 행운을 거쳐 평범한 삶을 되찾았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삶이 가능성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불가능에 직면할 때 자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라면, 단 한 건의 사례로도 자살 동기는 충분히 반박된 것이다. 밤새도록 이어진 그의 회고담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련이 남아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이 삶을 버리게 만드는 건 아닐까?

서울시에서 꾸준히 지우고 있지만 마포대교의 난간은 금방 낙서로 가득 찬다. 다리 한가운데에 가까워질수록 밀도는 높아지고 내용은 암울해진다. 한 사람이 띄엄띄엄 남긴 것처럼 글귀에서 이어진 감정이 흐름이 보인다. 그래서 앞서 걸었던 누군가의 외로운 발걸음이 떠오른다. 그(들)는 흔한 조언을 수도 없이 받았을 것이다. 네가 죽어야 할 이유가 뭐냐, 정신차려라, 너보다 어려운 사람도 있다…. 애초에 스스로 죽어야 할 이유 따위는 누구에게도 없으므로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쪽이 더 간절하지 않았을까?

무의미한 삶을 살아내는 게 바로 삶의 의미라는 결론에 도달한 카뮈와 죽음을 선택할 용기가 있다면 다 버리고 도망칠 용기도 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김유진씨, 철학자와 사업가는 전혀 다른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복싱 트레이너 김인식씨의 이야기에는 동의할 것이다. 김인식씨는 마포대교에서 우연히 투신 사망 사건을 목격한 2014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이른 밤부터 자정까지 보안관을 자처하며 다리를 홀로 지키고 있다. 경찰관과 안면을 익힐 정도로 많은 신고 전화를 걸었으며 난간에 오른 사람을 힘으로 직접 끌어내린 적도 여러 번이라는 그는, 공무원 시험에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진 뒤 투신하려는 젊은 남성을 말리던 새벽 나에게 말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몸으로 막을 수는 있죠. 시간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른 날 다른 곳에서 다시 똑같은 시도를 할 거라면서. 자기 가족이면 그렇게 쉽게 말하겠어요?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그새 나빴던 사정이 바뀔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죽음보다는 나은 방법이 분명히 남아 있을 겁니다.”

■ 필자 손아람

2008년 과거 자신이 활동한 힙합 그룹의 이름을 딴 동명의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발표했다. 2010년에는 장편소설 <소수의견>의 원작자이자 공동 각본가로 제24회 부일영화상 각본상과 제36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등을 수상했다. 그 외 <디 마이너스> <세계를 만드는 방법> 등을 집필했다.


손아람 작가의 ‘다리를 걷다 떠오르는 생각’은 동영상으로도 선보입니다.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작가의 이야기와 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밀도 있게 영상 속에 그려집니다. 경향신문의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www.youtube.com/thekyunghyangtv)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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