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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주거기준 유명무실…‘1인 가구 공공임대’에 해법 있다

심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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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엄희삼 기자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35조 3항은 쾌적한 주거에서 살 권리를 위해 국가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걸 명문화했다. 최저주거기준은 ‘쾌적한 주거생활’에 필요한 최소 조건을 국가가 하위법령인 주거기본법에 정해놓은 것이다.

현행 기준이 주거빈곤층의 현실을 개선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개정 논의와 대안을 짚어봤다.

■ 개정 논의 어디까지

최저주거기준이 처음 법제화된 것은 2004년이다. 2011년 한 차례 개정됐다. 신체치수의 전반적 증가 등을 고려해 가구원수별 최소주거면적을 상향조정했다. 1인 가구 기준으로 12㎡에서 14㎡로 늘었다. 필수설비기준에는 하수도시설이, 구조·성능·환경기준에는 화재안전시설이 각각 추가됐다.

개정 기준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주거의 질과 직결되는 구조·성능·환경기준이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컸다. 방음과 채광, 환기에 대해선 ‘적절한 설비’를 갖추고, 소음·진동·악취·대기오염 등 환경요소는 ‘법정 기준을 따르라’고만 돼 있다. 소음원에서 얼마나 떨어져야 하는지, 창문 넓이는 어느 정도로 커야 하는지까지 규정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의견을 수렴해 지난해 7월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가구원수별 최소면적을 끌어올리면서 일조량과 층간소음 같은 구조·성능·환경기준도 구체화하겠다고 했다. 국토부가 국토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지난해 12월 작성된 ‘최저주거기준 현실화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온수공급 여부 등을 최저주거기준 필수설비에 포함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경향신문 10월15일자 1면 보도).

최저주거기준, 집 전체 면적 해당
원룸텔·셰어하우스, 적용 어려워
“비주택에도 적용할 기준 있어야”

국토부는 1인 가구를 위한 별도 기준도 검토 중이다.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개인화장실과 부엌을 포함한 집 전체 면적을 기준으로 한다. 공용화장실과 부엌이 있는 셰어하우스나 원룸텔 같은 주택형태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김선미 성북종로주거복지센터장은 “지금은 화장실과 부엌을 포함한 전체 집 크기만 규정돼 있을 뿐 사람이 ‘잠만 자는 방’이 최소한 얼마 이상 돼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고 했다.

14㎡에 못 미치는 거처도 많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장기적으로는 모든 거처가 최저주거기준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지금은 고시원 방 3개를 합쳐야 최저주거기준에 맞는 방 하나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최저주거기준은 비주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비주택을 포함해 모든 인간 거처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제재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실면적 7㎡(2평) 이상에 창문 설치를 의무화하는 ‘고시원 주거기준’을 최초로 수립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 기준만 올리면 충분한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을 지어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기준을 개정해도 무용지물이다. 현행 주택법에는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주택을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영미권 국가들은 불량주택에 임대제한이나 강제철거를 명령한다.

‘불법쪼개기’ 임대업자 우회 제재
정부 이행강제금, 내더라도 이익
“국토부 차원의 대책 마련 필요”
낡은 주거지, 정부가 재정비해야

임대업자들은 준공 승인을 받고 당초 신고한 방보다 개수를 늘리는 이른바 ‘불법쪼개기’로 임대수익을 올린다. 최저주거기준에도 맞지 않는 좁은 집, 소음에 취약하고 볕이 잘 들지 않는 집들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국토부는 지금도 우회 제재할 수 있다고 한다. 건축법 시행령이나 주택건설기준에는 채광이나 환기 등에 관한 규정이 있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지방정부로부터 건축 인허가를 받을 수 없다. 준공 이후 불법쪼개기를 단행한다면 정부는 시정명령을 내려 원상복구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문제는 이행강제금의 강제력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임대인 입장에선 이행강제금을 내더라도 불법쪼개기를 해 임대료를 많이 받는 게 더 이익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서울시의 불법쪼개기 적발 건수는 635건이다. 시정 비율은 2015년 13.1%에서 점점 줄어 지난해 6.4%, 올해 5.6%가 됐다. 다만 지난 4월 이행강제금 제도를 강화하는 건축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행강제금을 최대 5회까지 부과할 수 있게 하는 횟수제한은 사라진 상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현재는 시·군·구청에서 불법쪼개기 감독을 하지만 건물주들의 민원과 정치적 부담으로 실태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단속하지 못하면 국토부라도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집이 만들어지는 것을 묵인했다. 현행 주거기본법은 국토부 장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주택 건설 인허가를 낼 때 사업 내용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그 기준에 맞게 사업계획승인신청서를 보완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도심 지역에 건설되는 1인 가구 등을 위한 소형주택’은 예외로 설정돼 있다.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도시형 생활주택 원룸형의 최저기준은 12㎡(3.6평)다. 최 소장은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1~2인용 작은 집에 대한 수요는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대응책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라면서도 “정부가 합법적으로 좁은 집을 쪼개 만들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두면서 최저주거기준을 무력화시켰다”고 했다.

■ 1인 가구 살 집 늘어야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좁고 열악해도 ‘싼 방’을 찾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가 주로 사는 고시원이나 불법쪼개기 원룸은 도시의 교통요지에 있다. 가격도 싼 편이다. 한국도시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실시한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연구’(2018)에 따르면 비주택 거주자들이 현재 거처를 선택한 이유는 ‘통근·통학에 좋은 위치’ 때문이라는 비율이 67.8%로 가장 많았다. ‘저렴한 주거비’도 46.7%로 높은 편이었다.

1~2인 가구가 살 만한 집이 늘어나는 것이 근본 대안이다. 최 소장은 “공공임대주택, 그중에서도 1~2인 가구가 살 수 있는 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최저주거기준을 높이고 강행 규정을 마련해도 현실적 대안이 없다면 청년들은 원룸이나 고시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공공이 제공하는 싸고 질 좋은 임대주택이 늘어날수록 낡고 열악한 거주지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낡은 주거지도 손볼 필요가 있다. 국토부도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가 밀집된 거주지를 우선정비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고 있다. 이런 사업 대부분은 ‘쪽방’ 같은 곳에 국한된다. 재개발·재건축을 거쳐 지어진 집은 1~2인 가구의 대안이 되기엔 비싸다. 김 센터장은 “고시원 시설을 고치고 싶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사업자들도 있다”며 “민간에 수리 비용을 저리로 대출해준 뒤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주거급여 상향도 대안의 하나로 언급된다. 김 센터장은 “주거급여 수급액을 두 배로 올리면 20만원짜리 고시원에 살 수 있는 사람이 40만원짜리 원룸텔에 갈 수 있다. 그럼 낡고 열악한 주거지에서 이동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 습기·곰팡이 등 위험요소 29개로 나눠 평가…다중주택 소유자, 안전평가시스템 검사 필수

해외 최저주거기준
영, 시정조치 불이행 땐 철거명령
미, 기준 안되면 보조금 못 받아
일, 유도주거기준 별도로 만들어


미국과 영국 정부는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주거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정조치 한다. 소음·채광 같은 환경요인은 한국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일본은 최저주거기준 외에 적정주거기준을 뜻하는 유도주거기준을 별도로 만들었다.

영국은 2004년 주거위생 및 안전 평가 시스템(HHSRS)을 도입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평가한다. 습기와 곰팡이, 실내공기 오염물질, 낙상사고 위험 등 총 29가지 위험요소를 중심으로 거주지의 적정성 여부를 따진다. 거주자의 위생과 안전에 초점을 맞춘 것도 특징이다.

영국은 ‘다중주택 허가제’도 운영한다. 다중주택 소유자나 관리자는 라이선스 발급 후 5년 이내에 HHSRS에 따라 검사를 받아야 한다. 준공 이후에도 지속적 관리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최저주거기준 위반을 시정하지 않는 주택에는 강제퇴거나 철거명령을 내릴 수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표준주택규정(Model Hosing Code)’을 마련했다. 미국과 한국은 모두 전용부엌을 최소주거기준 필수설비로 규정한다. 미국은 ‘침실·화장실과 분리되고’ ‘수납공간과 음식물 보관시설, 싱크대를 갖추고’ ‘온수 온도는 41~49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추가 조건을 달았다. 미국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집은 주거 바우처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주거 바우처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되려면 본인이 거주할 주택이 화장실과 취사시설, 상하수도 같은 필수시설이 잘 갖춰졌는지, 화재방지가 이루어지는지를 확인받아야 한다. 정기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일본은 최저주거기준이 허용될 수 있는 최저치일 뿐 적정주거의 기준으론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유도주거기준을 함께 제시했다. 일본은 최소면적기준도 한국에 비해 넓다. 1976년 ‘제3기 주택건설 5개년 계획’이 정한 1인 가구 최소면적기준은 16㎡(4.8평)이다. 20년 후 한국보다 높다. 현재 일본의 최소면적기준은 25㎡(7.5평)이다.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규모 및 특성의 변화’ 논문(2014)에서 “일본은 주택건설 5개년 계획을 통해 최저주거기준과 유도거주수준 미달 가구수를 추정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하여 신규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줄여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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