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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ADHD라고? 다 커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받은 이야기

이진주 기자·이바미 인턴PD
[영상]내가 ADHD라고? 다 커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받은 이야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결핍이 있고 장애가 있는 사람이야’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내가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검사가 잘못된 게 아닐까’ ‘의사 선생님이 잘못 판단하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러웠죠.”

정은이씨(가명·36)는 2015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내가? ADHD라고?’ 진단을 받았지만 그로부터 1년 4개월 가량은 그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공기업에 다니는 은이씨가 병원을 찾게 된 이유는 불면증 때문이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뒤 몇 년 동안 잠을 너무 못 자니까 여러 병원을 다녔어요. 정신과 선생님이 불면증의 이유를 알기 위해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권유하셨고 진단 결과가 ADHD였죠.” ADHD는 흔히 성장기 어린이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성인이 되어서 진단을 받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도별 건강보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료현황’을 보면 2013년~2017년 건강보험 가입자 중 ADHD 진료인원 수는 10대(전체 환자 중 56.9%)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지만 증감률은 20대 이상(전년대비 40.9% 증가)에서 높게 나타났다.

ADHD 진단을 받고 난 뒤 은이씨는 자신의 행동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는 동안 기다리는 걸 힘들어했어요. 또 핸드폰에서 인터넷이 조금 늦게 다운로드 되는 걸 못 기다려 손을 비볐죠. 그런데 그 모습을 당시 다섯 살이었던 딸아이가 귀엽다고 따라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안 하는데 나는 기다리지 못해서 조바심 내는 행동들을 아이를 통해서 관찰하게 된 것 같아요.”

정은이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바미 인턴PD

정은이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바미 인턴PD

임상심리사로 일하는 신지수씨(30)도 우연한 계기에 자신이 ADHD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동료 선생님과 심리검사 문항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학교 생활에 관련한 문항이었는데, 지수씨가 “학교 다닐 때 교무실에 자주 안 가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걸로 무엇을 측정할 수 있겠어요?”라고 검사 문항의 변별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동료는 동의는커녕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지수씨를 바라봤다. 지수씨가 “선생님은 교무실 안 드나들었어요?”라고 묻자 “교무실에 왜 자주 가지요?”라고 되묻더란다. 그렇게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진단을 위해 병원을 찾기 전 지수씨는 스스로 주의력 검사를 해봤다. “검사가 비정상 수준으로 나오면 빨간색으로 ‘저하’라는 두 글자가 모니터에 뜨거든요. 설마설마했는데 그 두 글자가 나왔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으면서 그동안 제가 저질렀던 실수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ADHD라서 (그동안) 그랬구나’,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어요.”

ADHD는 뇌에서 집중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 저하와 관련된 신경발달장애 중 하나다. 12세 이전부터 부주의, 충동성, 과잉행동 등의 증상이 지속되는 장애다. 성인기에 갑자기 부주의해졌다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ADHD 진단에서 배제된다. 성인이 되어 ADHD 진단을 받게된 이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선생님께 혼나서 복도로 쫓겨나 교실 안 아이들을 바라보거나 친구들과 싸워서 혼났던 생활이 좀 반복됐던 것 같아요. 또 수강신청 기간을 놓친다거나 하는 저의 반복적인 실수를 타인이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장면들도 떠오르고요.” 지수씨는 “ADHD 관련 공부를 아무리 해도 제가 관련 증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ADHD 증상이 오래 지속된 터라 그런 행동들이 제 성격이라고 오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수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DHD 진단 후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바미 인턴PD

신지수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DHD 진단 후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바미 인턴PD

은이씨는 “생활기록부에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쾌활하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정형화된 문구가 들어갔지 특별히 저의 성향을 드러내거나 하는 문구는 없었다”며 ADHD를 의심할 만한 사항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여성 ADHD가 부주의하고 자기 생활에 불편함은 있지만 공격성이나 과잉행동이 없어 스스로 심각성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발견되기 어려운 거 같다”고 말했다.

지수씨는 특히 여성의 ADHD의 경우 진단을 놓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을 언급했다. “여자아이의 경우 정리 정돈을 못하거나 공상에 빠지거나 경청하지 못하는 등의 부주의 증상을 남자아이들보다 더 많이 나타내고 있는데도 과소평가되고 있어요. 남자아이들의 과잉행동이나 충동적인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방해하거나 괴롭히다 보니 부모 입장에서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지만 여자아이들의 부주의 증상은 당사자만 괴롭고 주변에서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여 진단을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지수씨는 “ADHD에 대한 진단기준 자체가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주로 연구돼 있어 여자아이를 진단하기에는 진단 기준이나 진단 도구가 맞지 않다는 학계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ADHD 진단을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을까. 지수씨는 대학 시절 친구들에게 진단 후 가장 먼저 ADHD임을 고백했는데 “(너는) 몰랐어? (우리는) 당연히 알았지”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그래서 (친구들이) 나를 도와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었는데 늘 주변에서 과제며 강의 신청 등을 놓치지 않게 챙겨준 일들이 떠올랐어요.”

특히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평가자이자 치료자 역할을 업으로 삼은 지수씨의 경우엔 ADHD 진단을 받고 신뢰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제가 ADHD가 있다고 말했을 때 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까 봐 제일 두려웠던 것 같다. ‘ADHD인데 과연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같은 편견이나 오해가 많이 두려웠다”며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ADHD임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갖고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우선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ADHD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은이씨는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처음으로 그 마음을 털어놓은 상대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ADHD 진단을 받았다는 테두리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ADHD인 저 스스로를 알아가기를 바란다며 응원해 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고마운 위로였어요.”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에서 은이씨와 지수씨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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