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열풍 지속

봉준호 “한국 영화산업, 리스크 두려워 말고 도전적 작품 껴안아야”

김경학 기자

‘기생충’ 제작진·배우 기자회견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최근 독립영화들 많은 재능 꽃피워
산업과의 좋은 충돌 일으킬 것”
동상 제작·생가 보존 추진 이슈에
“그런 얘기는 나 죽은 후에 하라”

이정은 “잘 찍으니 세계가 알아줘
굳이 할리우드 안 가도 되겠다 싶어”
조여정 “영화는 하나의 언어 실감”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세계 영화사를 다시 쓴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이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간 소회를 밝혔다. 사실상 <기생충>의 국내 마지막 공식 활동으로, 장소는 지난해 4월 공식 활동을 시작한 곳과 같았다.

봉준호 감독은 이날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기서 제작발표회를 한 지 거의 1년이 다 돼간다.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침내 여기 오게 돼 기쁘다”며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부터 봉 감독과 가장 오래 아카데미 캠페인을 함께한 배우 송강호는 “참 영광된 시간을 같이 보낸 것 같다”며 “한국 영화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 관객에게 뛰어난 한국 영화의 모습을 선보이고 돌아와 인사드리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작들에서도 빈부격차, 계급·계층 갈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온 봉 감독은 <기생충>이 전작들에 비해 큰 호응을 얻는 것과 관련해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점을 인기 요인으로 봤다. 봉 감독은 “<괴물>이 한강변 괴물, <설국열차>가 미래 기차를 배경으로 해 공상과학(SF)적 요소가 많은데 <기생충>은 그런 것 없이 동시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을 배우들이 잘 표현한,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 더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봉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한진원 작가는 주요 인물 모두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기생충>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봉 감독의 아이디어에 현실감을 입히기 위해 가사도우미·수행기사 등 실제 인물들을 만나 취재하기도 했다. 한 작가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흘러가지 않고, 인물마다 드라마가 있고 각자의 욕망에 따라 사는 이유가 있다”며 “기우(최우식) 집과 가까운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제게 박사장(이선균) 집은 판타지였다. 판타지를 채워줄 취재원이 중요했다. 취재원에게서 얻은 디테일을 통해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 양극화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 점도 주효했다. 봉 감독은 “대중적인 측면에서 위험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를 최대한 솔직하게 그린 게 이 영화의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정면돌파하려고 만든 영화”라며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베트남·일본·영국·미국에서 오스카 후광과 상관없이 호응받았다. 수상을 떠나 동시대를 사는 전 세계 많은 관객이 호응해준다는 게 기뻤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섰던 소회와 뒷이야기도 전했다. 이선균은 “너무 벅참을 느꼈다”며 “재작년 시작된 멋지고 아름다운 패키지 여행이 마무리됐다. 한국 영화 100년을 황금종려상으로 마무리하고, 또 다른 100년 역사를 아카데미로 시작했다. 함께여서 너무 영광이었다”고 했다. 이정은은 “<기생충> 개봉 초반 인터뷰할 때 ‘배우가 됐으니 할리우드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는데, 영화를 잘 찍으니 세계가 알아주더라”며 “굳이 할리우드 안 가도 되겠다 싶다”고 말했다. 조여정은 “영화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이게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봉 감독) 바로 옆에 앉았는데 자세히 보시면 굉장히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황금종려상 수상 때) 너무 과도하게 기뻐하다 감독님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 (아카데미 때는) 뺨이나 뒷목, 얼굴 위주로 갈비뼈를 피해가며 기쁨을 나눴다”고 했다. 시상식에서 받은 오스카 트로피는 6개다. 이 중 3개(작품상·감독상·각본상)는 봉 감독이, 2개(작품상·국제장편영화상)는 곽신애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1개(각본상)는 한 작가가 보유하기로 했다.

봉 감독은 제2, 제3의 <기생충>이 나오기 위해서는 투자·배급·제작 등 한국 영화업계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저의 데뷔로부터 한국 영화계가) 20여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동시에 젊은 감독이 뭔가 이상하고 모험적인 작품을 하기는 어려워졌다”며 “1980~1990년대 홍콩 영화산업이 어떻게 쇠퇴했는지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한국 영화산업이 모험과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고 더 도전적인 영화를 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나오는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보면 많은 재능이 꽃피고 있다”며 “(그 재능이) 산업과 좋은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은 자신의 동상 제작 및 생가 보존 추진과 관련해서는 “그런 이야기는 제가 죽은 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5·6부작 분량의 TV드라마로 준비 중인 <기생충>은 앞서 <설국열차>가 방영까지 5년이 걸렸다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했다.

간담회에는 봉 감독과 배우 송강호·이선균·조여정·박소담·이정은·장혜진·박명훈, 곽 대표, 한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이 참석했다. 봉 감독은 끝인사에서 “많은 경사가 있어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한다”며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저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장인정신으로 만든 장면 하나하나,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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