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스웨덴 소상공인들 삶을 위해···40년 지지 정당을 과감하게 비판하다

장영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여성, 정치를 하다](14) 스웨덴 소상공인들 삶을 위해···40년 지지 정당을 과감하게 비판하다
[여성, 정치를 하다](14) 스웨덴 소상공인들 삶을 위해···40년 지지 정당을 과감하게 비판하다
[여성, 정치를 하다](14) 스웨덴 소상공인들 삶을 위해···40년 지지 정당을 과감하게 비판하다

110편의 작품 발표, 90개국에서 번역되었고 1억명 이상의 독자를 만난 작가
복잡한 세법과 자영업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과세 정책을 비판하며
“세금 내기 위해 돈을 훔쳐야 하나”…관료화된 집권 사회민주당에 반대 깃발
그에게 문학과 정치는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사회민주당원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 정권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않습니다. 당 이름을 사회관료당으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군요.”

1945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 출간되자 전 세계는 놀랐다. 씩씩하고 용감한 새로운 어린이가 탄생하자 독자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말괄량이 삐삐”가 등장하기 전까지 천방지축 좌충우돌의 여자 어린이 주인공을 아동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38세에 동화작가로 데뷔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첫 작품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지만, 벼락 성공이 오히려 작가에게 저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자 노력했다. 인기는 바람과도 같은 것이어서 결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을 되새겼다. 그녀는 오직 글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글을 쓰고 있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 “글쓰기. 그것은 고된 노동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근사한 일이다. 아침이면 글을 쓰고 밤이 되면 생각한다. 아! 내일 아침이 밝아 오면 다시 글을 쓸 수 있겠지!”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954년까지 18권의 책을 썼다. 쓰지 않을 때는 책을 읽거나 홀로 숲속을 거닐었다. “나 혼자 있고 싶어요. 홀로 있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삶이 주는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약합니다.” 작가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수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고독만큼 좋은 동반자를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대체로 우리는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틈에 있을 때 더 외로움을 느낀다. 사색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혼자이니, 그가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라.” 이 원칙을 지독할 정도로 지켰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작가는 세상과 고립될 수 없으며, 또한 고립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그녀는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녀는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110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녀의 작품은 90개국에서 번역되었고, 현재까지 1억명 이상의 독자를 만났다. 유네스코는 2005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관련된 자료들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의 삶의 터전인 스웨덴의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했다. “존재의 의미나 죽음 같은 주제에 대해 고민할 때를 제외하면 내 머릿속에는 온통 정치에 대한 생각뿐이야.” 중요한 현안이라고 판단을 내리면 두려움 없이 돌진했다. 가족사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오빠 군나르는 10년 동안 농업인조합 정당의 회원으로 의회 활동을 했다. 1974년 갑작스럽게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오빠의 죽음을 겪으면서 정치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20대 시절이던 1930년대 초부터 이미 사회민주당의 열혈 지지자였다. 그녀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는 바로 1970년대 후반 사회민주당의 조세 정책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1976년 3월10일 69세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스웨덴 사회민주당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엑스프레센’에 기고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세법과 자영업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과세 정책을 비판하며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의 책임을 따진 것이다. ‘모니스마니엔의 폼페리포사’라는 이 다소 유별난 제목의 글에는 자영업자 수입의 102%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과세 정책이 등장한다. 성공한 작가인 주인공 폼페리포사는 자영업자에게 수입의 102%를 세금으로 통보한 모니스마니엔 정부의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폼페리포사는 결국 작가 활동을 포기하고, 사회보장급여로 생활하면서 국립은행 금고에서 돈을 훔칠 방책을 세운다. “내 젊은 날 꽃피던 사회민주당아, 그들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콧대 높고 관료적이며 부당한 유모 같은 국가를 정당화하는 데 네 이름을 가져다 쓰는 작태가 얼마나 오래 계속되려나?” 집권층은 반격에 나섰다.

재무부 장관 군나르 스트렝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기본적인 계산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고 역공을 취했다. “과세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이 한심”하다는 비난을 받은 그녀는 재무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며, “장관의 오만함을 역이용”해서 반격했다. “요즘 스웨덴 소상공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십니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스웨덴의 “수공예 장인, 담배가게 주인, 미용사, 원예가, 농부, 수많은 자영업자의 등골을 빼먹을 정도로 세금을 부과하는 정부 정책”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조목조목 짚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주장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사회민주당 진영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판매 부수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어린이책 작가가 조세 법령 논의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면에는 재정적인 저의가 있으리라”며 논쟁의 구도를 몰고 간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자신은 돈을 많이 버는 작가이기 때문에 사회민주당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세금을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면 안 된다”는 믿음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평생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했을 뿐, 언제나 “돈을 두려워” 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지도 않고, 돈과 함께 따라오는 권력 또한 싫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권력만큼이나 사람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지지자들의 비판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당의 위기 대응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특히 재무부 장관 군나르 스트렝의 “오판”은 점차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나 잉마르 베리만이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의 입지를 좁히는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해프닝은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어요.” 연극 연출가로 명성이 높았던 잉마르 베리만은 1976년 1월 공연 리허설 도중 조세 회피 혐의로 체포된다.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자신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사회에 환멸을 느낀 잉마르 베리만은 그해 4월 스웨덴을 떠났다. 이러한 사건을 군나르 스트렝은 ‘해프닝’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976년 5월부터 6월 사이에 잇달아 네 편의 글을 발표하며, “사회민주당은 나를 포함해서 공의롭고 평등한 인민의 집을 꿈꾸던 모든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비판했다.

1976년 8월31일, 선거를 3주 앞둔 시점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사회민주당원에게 공개서한을 발표한다. 그녀는 “민주주의란 여럿이 권력을 공유하는 것을 뜻합니다”라는 말로 사회민주당원들에게 “반기”를 들라고 호소했다. 사회민주당 진영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아스트리드, 그대는 반동분자가 되었소. … 그대의 글은 한심한 모습만 드러낼 뿐이라오. … 그대가 스웨덴인을 얼마나 과소평가했는지 고민해보시오.” 동시에 반(反)사회주의 성향의 ‘엑스프레센’에 글을 발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녀가 보수 언론사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관계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사회민주당의 조세 정책을 비판하기로 결심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엑스프레센’의 편집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면을 할애해줄 수 있는지 타진했기 때문이다.

1976년 9월19일, 사회민주당은 비사회주의 정당들의 연합 정권에 밀려나게 되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발표한 열 편 이상의 정치 논평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왔다.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선거 결과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했을 따름이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 시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다시 문학으로 돌아갔다. 1978년 그녀는 독일도서협회 평화상의 첫 번째 어린이책 작가로 선정되었다. 헤르만 헤세와 알베르트 슈바이처, 마르틴 부버 등과 함께 수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주최 측에서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 수상 소감을 “짧게, 감사함”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독일도서협회 측에서는 정중하게 그녀에게 수상 소감 연설을 다시 부탁했다. 그녀에게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그녀는 체벌 교육 반대와 부모 폭력 금지 법안 발의를 호소하는 연설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폭력을 포기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을까요? …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폭력 속에서,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 속에서 첫 가르침을 받았을까요?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배운 것들을 다음 세대에 전해 주었을까요?” 1979년 스웨덴에서는 체벌 금지와 부모 폭력 금지법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포되었다.

1985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동물복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동물은 살아 있는 존재이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괴로움과 공포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 과연 우리가 저렴한 식품을 얻기 위해 동물들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도록 해야 하는가?” 1988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동물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근간을 마련한 ‘린드그렌법’이 제정되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 문학과 정치는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이었다.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을 묻는 이들에게 그녀는 1973년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 분명한 답을 제시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2002년,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라는 평생의 좌우명을 가지고 스웨덴의 정치와 세상의 어린이들에게 멋진 이야기를 남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총리 예란 페르손은 그녀의 타계 소식을 듣고 “1976년 선거 당시 린드그렌의 지적이 옳았다”고 논평했다. 그녀의 쓴소리가 스웨덴을 향한 애정이었음을 알아차린 사회민주당은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정치적 글쓰기가 새삼 그립다.

※이 글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옌스 안데르센 지음·김경희 옮김, 창비)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장영은

[여성, 정치를 하다](14) 스웨덴 소상공인들 삶을 위해···40년 지지 정당을 과감하게 비판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계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썼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