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점검원 - 김순옥씨
가정과 사무실에 놓인 정수기 등을 관리하는 김순옥씨(49)는 ‘코디(코웨이 레이디)’라고 불리는 서비스 점검 노동자이다. 경향신문과 만난 김씨는 경기도의 한 상가에서 얼음 정수기 필터를 교체하고 있었다. 머리는 짧게 치고, 입술엔 살짝 붉은빛이 도는 립스틱을 발랐다. 검정 신발에 하늘색 근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복장 규정이 엄격하다고 했다. 다양한 제품을 점검하고 고객에게 설명하는 일이다보니 교육도 잦다. 지점에서는 수시로 업무를 지시한다. 김씨는 “코웨이의 얼굴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정규직이 아닌, 특수고용직 노동자이다. 기본급이 아닌, 수수료를 가져간다.
정수기 필터 교체에 내부 청소까지 40분이 걸렸다. 자차로 이동한 시간까지 1시간이 소요됐지만 그가 번 돈은 얼음 정수기 점검수수료 8700원이 전부였다. 시간당 최저임금 8590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노조 수석부지부장으로 활동하는 김씨는 노조 업무를 겸업하기 전까지 한 달에 250대를 점검했다고 했다. 점검수수료로 140만~150만원을 벌었다. 그는 “하지만 통신비, 유류비, 자동차보험료, 렌털료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건 50만~60만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영업’도 함께 뛴다.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점검수수료만으로는 월수입이 너무 적은 데다, 그가 속한 지점에는 ‘영업목표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점에서 영업을 못하면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지국장 생일에는 ‘100데이’라고 해서 소속 코디들이 100개를 팔아오기도 했다”고 했다. 코디들은 자기 돈을 쓰면서 영업을 하고 영업수수료를 벌지만, 고객이 중도에 계약을 취소할 경우 받은 영업수수료를 회사에 되돌려줘야 한다.
코디들은 성폭력에 종종 노출된다고 한다. “원룸에 가서 점검을 하는데 남성 고객이 야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옆에 서서 절 계속 지켜보는데 너무 무서웠죠. 제 동료는 점검하러 갔다가 고객이 갑자기 바지를 내리는 바람에 기겁해서 뛰쳐나왔다고 해요.” 폭언도 예사로 듣는다. “얼마 전 아이가 있는 집을 방문했는데 고객님이 코로나19가 걱정된다면서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고 하셨어요. 벽에 손이라도 짚을까 계속 쳐다보시는데 너무 긴장해서 정수기 호스를 놓치고 말았죠. 물이 튀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닦아내다가 크게 혼이 났어요.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만지냐’고. 우리 일이 이런 거구나. 너무 서러웠죠.” 그는 “성희롱이나 폭언과 관련해 회사 차원의 대책은 없다”고 했다.
코웨이는 지난해 창사 후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기록했다. 노동자 처우는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디들은 노조를 조직하고 지난 5월 노동청으로부터 신고필증을 받았다. 김씨는 “사측은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라며 여전히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노조를 결성하기 전에는 코디들을 ‘식구’라고 불렀는데, 노조를 만든다고 하자 ‘파트너’라고 바꿔 불렀다”고 말했다.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가요? 앞에 ‘특고(특수한 고용)’라는 단어 하나 붙이고 우리를 차별하는 게 화가 나고 억울해요.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 권리를 외친 지 5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근로기준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특수고용직이 뭔지 모르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일을 하면 ‘노동자’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