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차 프로젝트’ 이연지 기획자 “여성의 이동 독립권, 언니한테 배워봐요”

최민지 기자
‘언니차 프로젝트’의 기획자 이연지씨가 지난 6일 경기 용인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언니차 프로젝트’의 기획자 이연지씨가 지난 6일 경기 용인시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여성 운전자 위한 행사 모임 기획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힘 기르기
30년 경력 정비사의 경정비 수업
9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

“오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 래퍼 인크레더블이 2015년 부른 노래 ‘오빠차’에서 운전하는 주체는 남성이다. 여성의 자리는 조수석으로 묘사된다.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최고의 튜닝은 조수석 튜닝(여자친구를 태우는 것)’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떠돈다. 운전은 오랫동안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있다.

‘언니차 프로젝트(언니차)’의 기획자 이연지씨(35)를 지난 6일 만났다. 5년차 운전자로 세단을 매끄럽게 주차하며 등장한 그는 “언니차는 ‘오빠 차’ ‘아빠 차’가 아닌, 스스로 운전하는 언니들을 위해 만든 프로젝트팀”이라고 소개했다. 이씨와 14년차 운전자 등 여성 3명이 올초 여성가족부의 청년 성평등문화추진단 사업에 응모해 지원을 받으며 활동해왔다.

언니차의 활동은 다양하다. 여성 운전자를 위한 경정비 실습과 세차모임 행사를 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동차 관련 정보와 브랜드별 드라이빙센터 이용 후기를 공유한다. 여성의 ‘이동 독립권’을 고취하고, 도로 위 여성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게 목표다.

‘여성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떠나고 또 돌아올 수 있는 힘.’ 언니차가 말하는 이동 독립권을 이씨는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남성에게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장려되는 운전이 상대적으로 여성에게는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며 “운전을 못하면 누군가에게 기대 이동해야 하고, 대중교통 운행 시간·노선의 제한도 받는다”고 말했다.

고교생을 가르치는 강사인 이씨가 언니차를 기획한 것은 몇 해 전 한 자동차 동호회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차를 좋아한 이씨는 동호회의 유일한 여성 회원이었다. 즐겁게 활동했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그는 “남녀 면허 소지 비율은 6 대 4 정도인데 왜 차에 대해 물어볼 선배는 남성뿐인지 생각했다”며 “‘언니가 알려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달 7일 열린 첫 경정비 수업은 3~4시간 만, 지난달 21일 2차 수업은 9분 만에 수강생 모집이 마감됐다. 용인에서 열린 수업에 부산과 대전, 전북 전주 등 전국의 여성들이 달려왔다.

“30년 경력의 여성 정비사께서 계기판 읽기, 타이어 관리법을 설명해 주셨어요. 참가자들은 직접 자기 차 보닛을 열고 냉각수 탱크, 엔진오일 게이지를 확인하는 실습도 했죠. 모두 눈을 반짝이며 너무 재미있어 하셨어요. 다들 ‘언니차’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3명으로 시작한 회원은 약 30명으로 늘었다.

여성 운전자들이 지난 11월21일 경기 용인시의 한 공업사에서 열린 ‘언니차 프로젝트’의 차량 경정비 클래스에 참여해 설명을 듣고 있다.  ‘언니차 프로젝트’ 제공

여성 운전자들이 지난 11월21일 경기 용인시의 한 공업사에서 열린 ‘언니차 프로젝트’의 차량 경정비 클래스에 참여해 설명을 듣고 있다. ‘언니차 프로젝트’ 제공

운전 시작 후 이씨의 삶은 달라졌다.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됐다. 하루에 해낼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그는 “내 영토가 넓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세상의 크기는 그 사람이 가장 멀리 가본 곳까지의 거리’라고 해요. 예를 들어 회사를 지원한다면 코앞에 있는 곳뿐 아니라 아주 먼 곳도 만만해지는 거예요. 더 큰 가능성과 접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낍니다.”

여성 운전자에게 도로는 여전히 불평등한 공간이다. 이씨는 “‘마이크로어그레션(미세차별)’이 늘 있다”고 했다. 좁은 길목에서 마주친 차량 운전자는 상대가 여성임을 확인하곤 경적을 울리며 양보를 요구했다. 남성 운전자와 같은 실수를 해도 ‘김 여사’라는 조롱 어린 눈총을 받았다. 최근 1종 대형 면허 도전을 위해 찾은 운전학원에선 “왜 굳이 1종 하냐. 어렵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 면허를 손에 쥐었다.

“‘왜 하냐’는 말을 계속 들으면 사람 마음이 위축돼요. 여성들이 이런 말들에 지지 않도록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 ‘이 거대한 기계, 까짓것 내가 돌릴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이씨는 경정비 클래스와 세차모임 외에도 사고 시 대처법 학습, 초보용 주행·주차 워크숍 등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그는 “자동차 이야기는 물론 운전하는 삶에 관심 있는 여성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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